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26. 기백과 축희

박기철 승인 2025.01.09 19:49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가 있는 저곳의 다섯 특징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26. 기백과 축희

너 얼굴이 허연 게 서양인이네. 당연히 벨기에란 나라 들어 봤겠지. 벨기에가 뭐로 유명한지 알겠네. 오줌싸개 동상은 유명하기는 해도 실제로 가서 보면 너무나 작아서 유명세에 비하면 허접하기로 유명하지. 실망스런 관광지 1위에 꼽히는… 르네 마그리트란 미술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예술가일 거야. 그의 박물관에 가면 그가 그린 그야말로 빅아이디어 넘치는 작품들이 많아. 그만큼 벨기에는 아이디어의 나라야. 벨기에란 나라는 작지만 유명한 게 많아. 맥주도 유명하고 초콜렛도 유명한 게 많아. 난 내가 다스렸던 벨기에를 초콜렛의 나라로 만든 1등 장본인이야. 우리나라에는 멋진 건축물도 많은데 그것도 내가 지시하여 만든 것들이야. 그러니까 나는 국부로 추앙받아도 충분한 인물이야.

개떡 같은 말 지껄이지마. 뭘 그리 둘러대. 네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너도 알면서 얍삽하게 내 앞에서 너를 엉성하게 포장하고 그래. 별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내가 좀 똑똑하거든. 넌 그냥 얼굴 허연 악마야. 비참하고 처참하며 잔인하고 잔혹하며 폭압적인 폭력적인 악행을 저지른... 네가 아무리 너의 업적을 씨부려대도 나한테는 그냥 궁시렁궁시렁 쓸데없는 소리나 푸념으로 밖에 안들려. 얍삽한 놈이야, 넌 600만명이나 처참하게 죽게 만든 살인마야. 네가 직접 네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어도 넌 제노사이드를 사주한 놈이야. 네 앞에서 입 꾹 닫고 있어. 어디서 입 터졌다고 지껄여. 네 이 놈! 내가 누군질 알고 입을 나불대는 거냐.

아! 네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괜히 폼 잡았네. 아! 창피하다. 쪽 팔려라. 그냥 가만히 쭈그려 있을 걸. 맞아. 나는 히틀러 만큼이나 나쁜 놈이야. 히틀러는 자기네 민족의 영광을 위한 과대망상으로 악행을 저질렀다지만 왕이었던 나는 나만의 개인적 영광을 위한 사리탐욕으로 악행을 저질렀으니 죄질로 따지면 내가 더 나쁠 수도 있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은 내가 이룬 업적도 생각나기도 하는데 너가 이 방에 나타나니 괜히 폼 잡고 싶어서 헛소리를 했어. 미안! 네 이름이 축희라고 들었어. 나는 못난 놈 기백이야. 이름만 좋아. 나 그만 말하고 너 얘기 들을게. 깨걩~

진작 그렇게 얌전히 나올 것이지. 어디서 개폼을 잡아. 그래도 이제 반성하는 자세가 보이니까 용서할게. 그러다 불쑥 또 헛소리 하지마. 또 그러면 내가 아주 그냥 작살을 낼 꺼야. 알았지?

응. 알았어. 나 그냥 넙쭉 엎드려서 조용히 있을게. 그런데 너는 어찌 그리도 기품이 나냐. 훤하네. 축희 멋져. 아름답고 우아해.

