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신주와 사라
너 어째 말이 하나도 없는 거야. 여자인 내가 말을 먼저 걸기가 그래서 가만히 참고 있었는데 우째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거 같네. 너 혹시 말 못하는 벙어리 아니야? 말 할 수 있으면 한 마디라도 해봐. 도대체!
꿍
내 말 알아듣기는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는 거야. 아니면 말하기 싫은 거야? 뭐야? 특이하네.
꿍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이 딱 맞네. 그런데 벙어리라면 꿀이라도 먹어야 그렇게 말을 안하는 거지. 넌 도대체 뭐야. 꽃아 놓은 보리자루처럼…
꿍
생긴 거 보면 좀 똘똘해 보이는데. 말을 못할 거같지 않은데. 너 바보지?
아이! 짜증나. 나 좀 조용히 내버려 두면 안되겠니?
우씨! 말을 잘 하네. 그래 잘 했어. 그렇게 말을 하면 되. 나 심심해서 그래. 나도 너보다 여기 먼저 처음 들어왔을 땐 너처럼 그렇게 말이 없었는데…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더라구. 그냥 말하고 사니까 훨씬 마음이 좋아지고 기분도 편해지더라고.
거 참 되게 시끄러운 여자일세. 나 너랑 말 섞기 싫어. 나 조용히 가만히 이러고 있을래. 그냥 너는 너 혼자 혼자말이라도 중얼거려. 심심하다면… 나 그만 괴롭혀.
와우! 말 되게 잘 하네. 내가 문제를 하나 낼게. 문제를 못맞히면 내가 이긴 거야. 너는 졌으니까 나랑 이야기 나누는 거야.OK?
좋아. 어서 문제 맞히고 조용히 있고 싶어. 어서 문제나 내셔.
OK! 문제 낼게. 간단한 문제야. 인류 역사 이래 지금까지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쉬운 문제네. 너무 빨리 맞히니까 재미없겠네. 정답은 모기.
정답이 확실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콜해.
콜
땡! 정답은 사람이야.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 순위로 1등이 모기라는데… 모기는 1년에 대략 대충 대강 70여만 명을 죽인다더군. 사람은 40여만 명을 죽인다더군. 그래서 2등이 사람이라는데. 글쎄, 정말 그럴까? 사람이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인 살인 숫자로 따지자면 사람이 모기보다 적게 사람을 죽일지 모르지만 간접적인 살인 숫자로 따지면 사람이 죽인 사람의 숫자는 모기가 죽인 사람의 숫자를 능가해. 가만히 생각해봐. 교통 사고에 의한 사망도 사람이 죽인 거야. 중국에서 대약진 운동으로 인해 2500만 명이 대기근으로 굶어 죽었는데 이 것도 권력자인 사람이 죽인 거야. 비옥한 옥토로 이루어져 농사가 잘되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으로 1000만 명이나 굶어 죽은 것도 다 권력자의 폭압으로 죽인 거니 사람이 죽인 거야. 캄보디아에서 폴포트 정권은 전국민의 1/4인 200만 명을 죽인 것도 마찬가지지.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유태인이나 집시들을 600며만 명이나 죽인 것도 그렇지. 이렇게 절대 권력자에 의해 대죽임을 당한 사례는 이 말고도 아주 많아. 전쟁에 의한 사망자도 사람이 죽인 거라고 봐야지.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선 8000만 명이나 죽었어. 인류역사 이래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수를 다 따진다면 사람이 사람을 죽인 숫자가 모기가 사람을 죽인 숫자보다 훨씬 많아. 그렇게 능히 짐작할 수 있어.
이름이 사라라고 했나. 사라,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렇겠네. 직접적인 살인 만 살인이 아니지. 인간의 권력욕에 의해 벌어지는 죽임도 살인이지.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도 결국 그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가 있다면 이 것도 인간에 의한 사고니까 사람이 죽인 살인이 되네. 의료사고에 의한 사망도 고의는 아니겠지만 이 것도 의료인의 잘못 때문에 사망한 것이니 사람이 죽인 살인에 포함되겠지.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다는 모기도 사람을 죽이려고 고의로 그랬겠어. 그냥 먹고 살려고 사람 몸에 침을 박아 피를 빨다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감염시켜 사람을 죽이는 거겠지. 처음에 사람이 1위라는 네 말을 듣고 곧바로 반론을 제기하려고 했는데 금새 알아챘어. 맞아!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 모기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었어.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사망이나 맹수들에 물려 죽은 사망, 그리고 본인이 부주의하여 죽은 사망이 아니라면 거의 다 사람이 죽인 사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너 판단이 참 빠르구나. 말끼를 금방 알아듣네.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도 금방금방 생각해내네. 너 머리가 아주 좋은가봐. 똑똑해. 똘똘해. 그럼에도 네가 문제를 처음에 못맞혔으니까 내가 이겼어. 신주, 넌 졌어. 이제부터 꿀먹은 벙어리나 꽃아논 보리자루처럼 있지말고 나랑 이야기 나눠야 해.
