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20. 계성과 미호

박기철 승인 2024.10.22 10:54 | 최종 수정 2024.10.22 11:33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가 있는 저곳의 다섯 특징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20. 계성과 미호

난 이래봬도 인류 최초 본격적 제국의 막강한 권력자였어. 내가 봐도 난 무시무시했지. 그러면서도 난 똑똑한 지배자였어. 당대에 나만큼 영리한 왕은 없어. 난 학식이 많았어. 나 우습게 보지마.

누가 우습게 본데? 너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있구나. 그리도 떵떵거리고 살았다면서 뭘 그리 미련이 많으실까? 나는 너를 우습게 안보니까 맘 편히 가져. 나는 남자 맘을 편하게 하는 선천적 재능을 지닌 여인이었어. 그토록 무시무시한 황제도 내 앞에 오면 그냥 순한 양같은 사내가 되었지. 나는 하녀에서 포로로, 포로에서 창녀로, 창녀에서 공작부인으로, 공작부인에서 황제의 정부로, 황제의 정부에서 황후로, 마지막에는 황후에서 황제까지 된 여자야. 나만큼 바닥에서 최고 꼭대기까지 다양하게 신분상승한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 아마도 없을 거야? 그 비결은 내가 가진 부드러운 매력 덕분이야. 물론 이쁘기도 했지. 그건 기본이고 난 부드러운 매력으로 남자를 편안하게 품는 재능이 있었어.

아! 네가 그런 여인이었구나. 나도 너 같은 여인을 만났어야 하는데… 막강한 최고권력자인 나한테는 어여쁜 여자들이 많았어도 너처럼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인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네. 너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나의 강압적 통치 스타일이 바뀌어 좀 더 내가 더 오래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까? 에유! 지금와서 다 부질없는 소리다. 여기에서 내가 무슨 허튼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나는 살면서 할 꺼 다 하고 살았어. 나는 지는 법을 몰랐어. 패배가 없이 이기기만 하는 승리의 정복군주였어. 내가 쳐들어간 나라는 다 쑥대밭이 되었어. 인정사정 볼 거 없이 잔인하게 토벌하며 약탈했지. 그냥 잔인한 게 아니라 포악할 정도였어. 나 때 이집트 놈들이 까불어 댔는데 나는 그놈들 완전히 박살을 냈어. 그런데 그런 나의 잔인함은 내가 시초가 아니야. 다 물려받은 거였어. 나보다 먼저 왕을 한 선조들은 나보다 더 무시무시했어. 나보다 먼저 살았던 나의 선조 왕은 다음과 같은 글을 비문으로 남겼지. “나는 귀족들의 껍데기를 벗겼고 3000명의 포로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 나는 한 명의 포로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코와 귀를 베어 내기도 하였다. 수많은 병졸들의 눈을 도려내가도 하였으며 처녀들을 통째로 굽기도 하였다.” 자랑이라고 이런 글을 남기면서 자기의 잔인함을 과시했지. 글 만이 아니라 돌에다 그렇게 하는 것을 부조(浮彫)로 새겨서 그렸어. 그런 그림만 보더라도 끔찍하지. 우리나라의 잔인한 전통이 원래 그랬어. 나랑 이름이 비슷한 선조 왕은 아예 이렇게 선언했어. “짐은 잔인하고 전쟁에서 선두를 달리는 온 천하의 왕이며… 굴복하지 않는 자들을 모두 짓밟아 버리고 온 세상 사람들을 내 손아귀에 넣었느니라!” 아예 의도적으로 자신이 잔인하다는 걸 대놓고 말했어. 그렇게 해야 쳐들어 가려는 나라의 사람들이 목숨만 살려 달라며 벌벌 떨 거 아니겠어. 우리가 불러 일으킨 공포심 때문에 스스로 우리한테 항복하겠지. 그래서 수많은 제국들 중에서 우리 제국은 가장 잔인한 제국으로 유명하게 된 거야.

