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가 있는 저곳의 다섯 특징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21. 갑철과 신희
나 갑철은 아주 무척 매우 나쁜 남자야. 싸가지 없이 무례하고 기고만장하며 건방지고 나대기 좋아하는 또라이같은 사람이기도 했어. 그러니 나랑 섞이지 않는 게 좋을 걸. 괜히 나랑 엮이면 좋지 못할 수 있어. 날 경계하는 게 좋을 걸.
나 신희는 남자 다루는 게 내 특기이자 재능이야. 나쁜 남자들도 다룰 줄 알아. 살아생전에 내가 가지고 논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 남자들은 당대에 다들 내로라하는 사내들이었어. 염려마. 그런데 너는 무슨 남자가 그렇게 잘 생겼어. 여자는 이쁘고 볼 일이고 여자는 잘 생기고 볼 일이라는데 넌 일단 엄청난 미남이라 호기심이 발동하네. 뭘 먹고 그리 잘생겼는지…
너 별로 이쁘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너한테 죽고못사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희한하네. 특이하네. 모를 일이야. 아무튼 나도 내가 잘생겼다는 걸 알아. 사람들은 내 수려한 외모에 일단 반했어. 살아생전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어. 그러나 나는 최고 배신자란 소리를 듣게 되지. 플루타르고스란 자가 쓴 역사서에 의하면 나는 아테네 최고의 배신자로 찍혔어. 그 책이 꼬레아란 나라에서는 플루타코스 영웅전으로 번역되어 아동들이 읽을 위인전이나 재미있는 만화책처럼 만들어졌다는데…영웅처럼 훌륭한(偉) 사람(人)이 위인(Great Man)이야. 본받아야 할 인물이지. 아동교육용으로 많은 위인전과 영웅전이 나오는 이유야. 이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가장 유명해. 다만 지극히 상업적인 판매용 제목이야. 원제목 어디에도 영웅이란 말은 없어. 플루타르크로도 불리는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짝지어 쓴 대비열전(Bioi Paralleloi)이야. 인물들 삶(Bioi)을 적나라하게 비교(Paralleloi)했을 뿐 영웅전이 아니야. 이 책의 진가는 절묘한 인물대비에 있어. 아동만화로도 나왔기에 가벼운 영웅담같지만 열두 권으로 된 묵직한 인물전이야. 도서관 화재시 딱 하나 끄집어 나와야 할 책으로 꼽히기도 했던 명저이기도 했어. 그리스와 로마의 23쌍 인물대비들 중 배신자 대비도 있어. 여기에 내가 나오지. 그리스의 나 알키비아데스가 어찌 조국 아테네를 배신하고, 로마의 코르넬리우스가 어찌 조국 로마를 배반하는지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서야. 일단 그런 영웅전에 내가 올랐다는 건 나한테 영광이지만 사실 그 책은 영웅전이 절대로 아니야. 비교열전이야.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도 열전이라는 게 여러 인물들의 인생 역사잖아. 난 그 인생역사 책에서 그리스를 대표하는 배반자로 등장하고 있어.
넌 배반자가 아니라서 억울하다는 거야. 뭐 변명할 거라도 있다는 거야. 네 잘 생긴 얼굴 보니까 그럴 거같은데.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배신자인 건 맞아. 나의 조국 아테네를 배신한 놈인 건 맞아. 그런데 내가 왜 배신했냐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 그건 변명이 아니라 해명이야.
아! 변명이 아니라 해명이라고... 거 참, 너 얼굴도 잘 생긴 애가 말도 참 잘 하네. 너 살 때 너네 사람들이 말을 참 잘 한다고 들었어. 너네 때 말을 꾸미는 수사학(修辭學)인 레토릭이라느 게 나왔다니 살아생전에도 네가 얼마나 말을 잘 했겠어.
