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둘째,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셋째,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이렇게 명징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윤 대통령의 여러 행동거지를 지켜보노라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이런 생각 저런 궁리 끝에 실존주의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를 만난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인간의 존재 이유, 존재 목적이 있는가? 자동차, 우산, 신발, 도혜당, 쌍화차 등은 존재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러한 목적으로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 곧 풀과 나무와 번개와 구름과 아침 이슬은 존재 이유나 목적이 없다. 그냥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존재 이유나 목적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본질 같은 건 없다. 더구나 본질도 없는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태어나졌다. 곧,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다. 인간은 이유나 목적이 없이 이 세상에 던져져서, 그냥 실제로 존재할 뿐(실존)이다.
이유나 목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주어진 역할도 없다. 그런 존재 앞에 미지의 삶이란 게 주어진다. 인간은 이 삶을 어떻게 요리해도 좋다. 어떻게 살든 무엇을 하든, 자유이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이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형벌과 동류라는 의미로, ‘인간은 자유를 선고 받았다’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자유를 선고받은 인간은 매 순간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선택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은 행복할까? 아니다. 불안하고 두렵다. 인간에게 목적이나 역할이 없으니, 어떤 선택을 해도 정답이 아니다. 아예 정답 자체가 없기에 불안하다. 한데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그래서 두렵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인간은 ‘자기기만’을 한다. 선택을 타인에게 위임함으로써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 한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선택지가 없는 천직이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다. ‘던져진’ 존재이기고 하고,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유를 구가할 행복도 있지만, 그 자유가 형벌일 수도 있다. 자기기만으로 세상에 구속적인 삶을 누릴 수도 있고, 세상 문제에 참여해 이 세상 자체를 바꿔가는 적극적인 삶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인간의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영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비판과 정치참여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실존적 상황을 개선하려는 행동이 ‘앙가주망’(Engagement)이다. 앙가주망이야말로 개인이 사회에 책임을 지는 한 방식이요, 지식인의 절대 필요 책무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따라서 사람은 그 때 그 때 다를 수 있다. 이 때 이 말하며 이렇게 행동하고, 저 때 저 말하며 저렇게 행동할 수 있다. 실존으로서의 인간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때 그때 다른 실존적 인간도 자기 선택과 행동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
하물며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이야 말해 무삼 하리오. 윤 대통령이 ‘3대 명언’을 발할 당시에는 진심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순간의 진실’이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자신의 3대 명언과 정반대의 언행을 무엄스레 남발하고 있다.
인정한다.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그때 그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이 절대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책임을 분명히 밝혀 징치(懲治)하는 것이야말로, 서글프지만 현재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시무(時務)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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