알겠다. 너가 누구인지… 너네 나라가 아시리아 맞지? 가장 잔인하면서 강력했다는 인류 최초의 본격적 제국! 그런데 너네 후손들은 왜 그리 약해졌어. 요즘 저 아래 동네 사정을 들어보니 미국한테는 아예 쳐발리고 이스라엘한테는 당하기만 하던데…

나도 저 아래 세상 돌아가는 거 들어서 알아. 답답해 죽겠어. 어디 나 같은 놈 어디 안나타나나? 내가 환생하여 저 아래 인간세상으로 내려간다면 내가 아주 본때를 보여줄 텐데…

아서! 너라고 별 수 있겠어. 너 때랑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 너 때는 칼로 싸울 때고 지금은 폭탄으로 싸울 때야. 발사해서 날아가는 미사일 폭탄도 있고 조종해서 날아가는 무인기 폭탄으로 때려 부수는 시대야.

그건 알겠는데.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나 때는 이집트도 우리한테 쳐발렸고 북이스라엘 놈들도 우리 선조가 멸망시켰어. 그러니 성경에서 우리는 완전히 몹쓸 나쁜 나라로 나오지. 그렇게 말로만 우리를 공격하던 놈들이, 우리한테 쩔쩔매던 놈들이 지금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세질 줄은 몰랐어. 군사력 기술력 정보력 경제력이 게임이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며… 그냥 난 지켜나 봐야겠다. 내가 여기서 뭘 어찌 하겠어. 근데 내 후예란 놈들이 왜 그리 띨띨한지 모르겠어. 으윽! 성질나.

참아! 그냥 저 아래 동네 얘기 그만! 해봐야 너한테 손해야. 그냥 나랑 너 때 얘기나 해. 너 잘 나갈 때 얘기.

그래. 그게 좋겠다. 나는 그리도 기세등등하게 이기고 누리고 살았지만 죽을 때는 허망했어. 이렇게 유언했지. 유명한 유언이야. “짐은 신과 인간을, 죽은 자와 산 자를 잘 대접했으나 질병과 고통 그리고 불행이 짐에게 닥친 이유는 무엇인가? 짐의 나라의 분란과 짐의 가족의 불화를 참을 수 없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창피한 사건들 때문에 늘 괴롭다. 마음과 육신의 고통이 짐을 짓누르노라, 짐은 고뇌에 울부짖으며 삶을 마감하노라, 죽음이 짐을 덮쳐 쓰러뜨리노라, 짐은 비탄과 한탄에 젖어 밤낮으로 울부짖노라. 신이시여, 언제까지 저를 이렇게 다루시겠습니까? 부디 저를 구원해 주소서!"

학식(學識)도 많은 왕이면서도 잔혹한 학살(虐殺)을 벌여 쳐들어간 나라를 비참하게 만든 학살왕(學殺王)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쳐들어가 죽여놓고 뭔 구원이래? 너도 참 뻔뻔하다. 네 유언을 듣자하니 보자하니 너의 죄악은 회개하지 않고 그냥 괴롭다고 한탄만 하네. 그러면 안되지. 첫마디에서부터 죽은 자와 산 자를 잘 대접했다는 게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네. 나이 들어서까지도 늙어서까지도 네가 그저 잘 했다는 말만 하네. 내가 판단하기는 너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말년에 괴로운 거야. 너한테 불행이 닥친 이유를 모르긴 뭘 몰라? 너는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너의 잘못을 모르고 살았구나. 계성! 너 참 불쌍하다. 나 미호가 널 어찌 다정하게 대하려 해도 안되겠네. 나 참! 그런데 넌 뭐 때문에 그리 괴롭다고 하는 거야?

나는 전투를 벌일 때마다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쟁에서 승리했지. 나 때는 우리 제국이 가장 번영했던 전성기 때야. 그런데 그럴수록 나를 증오하는 적들이 많아졌어. 나는 저 어디 광개토대왕처럼 영토를 넓히며 게다가 지식욕이 왕성해서 인류최초 도서관을 세우는 등 문화창달도 많이 한 명군으로 불려지지고 했어.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치켜 세워졌지만 다른 나라에서 나는 그냥 가혹 잔혹한 탄압자와 끔찍한 악랄한 약탈자로 알려졌어. 그런데 나는 멘탈이 아주 센지라 그런 평가는 얼마든지 견뎠지.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사나워졌어. 아마도 나한테 죽임을 당한 수많은 귀신과 영령들이 날 가만두지 않았던 거같아. 밤마다 악몽을 꾸었지. 결국 정신적 고통이 심해졌어. 육체적으로도 기력이 많이 쇠하게 되니 더욱 그랬어. 결국 나는 죽기 전에 두 아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고 공동통치를 하도록 했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야. 그렇게 나는 38년간의 긴 재위기간을 마치고 죽었어. 아니나 다를까? 내가 죽고 10여년 만에 위대했던 선조 왕들을 이어 내 치세까지 이룩했던 2천년 제국은 멸망했어. 저 아래 쪽 옆 동네 신바빌로니아 놈들한테 완전히 까발려졌어. 그렇게도 강성했건만 역사에서 우리는 완전히 사라졌어. 제국도 허망해, 인생도 허망해.

