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추석 열대야와 ‘엄이도종’(俺耳盜鐘)

조송원 승인 2024.09.18 11:42 의견 0
움베르토 에코와 그의 책 '미네르바 성냥갑'(한글 번역본) 표지.

살다 살다 보니 추석날 ‘폭염 특보’가 내려지는 날도 있구나! 이 문자를 받고, 방안에 있는 온도계를 감나무 그늘 1.5m 높이에 세워둬 봤다.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43⁰C까지 치고 올라간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을 살아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어쩜 ‘가을저녁’(秋夕)은 언어의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음력 8월 15일은 ‘하석’(夏夕), ‘여름저녁’이라 해야 이름과 실질이 맞아떨어지겠기 때문이다(名實相符).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기후변화’란 용어를 기후위기나 기후붕괴, 기후비상사태로 바꾸겠다고 밝힌 것이 벌써 5년 전인 2019년 5월이다.

그렇다! 기후변화라 하기엔 추석의 땡볕이 너무 뜨겁다. 가을날 폭염은 일시적인 기후변화가 아니다. 기후붕괴이고 기후비상사태임을 증거한다. 기성세대는 어찌저찌 견뎌낸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구체인 대책을 세워 실행하지 않는다면, 자녀와 손세대는 기후붕괴로 생존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산업혁명기를 기점으로 200년이 되자 기후도 변했다. 한데 자연의 변화를 가속화한 인간은 참 변함이 없다. 살아가는 모습과 방법만 달라졌을 뿐 그 속성은 어찌 그리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을까. 10년, 200년, 2000년 전뿐 아니라, 역사 이래로 인간의 속성은 변한 게 없는 듯하다.

2011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선택했다. 직역하면,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이다. ‘자기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컬을 때 쓴다. 나아가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뜻도 된다.

이 성어의 출전은 『여씨춘추』이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전국시대 말기 거상(巨商)에서 진나라의 재상이 된 여불위이다. 그는 자기의 빈객 3000여 명에게 각각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저술케 했다. 그것을 「팔람八覽」, 「육론六論」, 「십이기十二紀」 등 이십여 만 언言으로 모아, 이것이야말로 천지, 만물, 고금의 일을 다 갖추고 있다고 여겨 『여씨춘추』라고 불렀다.

여불위는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하여 이 책을 함양의 저잣거리 문에 펼쳐놓고 그 위에 천금을 걸어놓고는, 누구든지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능히 이를 가감한 자가 없었다.

『사기열전』/「여불위 열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훗날 한(漢)의 고유(高誘)는 <여씨춘추 서>에서, ‘나(고유)는 당시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재상을 무서워하고 그의 세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엄이도종’의 출처인 ‘여씨춘추/육론/불구론/자지(自知)’를 보자.

「범씨(范氏)가 멸망하자, 백성 중에 그의 종을 얻은 자가 있었는데, 이를 등에 지고서 달아나고자 했으나, 종이 너무 커서 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치로 이를 깨뜨렸더니 “땡”하고 소리가 났으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서 자기에게서 빼앗아 갈까봐 재빨리 자신의 귀를 막았다.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이 이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군주 된 자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 이와 똑같지 않은가?」

교수신문은 ‘엄이도종’이 선정된 이유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대통령 측근 비리 등 각종 사건과 정책 처리과정에서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비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의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다.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 어째 이리도 윤석열 대통령과 빼쏘았는가. 물론 현 대통령의 무도함의 정도는 비교불가이기는 하다. 하필이면 병역미필도 똑같다. 이명박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 ‘기관지확장증’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정주영 회장과 밤새도록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씨름왕’까지 차지했다. 의혹 제기에 이명박은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해명했다.

군대에 가지 못할 정도의 ‘부동시’가 어찌 정상적인 검사 업무를 수행했을까? 의혹 제기에 시력검사 결과만 보여주면 깨끗이 해소될 터인데, 아직 시력검사 결과를 보여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퇴임 후 이명박은 어떻게 되었나? 형 이상득도 감옥에 갔다. 이명박은 2020년 10월 29일 징역 17년, 벌금 130억, 추징금 57억 8천여만 원의 원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런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상이한 형태의 비극들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들이 있으며, 그것에 비추어 볼 때, 역사학은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 지극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삶의 스승’이다.” -움베르토 에코/『미네르바 성냥갑』-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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