당연하지. 네가 본 대로 나 그런 여자야. 고상함의 극치가 바로 나야. 섬세하게 아름다운 로코코란 예술양식은 내가 유행시킨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알려진 엘리제궁은 당시 왕이 나한테 선물한 대저택이었어. 지금은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지. 나는 우리나라 문화를 진흥시키고 융성토록 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 한마디로 어둠의 꿈을 일깨우는 계몽(啓蒙) 사상은 나의 지원 속에 이루어진 것들이었어. 내가 살았을 때는 그야말로 우리 인류가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희망을 가지며 살던 때였어.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 애덤 스미스, 임마뉴엘 칸트, 데이비드 흄과 같은 유명한 외국 사람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라부아지에 몽테스키외 달랑베르 루소 디드로 볼테르 케네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나랑 동시대를 살았어. 내 자랑을 좀 하자면 이 시대 계몽사상가들은 알고보면 내가 키워낸 사람들이야. 나는 그들을 통 크게 후원했지. 내가 연 살롱에는 당대의 지성인 지식인들로 늘 북적였지. 내 손엔 늘 책이 들려져 있었어. 그 당시 인류의 과학적 철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전서는 나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거였어. 그만큼 나는 업적이 많아. 여자인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왕이었던 내 남편 루이15세가 나를 전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왕은 나를 이쁜 여자가 아니라 품격있는 인간으로 여겼어. 물론 왕은 처음에 내가 이뻐서 나를 사랑했겠지만, 내가 침대 위에서의 성적 능력이 별로 없어도 내가 젊은 여인들보다 미모가 떨어져도 나를 좋아했어. 워낙에 내가 나의 지적인 능력으로 왕을 사로잡았거든. 왕은 나와 대화하며 여유롭게 있는 시간을 즐겼어. 나는 조금 내성적이며 시니컬한 성격의 왕한테 최선을 다 했어. 왕은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지. 나의 권력은 다 거기서 나온 것이었지. 비록 내가 가진 권력은 아니었어도 나는 내가 가지게 된 권력을 향유했어. 그래서 나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지. “내 시대가 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이야. 그것도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니! 나 대단한 엄청난 여자였어. 그렇다고 내가 나의 호의호식을 위해서만 나의 권력을 사용한 건 아니었어. 다 우리나라의 문화진흥을 위한 일이었지. 덕택에 우리나라는 문화강국이란 평가를 아직까지 듣고 있는 거지. 세련된 문화, 뭐 이런 거 말이야.

축희, 너 훌륭한 여자네. 나도 내 살아생전에 수많은 여인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냥 나는 성적으로 끌리는 이성(異性)적 여자만 보았지 너처럼 지적으로 끌리는 이성(理性)적 여자는 본 적이 없어. 근데 너는 참 대단하네. 일단 너한테서는 지성미가 풍겨.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고상하면서도 우아해. 한마디로 엘리강스해. 그런 매력적 지성미가 굉장히 압도적이야.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힘이 넘쳐. 지성미와 미모가 합쳐진 완전녀일세, 축희!

왕비도 여왕도 아닌 왕의 애인이면서도 고상우아한 미모를 지니며 당대를 주름잡았던 여인

너 말 참 잘한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보네. 그래! 나의 지적인 이성은 당대 최고였지. 그런데 말이지. 내가 너무 똑똑하다 보니 왕은 나한테 정치나 외교까지도 맡겼어.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런 것도 하겠다고 은근히 왕을 부추겨서 맡았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거야. 나는 여왕도 왕비도 아닌 왕의 애인인 정부 주제에 여왕이나 여제처럼 행세하게 되었어. 복잡한 정치에 싫증을 느낀 남편인 왕과 권력을 행사하고픈 나의 욕심이 그렇게 날 만든 거겠지. 나는 정치 외교에 관여하기 시작했어. 소위 비선실세가 된 거지. 그러니 왕을 모시던 왕의 권력자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었지. 내가 국정농단한다는 비난도 들었어. 그래도 왕이 나를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한테 고분고분할 수 밖에 없었지. 그러다 1756년에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어. 7년전쟁이야. 이건 단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아니었어. 겉으로는 왕위계승 문제로 인한 전쟁이었지만 유럽대륙에서 그리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비롯한 곳에서 실리적 이해관계가 얽힌 쩐의 전쟁이었어. 이 7년 전쟁이 일어난 100여년 전에 일어난 30년 전쟁도 로마카톨릭인 구교와 루터 이후 프로테스탄트 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이라지만 이 전쟁도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쩐의 전쟁이었지. 800만 명이나 사망한 어마어마한 전쟁이었지. 30년전쟁 후 100여 년이 지나서 일어난 이 7년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신성로마제국의 주축국인 오스트리아 편을 들게 되지. 당시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황제는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였고, 같은 동맹국인 러시아를 다스리던 황제는 여제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였지. 다 여자였어. 여왕도 여제도 아닌 나는 왕의 정부인 주제에 그녀들 수준으로 등극하며 그녀들과 한 편이 되었어. 이 건 역사적으로 엄청 놀랄 만한 일이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우리나라의 부르봉 왕가는 자고로 철천지 원수였는데 어찌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이 되었으니. 오스트리아 여제, 러시아 여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나 모두 여자라서 3각 부인동맹을 맺은 거지. 당시 왕족이나 귀족 여자들은 치마 안에 페티코트(Petticoat)라는 여성용 속옷을 입어서 우리 세 여인들은 페티코트 세 자매라고도 불렸어. 그 세 자매에 낄 만큼 나의 위세가 대단했지. 인류사에서 한낱 왕의 정부(情婦)가 이렇게까지 여제들과 동맹을 맺으며 정치적 위세가 센 경우는 거의 없어.