그건 맞아. 나는 말도 잘 했고 말이 모는 고대 올림픽 전차(戰車)대회에서도 1등을 할 만큼 체력도 뛰어났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외삼촌의 조카라 가문도 최고로 좋았고 내가 모시던 스승은 서양사상의 아버지로도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였어. 요즘 저 어느 나라에서는 테스형으로 불린다더군. 소크라테스보다 테스형이 발음하기 좋으니까 나도 테스형이라 부를게. 나보다 나이가 스무살 정도 많으니 아버지뻘이었던 테스형은 나와 같이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보병으로 참전했어. 당시 지독히도 고생했지. 죽을 뻔한 일도 많이 겪었어. 테스형은 그 전쟁터에서 심각하게 부상당한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셔. 그러니 내가 평생스승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지. 테스형과 내가 동성연인 관계였다고 떠들던데… 그건 단연코 아니야. 나는 그를 스승으로 흠모했을 뿐이지 내가 감히 테스형인 스승님과 지저분한 동성애를 벌인 건 아니야. 그냥 그건 그 당시 사람들이 퍼트린 가짜뉴스야. 요즘도 가짜뉴스가 많지만 나 때도 많았어. 당시에 잘 나가던 나를 시기하며 질투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그 때 나의 스승이셨던 테스형도 나와 같이 엮여서 감옥에 갇히고 말지.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했다는 죄명으로… 그 때 대표적인 젊은이가 바로 나야. 테스형은 감옥에서 탈출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당시 민주정 모리꾼들이 내린 독배를 마시고 돌아가셨어. 그 때 테스형은 역사에 남는 한마디를 남기셨지. “악법도 법이야!” 이 말을 잘 해석해야 해. 테스형은 악법도 법이니까 법을 지키기 위한 준법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독배를 마신 게 절대로 아니야. “악법도 법이야?‘ 이렇게 악법도 법이냐고 조용히 항의하면서 쿨하게 독배를 한잔 쭉 들이키시곤 돌아가셨지.
아! 그렇구나. 나도 소크라테스가 악법이라도 법을 지키기 위해 독배를 마신줄 알았는데 그 반대로구나. 당시 어리석은 민중인 우중(愚衆)의 지지를 받으며 폭압적이었던 민주정의 위정자들에게 항의하면서 독배를 마신 거였구나.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비장한 죽음 덕분에 역사에 길이 남았잖아. 서양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며… 책 한 권 쓰시지도 않았으면서도… 물론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책으로 기록한 플라톤과 같은 훌륭한 제자를 잘 둔 덕분이겠지. 너도 플라톤처럼 테스형의 제자였지만 너는 아주 나쁜 쪽으로 테스형의 제자가 되었네. 좀 억울하긴 하겠다.
플라톤, 금마는 나보나 스무살 정도 어린 애였는데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후배야. 그가 스승인 테스형의 언행을 기록한 덕택에 테스형은 서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된 거야. 테스형은 제자를 잘 두었어. 나같이 못난 제자를 두었기 때문에 돌아가셨지만 플라톤같은 제자를 잘 둔 덕분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았어. 위대한 성인으로…
원래 성인들은 제자를 잘 두었어. 테스형도 그렇고 공자도 훌륭한 제자들을 잘 두어 공자님 말씀의 기록인 논어라는 책이 나오게 되어 유교의 시조가 되었고, 부처님도 훌륭한 제자들을 잘 두어 부처님 말씀의 기록인 불경이 나오게 되었고, 예수님도 훌륭한 제자들을 잘 두어 예수님 말씀의 기록인 성경이 나오게 되었지. 테스형 공자 부처 예수를 4대 성인이라고 하는데 다 훌륭한 제자들을 잘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지.