허망하도다. 허무하도다. 허탈하도다. 삶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일세. 아! 덧없는 삶이여.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강력한 부국을 이루며 1000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리며 그토록 잘 먹고 잘 살고 나서는 늘그막에 이렇게 읊었다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리도 호사롭게 사치를 누리며 살아놓고는 뭔 말을 그렇게 하지? 성전까지 지었다는 사람이? 현명한 지혜의 왕으로 유명한 왕이? 말년에 노망이라도 든 건가? 그런데 네 이야기 들어보니 참으로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네. 아무리 호사와 영화를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았어도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누군들 죽을 때는 다 허한 거야. 나는 40대 초반 나이에 죽었어도 그런데… 나이 들어서 죽으면 육체적으로야 쇠해도 그 만큼 살면서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 많은 것들을 가졌을 텐데 그렇게 많이 가지다 죽으면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허망하겠어.

살다가 죽어보니 정말로 허하더군. 특히 나처럼 엄청난 권력과 물질을 가지다 죽으니 더하더군. 아까 네가 솔로몬왕을 이야기하던데…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하고 마는데… 바로 내 선조 왕께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그러니까 이스라엘도 솔로몬왕 때까지 최고 전성기로 번영하다가 그가 죽고나서 비리비리해졌어. 마찬가지로 나 때가 우리 제국의 최고 전성기로 번영하며 강성하다가 나 죽고나서는 비리비리해진 게 아니라 십여년도 안되서 아예 멸망했어. 내가 권력을 물려 준 두 아들놈들이 통치를 잘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망할 때가 망했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나를 앗시리아 제국 최후의 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내 못난 두 아들놈들 중 하나가 최후의 왕이야. 그런데 그 아들 왕놈은 한 게 하나도 없어. 그냥 나라가 망할 때 그냥 있던 왕일 뿐이야. 그러니 후세 사람들은 나를 마지막 왕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그런데 내 여기서 세상 사람들한테 제발 오해를 풀었으면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여기서 네가 뭔 말을 해봤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알려질 수는 없어. 오해를 풀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그냥 나한테 편하게 이야기해.

프랑스에서 들라크루아라는 화가가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라는 요상한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서 후궁들이 침략자들한테 죽어 가는데도 왕이었던 작자는 침대에 누워 태연히 그 참혹한 광경을 내려다 보는 그림이야. 그런데 말이지. 그 왕이 바로 나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 우리 이천년 제국 역사에서 사르다나팔루스라는 이름의 왕은 없었어. 나는 사르다나팔루스가 아니야. 나는 그렇게 침략자들의 공격에 의해 죽지 않았어. 나 죽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하도 강력해서 평화로웠어. 그런데 나 죽고나서 엉망진창이 된 거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그림에 나오는 왕은 내가 결코 아니야. 화가가 그냥 사르다나팔루스라는 야릇한 가명을 붙이고 그 왕의 비참한 최후를 화가가 상상해서 그린 거야. 그런데 하필 그 왕이 나란 설이 있어서 너무 억울해. 제국의 왕이었던 나에 대한 엄연한 명예훼손이야. 죽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명예를 훼손해도 되나? 우리나라가 하도 다른 나라들한테 잔인한 짓을 많이 해서 그 나라의 최후의 왕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지들 맘대로의 뇌피셜로 만든 그림이야.

아! 듣고 보니 억울하겠다. 그런데 네가 그 그림에 나온 대로 다른 나라의 왕궁을 쳐들어가 거기 후궁들을 능욕하고 불태우고 그러지 않았나? 사루다나팔루스라는 왕이 네가 아니더라도 네가 죽인 왕들 중에 하나가 아니냐는 거지.

아! 그건 그럴 수 있겠네. 내가 그렇게 많이 했거든. 내 선조 왕들도 늘 그렇게 했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제국으로 남게 된 거구.

