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밤늦게 전화가 왔다. 때 아닌 전화는 대개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삶이 지독히 쓸쓸하단다. 막걸리 냄새를 휴대폰 이쪽에서 맡을 수 있었다.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이백 리 길을 음주운전으로는 무리라, ‘조만간’으로 기약했다.
그 ‘조만간’은 봄까지 늘어질 수 있다. 봄은 곧 꽃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친구 역시 화사한 얼굴로 막걸리 몇 통 꿰차고 느닷없이 모옥에 왕림하겠지. 그러면 나는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하면서 맞겠지. 왜? 꽃 피는 봄날이기에.
일 년 내내 대형 마트에서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살 수 있는 우리는 봄과 꽃이 인류 대부분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꽃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 아름다움과 인간의 탐미적 속성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꽃이 우리 조상에게 알려준 것은 긴 겨울 동안 얻을 수 없었던 채소와 열매가 나기 시작한다는 자연의 이치이다.
병원에 꽃을 가져가는 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병실에 꽃이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회복률이 높아지며, 심리 상태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처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프리카 사바나를 배회하면서 늘 야영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먹이 자원이 빈약하고 적대적인 힘(맹수 등)들에 취약한, 살기 나쁜 장소를 선택하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반면, 살기 좋은 장소를 선택하면 큰 편익이 있기 때문에, 자연 선택은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설계된 적응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고 한다.
인류가 출현한 장소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아프리카 사바나에는 비비와 침팬지 같은 영장류를 포함해 큰 육상 동물이 많이 산다. 사바나는 열대우림보다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사냥감이 더 많으며, 채집할 수 있는 식물도 더 많고, 경치도 유목민의 생활방식에 알맞게 넓게 탁 트여 있다. 사바나에 자라는 나무는 예민한 사람의 피부를 뜨거운 햇빛에서 보호해주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도 제공해 준다.
자연 경관 선호를 조사한 결과도 사바나 가설을 지지한다. 한 연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미국 주민을 대상으로 케냐에서 찍은 일련의 나무 사진들을 평가하게 했다. 각각의 사진은 나무 한 그루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사진들은 햇빛과 날씨가 비슷한 표준적 조건에서 찍은 것이었다.
선택된 나무들은 네 가지 속성-수관(樹冠·많은 가지와 잎이 달려있는 줄기의 윗부분) 모양, 수관 밀도, 줄기 높이, 가지들이 뻗어나간 패턴-에서 차이가 있었다. 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판단을 했다.
모두가 사바나에서 자라는 것과 비슷한 나무-수관이 적당히 빽빽하고, 지면 근처에서 줄기가 둘로 갈라진-를 크게 선호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성기거나 빽빽한 수관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였다(데이비드 버스/『진화심리학』).
아프리칸 사바나, 너른 초원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면,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희망으로 기지개를 켰을 것이다. 꽃은 얼마지 않아 맞볼 푸른 채소와 달디 단 열매를 기약하는 전서구(傳書鳩)였기 때문이다. 하여 꽃은 희망이요, 생명의 다른 말이다.
꽃 피는 봄날이 오면, 우리의 DNA에 각인된 희망이라는 새싹이 고목에도 새움을 틔울 것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했던가. 희망이 있으면 의욕이 북돋워지고, 그 의욕을 실천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겠지. 희망이 생겨 의욕적으로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죽을지라도 늙을 새는 없지 않을까?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마는, 애옥살림이라 변변찮은 대접에 ‘不亦딱乎’일까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다 돌고도 남음이 있는 세월을 살아낸 우리가 ‘트레이드오프tradeoff’(한 측면에서 이익을 추구하면, 다른 측면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 정도는 깨치지 않았는가.
두 손아귀에 모두 떡을 쥔 상태로는 새로운 날들이란 없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갈 뿐이다. 한 손의 떡은 손바닥 펴서 세상에 주고, 그 빈손에 희망이 자리 잡게 하자.
희망이란 외줄타기, 하지만 그 모습, 아름답지 아니한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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