왕의 애인이 외국의 여자 황제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아니 그게 말이 되. 나도 왕이었을 때 애인들이 그렇게나 많아도 나는 그녀들에게 돈을 주었지 권력을 주진 않았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너네 나라 참 한심하다. 그야말로 비선실세 국정농단이네. 그 꼴을 왕 아래 귀족 대신들이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거야? 헐!

뭐 어쩌겠어. 왕이 눈감아 주고 오히려 그리 하라고 부추기는데... 베르사이유궁전에 있던 귀족들은 속으로는 이를 갈았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간사한 게 말이지. 이 전쟁에서 이겼으면 나를 그냥 그렇게 두었겠지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졌어. 다 이겼었는데 러시아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터졌어. 나랑 같이 3부인 동맹의 한 축이었던 러시아 여제가 그만 돌연사하고 말았어. 지병이 있었나봐.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던 그녀는 정말로 캡짱이었어. 여자이면서 쿠테타로 대권을 거머쥐었거든. 통치도 잘 했어. 결혼은 안했지만 남자 애인들은 많았다고 들었어. 나보다 네 살 많은 그녀를 나는 언니로 여겼지. 그녀는 당시에 유럽의 어머니로 불렸는데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어머니로 불려. 내가 보기에도 멋진 아름다운 여제이자 여왕이자 여인이었지. 그녀의 딸인 오스트리아 공주가 나중에 루이16세와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야.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단두대에서 남편과 같이 목이 잘린… 이 이야기 하려면 아주 길어. 각설하고… 그렇게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는 사이가 좋았어. 아무튼 능력있는 그녀의 지휘 아래 3부인 동맹국의 적국이던 우리는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눈 앞에 두었었지. 프로이센은 거의 대책없이 혼미한 그로키(groggy) 상태였어.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2세는 패배를 예감하며 유서를 쓰고 자살까지도 생각했을 때였어. 딱 그 때 언니가 돌아가셨어. 아! 그런데 그녀 후임에 들어선 황제가 정상이 아니었어. 또라이였어. 표도르 3세와 다른 표트르3세지. 그 놈의 러시아 황제는 적국인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2세를 숭배하고 추앙하며 그냥 전쟁을 중단해 버렸어. 우리가 고생고생하며 전쟁으로 얻은 땅까지 그냥 돌려 보냈어. 어릴 때 프로이센에서 살며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었다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기의 개인적 사정과 취향으로 전쟁을 하는 마당에 적국에 지원군까지 보내다니. 말도 안 되는 여적죄(黎賊與)를 일으킨 바보였어. 그런 놈이 무슨 차르야. 완전 미친 놈이지. 그 놈은 결국 그 미친 짓을 해서 마누라한테 쫒겨나고 말아. 그리고 곧 죽었어. 그 놈 부인이 여제가 되고... 자기 개인한테까지 치명적 일을 벌인 이 미친 황제 놈 하나 때문에 7년 전쟁에서 우리 3부인 동맹국은 결국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어.

아니, 어떻게 새로 들어선 황제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전쟁을 중지하고 적국으로부터 뺏은 땅을 돌려 보내고 적국에게 지원군까지 보낼 수 있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네? 아까 너네 나라는 철천지 원수국들끼리 동맹을 맺더니 이번에는 적국을 지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네. 거 참! 인간사 신기하네. 특이하네. 어이없네. 유난이네. 그래서 너네 나라까지 지고 말았다며? 어떡하냐? 너를 포함한 3부인 동맹국의 주축인 네가 낀 전쟁에서 지고나니 네가 좀 안좋아졌겠다. 남자 놈들이 들고 일어났겠어.