그렇고 말고지. 그런데 난 테스형의 훌륭한 제자가 아니었어. 못난 제자였지. 기고만장하며 이리저리 날 뛰던… 끝내 조국을 배신한… 그래서 조국이 멸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놈이 되고 말았어. 그래도 난 억울해. 내가 조국을 멸망케 하였다지만 나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야. 다만 하도 나의 정적들이 나를 못잡아 먹어 나를 공격하기에 조국을 배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국을 배신하게 된 거지. 아 나의 조국 아테네... 정말로 훌륭한 나라였는데. 서양 모든 학문들은 다 나의 조국 아테네가 속한 그리스에서 기원하며 시작되었어. 내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업적은 놀라워. BC 500년 전후로 거대한 제국도 아닌 나의 조국 아테네 등 척박한 도시국가와 시라쿠사 등의 식민도시에서야. 과학 수학 기하학 문학 철학 역사학 예술학 정치학 의학 윤리학 수사학 음악학 등은 모두 그리스에서 발원했어.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 탈레스, 피타고라스,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아시소포스(이솝), 히포크라테스, 데모크리토스, 헤로도토스, 솔론,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데스, 아르키메데스 등등등… 이렇게 위대한 위인들을 품었던 고대 그리스가 멸망했어. 윗나라 마케도니아에게 먹히더니 끝내는 로마제국한테 먹혔어. 내가 그런 조국멸망의 원인 제공자였다는 자책감이 커. 그렇지만 나를 죽이려고 나한테 악랄하게 달려들던 내 동족들한테는 아직도 증오의 마음이 커. 내가 아무리 기고만장하고 오만방자했다고 쳐도 배신자인 나 때문에만 내 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건 아니야. 나는 스파르트에서 왕비와 간통해서 아들까지 낳아 저 멀리 동방의 페르시아로 도망갔다가 다시 아테네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밀린 아테네 놈들은 나를 끌어들이기 시작했어. 내가 워낙 전쟁을 잘 했거든. 나는 천부적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스파르타와의 해전에서 이길 수 있었지. 배신자였던 나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눈부신 승리였어. 덕분에 나는 다시 나의 조국 아테네로 돌아갈 수 있었어. 그런데 나를 그냥 내버려둘 아테네 민주정 위정자 놈들이 아니었어. 좀 살만하니까 나를 증오하는 사람들 본성이 그냥 그대로 드러났어.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에서 내가 전장에 나서는 꼴을 못보던 놈들이었어. 나는 그냥 후방에서 작전지도를 했는데 전반에서 내 말을 들을 놈들이 아니었어. 결국 나보다 덜 떨어진 후진 놈들이 스파르타와 싸우다가 완전히 지게 되지. 아테네가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속한 스파르타와 싸운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의 패배야. 투키디데스라는 역사가가 그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지. 스파르타가 승리하고 아테네가 패배한 전쟁... 난 아테네 패배의 최대 원인 제공자가 되고 말았어. 전쟁 초반에는 나라는 배신자가 그렇게 패배케한 이유가 되긴 했어. 하지만 후반 전쟁에서 패배한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바보같이 띨띨하게 싸운 나의 정적놈들 때문이야. 만일 내가 세운 작전계획대로 싸워서 아테네가 승리했다면 나는 전쟁 영웅이 되었을 거야. 하지만 지고 말았지. 결국 나는 아테네에서 쫒겨나 지금의 튀르키에 지역 프리지아의 어느 후미진 곳에서 살다가 암살당했어. 우리나라인 아테네를 먹은 스파르타의 권력자들은 나를 경계했어. 테스형의 제자로 나랑 같이 동문수학했던 친구놈도 나를 죽이려는 일에 가담했어. 그들이 보낸 암살자들은 불화살을 쏘아 우리집을 불살랐어. 나는 시커멓게 불타 죽었어. 내 나이 45살 때였어. 후세 사람들은 날더러 풍운아(風雲兒)라고 하더군. 정말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던 모질고 바쁜 인생이었어.
참으로 너의 인생 대단하고 엄청나구나. 그 옛날에 스케일이 커. 아테네 사람이 스파르타에 번쩍, 페르시아에 번쩍, 프리지아에 번쩍! 풍운아 맞네. 그런데 사람들은 널 배반자 풍운아로 여기는 게 많지? 네 말을 들어 보니 억울한 점과 해명할 면이 있었네.
나는 배반자였지만 그렇게 내가 배반하게 만든 놈들도 있었다는 거야. 잘 나가는 나를 시기 질투 증오하던 후진 놈들. 외모든 뭐든 능력 면에선 나랑 상대가 되지도 않은 놈들, 믿을 거라는 떼쓰는 거 밖에 없는 놈들… 사람들을 선동하여 나를 배반자라고 몰아 세운 놈들... 그리고는 지들 낮고 얕은 천박한 작전으로 싸워 패배한 놈들… 패배는 지네들이 자초하고선 나를 패배의 원인자라고만 우겨서 책임회피하는 놈들… 신희야! 이 갑철이가 좀 이해가 되니? 변명이 아니라 해명이 되었나? 내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야. 다만 내가 그리 잘못한 사정이 있었다는 거야. 좀 알아주길 바래.