알았어. 몇마디 너랑 얘기하니 좀 기운이 도네. 그래도 마음은 계속 우울해. 내가 저지른 일들이 생각나서. 네 말대로 나는 머리가 아주 좋았어. 그런 머리로 아주 신박한 물질을 만들어 냈는데 그게 그만… 어느날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점점점 차차차 그 물질은 치명적인 물질이 되고 말았어. 나는 서서히 점점점 차차차 악행을 저지른 자가 되고 말았어. 나도 모르게…
아니, 도대체 뭔 악행을 저질렀길래 그래. 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였어도 이렇게 여기 들어와서 멀쩡하게 있는데 넌 여기서까지 그러고 있어. 어서 벗어나!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들어. 너처럼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아무리 악독한 살인 사건이라 해도 그냥 그 사건으로 끝나는 거야. 그런데 내가 저지른 일은 직접적 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계속 문제의 심각성을 점점점 더더더 차차차 키워가고 있어. 내가 다른 방에서 다른 여자랑 있을 때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건 플라스틱이야. 46억년 지구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을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거지. 아니 창조해낸 거야. 생명체를 창조한 건 아니지만, 그리고 창조주는 아니지만 난 신물질의 창조자가 된 거지. 처음에 난 위대한 창조자였어. 그게 엄청나게 편리했거든. 내가 만들기 이전에 어떤 이는 당구공을 만들려고 했던 건데, 그 때만 하더라도 천연물질로 만든 플라스틱이었어. 천연수지라고 하지. 하지만 내가 만든 플라스틱은 천연물질이 아니라 100% 인공적으로 만든 플라스틱이야. 인공수지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천연물질로 천연수지 플라스틱 당구공을 만든 금마가 아니라 인공 합성수지인 플라스틱을 만든 내가 플라스틱의 아버지가 된 거야. 나는 내가 만든 물질을 살아생전의 내 이름을 본따 베이클라이트라고 이름지었어. 나중에 플라스틱이라 부르게 되었지. 고대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로 플라스티쿠스(plasticus)는 ‘빚어서 만드는’이란 뜻인데 정말로 내가 만든 베이클라이트는 뭔가를 빚어서 만들기 좋았어. 한마디로 가소성(可塑性)이 짱이었지. 진흙으로 온갖 형태를 빚어서 만들 수 있듯이… 그런데 진흙으로는 아주 가늘고 얇은 거는 빚을 수 없잖아. 베이클라이트로는 크든 작든 가늘던 굵든 길든 짧든 온갖 형태를 가소할 수 있었어. 그래서 플라스틱이라고 부르게 되었어.
아! 플라스틱. 나 살아생전에는 그런 거 없었는데. 네가 만든 거였구나. 나 때는 그런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살았는데 그 거 때문에 뭐가 좋아졌다는 거지?
사라, 너 살 때는 물을 어디에 받아서 물을 썼지. 진흙이나 나무로 빗은 동이에 받아서 썼겠지. 나중에 함석같은 금속으로 만든 양동이에 받아서 썼겠지.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실려고 할 때는 양이나 소같은 동물들의 위를 물주머니로 만들어 다녔겠지.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 물그릇이나 플라스틱 물병을 만들었어. 훨씬 더 편리했자. 그러니 내가 만든 플라스틱은 그야말로 위대한 발명품이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 되고 말았어. 나 살아 있을 때만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나 죽고나서 들려오는 지구발 뉴스가 참혹하더군. 얼마 전에 코끼리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어. 사람들이 자기네 서식지를 파괴하니까 숲에 살던 코끼리들이 배가 고파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가까운 쓰레기장에 와서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쓰레기장에 음식물보다 훨씬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 먹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도 같이 먹는다고 들었어. 성인 코끼리는 하루 100kg을 먹는다는데 인간들이 자기들이 사는 숲을 파괴하면서 먹을 게 줄어든 코끼리들이 인간들의 마을까지 내려와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과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는 거였어.
잠깐만. 코끼리들이 딱딱한 플라스틱을 어떻게 씹어 먹는 거지?