그렇다면 너 어디가서 또 누구한테 그 그림이 너에 대한 명예훼손이니 그런 개콧구녕 같은 소린 하지마. 설령 명예훼손이라고 쳐도 그냥 내가 행한 잔인한 짓을 회개해. 여기서라도…

네 말을 들어보니 그래야겠네. 내가 너무 네 입장에서 떠들었네. 맞아. 그 그림에서 사루다나팔루스라는 왕은 우리가 죽인 왕들 중의 하나일 거야. 회개하고 반성하고 참회할게. 입 꾹 닫아야겠다. 이제 네 이야기 좀 해봐.

난 너처럼 권력을 누리지 못했어도 누릴 건 다 누렸어. 특히 하녀에에 창녀, 나중에 황후에서 황제까지 된 나는 숱한 남자들을 다 누렸어. 남자복이 많았다고나 할까? 나는 공작의 정부였다가 공작이 황제한테 진상하여 황제의 정부가 되고 황후가 되었는데 그게 다 남자를 잘 만나서 그런 거야. 나는 사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야. 내 능력은 그냥 이쁜 거 하나야. 그리고 남자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에 탁월했지. 내가 누구처럼 무슨 특별한 방중술을 익혀 침대 위에서 남자와의 잠자리 기술이 특별한 게 있는지는 난 잘 몰라.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나를 만난 남자들은 그런 윶체적 기쁨보다 나랑 있을 때의 정신적 즐거움을 좋아했어. 내가 황후였을 때 그 무시무시한 황제조차도 나랑 같이 있으면 고질적 편두통이 사라진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였지만 남자들 마음을 헤아리는 슬기는 있었나봐. 그런데 나는 나한테 다가오는 남자에게 후한 면이 많았어. 내가 남자를 밝혔다기보다 남자들이 나를 밝혔지. 황후가 되어서도 그랬지. 무시무시한 막강한 황제의 여자인 나한테 남자로서 다가오다니! 그 남자 참, 간땡이가 분 남자였지. 그는 황제가 거느리는 또 다른 정부의 오빠였는데 미남이고 남자다웠어. 나는 황제 몰래 그 남자와 밀회를 몇 번 즐겼는데… 그만 황제한테 들켜 버리고 말았어. 워낙 불같은 남자였던 황제는 더 노발대발하면서 그 남자를 단번에 죽여 버렸어. 황제는 몰래 바람 핀 내가 얼마나 미웠겠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황제는 나를 살려 주었어. 황제는 나 없이는 못살기에 날 살려 주었던 거지. 나 그런 여자였어.

너의 남편이던 그 황제 참 상남자일세. 나같으면 그리 못할텐데. 물론 나 때는 그렇게 감히 나의 여자를 건드리는 놈들이 없었지. 그런데 남녀 간의 일은 모르는 거야. 나 몰래 이루어졌던 내 후궁들과 내 신하들 간의 간통 사건이 많이 있었을지도 몰라. 아무튼 너 참 대단한 여자였네. 그런데 네가 황제 사후에 여자 황제가 되었다며?

그랬어. 난 황제가 되는 거에 일도 관심 없었는데 그냥 어쩌다 여자 황제인 여제가 되었어. 내 남편이 52세에 요로결석이란 병에 걸려 죽었어. 요즘에야 그런 병쯤은 치료가 되지만 당시에는 치료가 힘들었어. 불같은 황제였던 남편은 아들을 죽였기에 후게가 없었어. 황태손인 손자가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황후인 내가 황제가 된 거지. 그런데 그게 좋은 게 아니었어. 황제가 되니까 그냥 내가 나가야 하는 행사 많더라구. 아주 추운 날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에 나갔다가 감기에 걸려 고열로 며칠 앓다가 그만 죽었어. 내 나이 43세 때였어. 요절은 아니지만 아까워. 젊은 여자 나이는 아니지만 여인으로서 가장 농염하다는 꽃띠 나이에 죽었으니. 그래도 내 피는 황가에 계속 이어져. 내 딸 엘리자베타가 30년 동안이나 황제가 되고 내 손자 표트르 3세가 또 황제가 되지. 띨빵한 걔가 좀 멍청한 짓을 해서 문제가 되었지. 그 아내가 쿠테타를 일으켜 남편 황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는데 나보다 더 유명한 여제야. 내 이름을 이은 예카테리나 2세야. 나는 그보다 앞선 1세고. 그런데 바깥이 뒤숭숭하네. 어! 뭐야.

박기철 교수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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