알았어. 난 남자들이랑 이렇게 대화하는 게 좋아. 그런데 남자들은 결국은 성적관계인 섹스를 원하더군. 나는 어떤 편이었냐 하면? 난 좀 특이해. 아주 특이해. 대화가 되며 똑똑한 남자랑은 섹스를 일체 하지 않았어. 난 정신적인 교감과 육체적인 교감을 완전 이분화하여 생각했어. 남자와의 정신적 교감을 우선시 했지. 정신적 교감이 되면 육체적 교감은 아무 필요없는 것이라고 여겼어. 여자인 내가 그런 게 옳다고 여긴 거지. 하지만 남자들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난 똑똑한 남자가 아니라 그냥 남성적 매력이 있는 띨띨한 남자들한테는 내 몸을 허락했어. 그런 남자들과는 정신적 교감은 필요없다고 여긴 거지. 그런 남자들과 관계하여 임신도 했어. 그렇다고 애를 낳지는 않았지. 난 당시 교수이던 똑똑한 남자랑 결혼까지 했지만 남편과도 육체적 관계는 아예 일절 없었어. 남자들이 하도 나한테 치근덕거리기에 난 내 말 잘 듣는 착하고 순한 만만한 똑똑한 남자 하나를 골라서 결혼했어. 나의 유부녀 신분을 핑계로 나한테 불나방처럼 마구 달려드는 귀찮은 남자들을 쳐낼 목적으로 한 의도적 결혼이었어. 남편과는 거의 평생토록 결혼관계를 유지했지만 남편과는 육체적 관계가 한 번도 없었어. 물론 남편은 남편으로서 육체관계를 정당하게 요구했지만 난 그냥 단칼에 거절했어. 그러고도 내 남편은 나의 끊임없는 남성편력을 허락했어. 마음이 넓은 남자라서 그랬다기보다 감당이 안되서 그런 면이 커. 그러니 나의 외도를 허락했다기보단 그냥 조용히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던 거지. 참을성 인내심이 엄청많은 남자였다는 건 인정해.
너 좀 이상한 여자네. 또라이 아니야. 남자들을 가지고 놀았구만. 남편도 가지고 놀고. 보아하니 그렇게 이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여자인데. 내가 보기엔 몸매도 좀 빼빼하니 별 육감적 매력도 없는데 네가 뭐 좋다고 남자들이 너한테 환장을 했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네. 신희, 너를…
난 알아. 난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내가 예쁘다는 걸 알아. 아니, 난 내가 예쁘다고 자부했어. 그리고 나의 정신적 수준이 아주 높다는 걸 알아. 그러니 정신적 수준이 맞는 남자와는 정신적 대화상대가 되는 거고, 그러니 육체적 섹스 파트너가 될 수 없다고 내가 나의 삶의 규칙으로 일빙적이게 정한 거지. 정신적 수준이 나보다 낮은 편인 보통 일반의 평범한 남자와는 섹스 파트너가 되는 거고. 그러니 정신적 수준이 높은 똑똑한 남자들이 보기엔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 다들 젠틀맨 체면에 남자의 완력을 써서 무력으로 날 어떻게 겁탈할 수도 없고… 다행이도 내가 만난 남자들은 다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었어. 신사들이었어. 유명한 남자들이 아주 많아. 내가 일일이 다 언급하기 힘들 정도야. 한둘 서넛이 아니야. 그 남자들 다 태우면 한 트럭 정도는 되. 그냥 대충 그런 줄 알아. 자세히 알려하면 다쳐. 네 머리가 다쳐.
참 나! 더 다시 태어나도 또 그렇게 할래? 똑똑한 남자들한테 못되게 굴래? 여기서도 네가 아직도 잘 했다고 하는 거야?
뭐 그런 건 아니야? 특히 나로부터 거절당해 정신이상이 되거나 자살까지 한 남자들한테는 너무너무 미안하지. 미안하단 말로 용서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렇다고 내가 아주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난 아주아주 무지무지 너무너무 영악한 여자야. 나 살아생전에 나는 내가 내 몸을 허락하지 않는 그 똑똑한 남자들의 유명세에 힘입어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었어. 사람들은 나를 유명 작가로 인정하더군. 어찌 보면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이분화하는 나의 삶은 나의 존재감을 올리는 나의 영악한 처세이기도 했어. 아무튼 나는 못된 그러면서도 잘난 여자임에 분명해. 그런 나도 늙어가는 건 어쩔 수 없더군. 늙어가는 중에도 젊은 남자들이 늘 나한테 달려들었지. 그렇게 으시대며 살던 나도 죽을 때가 되니 죽더군. 말년에는 병을 달고 살았지. 그러다 76살에 명을 달리 했지. 그런데 난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어. 내가 뭐 대단한 범죄를 저지를 것도 아니고, 나라를 망하게 한 것도 아닌데… 다만 숱한 남자들의 구애를 거부하며 그들을 정신적으로 괴롭게 한 거 밖에 없는데… 어! 그런데 왜 이렇게 밖이 어수선해. 갑철아, 좀 알아봐.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