응, 그렇게 되었어. 우리,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지고 프로이센과 영국은 전쟁에서 이겼어. 이로 인해 프리드리히 2세는 독일인들로부터 대왕이란 칭호를 받고 있지. 나한테는 아주 웬수야. 내 원래 성을 빗대 날 보고 생선집 아가씨라고 조롱하던 놈이었어. 나보다 열살 많은 놈이 아주 건방졌지. 또 프로이센과 동맹국이었던 그 놈의 얄미운 영국놈들은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식민지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지. 식민지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나가 떨어진 거지. 나중에 영국놈들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며 떵떵거리게 된 건 이 7년 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하고 프로이센과 영국이 승리했기 때문이야. 우리나라는 이후 별 볼일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어. 물론 우리나라에서 나폴레옹이란 희대의 싸나이가 나와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워털루 전투에서 최종 패배하고 말았지. 나 죽고 100여 년 후 우리나라는 프로이센 놈들과 또 전쟁을 하는데 한자로 음차해 보불(普佛)전쟁이라고 하지. 여기서 보가 프로이센이고 불이 우리나라야. 이 전쟁에서도 우리는 지고 말아. 비스마르크라는 고집불통 놈이 이끌던 프로이센은 여기서 이겼기에 왕국이었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동양인들한테 독일, 또는 덕국으로 불리는 도이치(Deutch)로 통일되지. 이후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강대국이 되지. 1차 대전 때는 우리가 독일 놈들한테 이겨서 좀 앙갚음을 했지만 2차 대전 때는 싸워보지도 못했어. 히틀러 나치놈들 군대가 우리 에펠탑 주변을 의기양양하게 돌아 다녔지. 현대사에서 가장 언밸런스한 사진이야. 무식한 게르만 놈들이 어디 우리 우아한 프랑스 수도 중심부를 어슬렁거려! 아우, 억울해. 나 죽고 나서지만 이후로 우리나라는 그냥 5년 동안이나 꼼짝 못하고 지배당하고 말았어. 물론 레지스탕스들이 싸우기는 했어도 미약했지.

너 뭐 그리 너 죽고 난 후의 일들까지 자세히 다 알아? 쓸데없이. 그냥 여기서 맘 편하게 지내. 명복을 누려.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남자 놈들이 아주 얍삽하고 치사하고 간사해서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좀 나냈기로서니 여자인 내가. 그것도 왕비도 여왕도 아닌 그냥 왕의 정부 주제인 내가 다 그 7년 전쟁을 지휘하며 주도했겠어. 물론 내가 임명한 장군이 있기는 해. 그런데 지고 말았지. 이후 우리나라는 몰락의 길을 가게 되고...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되었느냐? 나는 전쟁패배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어. 사실 ‘3부인 동맹’이란 말도 전쟁 패배 이후 더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지. 그러니까 다 나한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거에 나는 말리게 된 거지. 내가 정계를 좀 장악한 측면은 있지만 여자인 내가 얼마나 장악했겠어. 주요한 의사결정은 다 남자 귀족 정치인이나 장군들이 한 거야. 나는 거기에 좀 거둔 거 뿐이고... 그런데 지고나니까 패배의 원인을 모조리 내가 뒤짚어 쓰게 되더라구. 나는 하도 속상해서 몸이 많이 상했어. 그러다 폐결핵에 걸리게 되었지. 7년 전쟁 패배 이후 1년이 지나서 나는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어. 인생이란 게 참 아파 슬퍼. 어린 나이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딸을 잃고 권력의 암투가 펼쳐지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지냈던 나의 화려하면서도 나중에 억울하기만 했던 나의 20년 세월을 끝났지. 내 나이 43세 때였어. 그래도 왕은 나를 애달프게 떠나 보냈다는데. 나의 알량한 육체가 아니라 나의 우아한 지성과 고상한 정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였어. 어라! 뭔 소리야. 쿵쿵쿵쿵 거리네. 뭔 일이래. 기백아! 좀 알아 봐. 뭔 소리인지…

박기철 교수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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