“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한동훈 대표가 제기한 ‘김건희 여사 문제들’을 모조리 묵살한 다음날인 22일, 부산 금정구 범어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이 발언에 문득 어떤 비리 저명인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 어쩌고저쩌고’가 떠올려지며 실소가 삐쭉 새어나왔다. 실소는 분노의 억제된 반응이다.
‘힘든 상황’, ‘업보’, ‘돌을 맞고’ 등의 어려움에 ‘좌고우면치 않고’,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명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세상에나, 아만(我慢)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뻔뻔함이 이 정도일 줄이야! 윤 대통령이,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을까? 최소 열에 일곱은 ‘웃기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입에 올리면, ‘공정과 상식’에서 보듯, 그 단어의 본디 의미가 타락한다. 대통령의 언행불일치, 편의적 사용의 예를 너무 많이 봐와 하나하나 따지면 정신건강에 해로울 정도다.
신뢰는 말로써 다져지는 게 아니다. 말한 바를 행동으로 증명할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은 자신의 편의에 따른 ‘아무 말’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데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들의 임기가 곧 만료되는데 연임 결재를 안 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8월 13일 이대환 부장검사와 차정현 수사기획관, 송영선·최문정 검사의 연임을 대통령실에 제청했다. 이들은 임기(10월 27일) 만료 전에 연임이 재가 되지 않으면 자동 사직 처리된다. 이 부장과 차 기획관은 해병대 사건을 맡고 있다. 이 사건 수사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일찌감치 윤 대통령에게 연임을 제청한 것이다.
그런데 두 달이 넘도록 윤 대통령이 결재를 안 하는 바람에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또한 신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의 신규 채용에도 결재를 안 하고 있다. 반면, 지난달 사표를 낸 검사에 대해서는 닷새 만에 수리했다.
이런 행보를 보이는 윤 대통령의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자’는 명분을 우리가 어떻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업(業)은 훗날의 운명의 원인이 되는, 생각·말·행동으로 짓는 ‘그 무엇’이다. 보(報)는 ‘그 무엇’에 의해 시간 혹은 세월이 지난 후 받게 되는 결과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이다. 선을 심든 악을 심든, 즉각 즉각 세간법에 의해 보상과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돌을 맞을 업보’이니 선의 씨앗을 심지 않은 것을 자인한 셈이다. <시사IN> 제893호(2024.10.29.) 표지 이야기가 ‘김건희의 나라’이다. 그 소제목을 몇 개만 보자.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 ‘논란의 골짜기마다 김건희 사람들’, ‘명품 백 받아도 불기소, 7초 매도 해도 불기소’, ‘불법 위에 지어진 관저, 끝까지 안 나온 그 이름’, ‘허위 학력에서 시작된 여사의 거짓말’, ‘맞다, 양평 고속도로 어떻게 되고 있지?’, ‘김건희 여사 의혹 타임라인’, ‘김건희 여사의 말말말’ 등등.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크고 작은 잘못된 행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생살이에서 업보란 참 무서운 말이다. 설령 모르고 짓는 잘못이라도 주위의 열 사람 중에 일곱 이상이 지적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제 행위의 결과물이 ‘오늘의 나’이고, 오늘 행위의 결과물이 ‘내일의 나’이다. 우리는 행복, 적어도 마음의 평안을 추구한다. 하지만 과거의 업 때문에 오늘 당장은 아니라도 내일이 위태롭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한 산수 문제이다. 오늘 당장, 어제의 업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늘, 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일, 업보에서 벗어나든지, 하다못해 덜 끔찍할 것이다.
어제의 악업을 씻어내지도 못하면서 오늘 또 계속해서 악업을 보태는 사람, 그 내일은 어떻겠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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