여기서 플라스틱이란 딱딱한 플라스틱만 의미하는 게 아니야. 비닐이나 합성섬유로 만든 옷 등을 포함하는 거야. 폴리염화비닐(PVC)의 상품명인 바이너라이트(Vinylite)에서 유래한 비닐을 일본인들은 비니루라고 부른다지.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모두 이 비니루에 싸서 주잖아. 이 비니루도 알고보면 플라스틱이야. 합성섬유로 만든 옷도 플라스틱이지. 플라스틱에 거품(foam)을 넣은 스티로폼도 플라스틱이야. 타이어의 재료인 합성고무도 플라스틱이지. 그러니까 플라스틱 그릇이나 물병처럼 딱딱한 플라스틱 말고도 세상엔 온갖 플라스틱 제품들이 많지. 모두 다 석유에서 추출되는 탄화수소화합물인 나프타(naphtha)를 결합시켜 만든 고분자화합물로 만든 것들이야. 코끼리들이 쓰레기산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다 먹게 되는 비닐도 플라스틱이야. 그걸 먹은 코끼리들은 어떻게 되겠어. 일단 한번 그 맛을 본 코끼리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끊을 수 없다고 해. 숲에서 먹는 식물들보다 인간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맛있으니까? 그래서 자꾸 매일 오다보면 비닐 쓰레기를 점점 더 많이 먹게 되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음식물이야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코끼리는 소화시킬 수 있을테지만, 비닐 쓰레기는 소화가 되나? 아무리 코끼리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소화가 안되지. 물론 소화되지 않고 그냥 똥구멍으로 배설되어 나오는 비닐들도 있겠지. 하지만 배설되지 않고 뱃속에 남으면 어떻게 되겠어. 장이 막히겠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 사람의 장이 막혔다고 생각해봐. 창자가 비닐로 막히면 장폐색(腸閉塞)이야. 그럼 시름시름 앓다고 죽게 되겠지. 이 때 코끼리들은 배가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며 죽는대. 이런 코끼리의 죽음이 얼마나 슬퍼! 난 눈물이 다 나더라구.
코끼리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거지만 나는 슬퍼서 눈물이 날 수 있겠다. 너처럼… 그런데 그런 코끼리의 죽음 가지고 네가 그리 의기소침(意氣銷沈)해서 풀 죽은 거마냥 지낼 필요는 없잖아.
코끼리의 죽음만 가지고 내가 이러는 게 아니야. 내가 만든 온갖 플라스틱 제품과 상품으로 인해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어. 지금 지구는 땅 바다 하늘인 육해공이 다 쓰레기장이야. 음식물 쓰레기는 생명체가 만들어 내서 버리는 유기물이라 땅에 버려지면 금방 며칠 몇달 내에 분해되어 사라져. 동물들 시체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는 분해되는데 500년이 넘게 걸려. 그리 분해되기도 전에 땅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잘게잘게 부서져 미세-초미세 플라스틱이 되는데 이 작고작은 알갱이들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가지. 지금 바다에는 작은 생명체인 플랑크톤보다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있다고 해. 인간이 물병이나 비닐봉투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느라 태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쓰레기는 없어지지 않아. 하늘로 날라가는 거지. 그렇게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방위적으로 이미 드넓게 펴졌어. 앞으로 더 퍼지게 될 거야. 쓰레기장 지구가 된 거고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될 거야.
아!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지만 똑똑한 인간이 과학 기술 공학으로 그런 쓰레기 문제를 언젠가는 해결하지 않겠어? 너무 자학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그랬으면 좋으련만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이미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그렇다고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아. 다만 인류가 멸망할 거니까? 지금 지구에서 6차 대멸종이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대멸종의 가장 큰 원인은 플라스틱 쓰레기야. 그걸로 인해 기후가 변하게 되고 기후변화는 인류멸종의 최대원인이야. 내가 만든 플라스틱이 인류멸종의 원인이라니! 인류가 멸종되고 나면 지구에 남겨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언젠가 다 분해되어 없어질 거야. 500년이나 1000년 정도 걸리겠지. 그 때 지구는 다시 깨끗해지겠지. 플라스틱을 분해하여 먹고 사는 세균들이 생기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질지 몰라. 하지만 인간들한테는 의미없아. 지구인이 다 죽고말았는데 뭔! 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말 안하다 하려니 좀 힘들어지네. 사라, 네 이야기 좀 해봐. 내 잘 들어줄게. 너 잔혹한 살인자였다며?
OK! 내 이야기 할게. 네 말대로 난 잔혹한 살인자였어. 나의 젊은 피부를 지키기 위해 나는 젊은 여자들의 피를 짜내서 그 피로 목욕한 희대의 살인자였어. 여기 다른 방에서 다른 남자한테 이미 얘기한 게 있는데 아무튼 난 아주아주 나쁜 미친 또라이 극악무도한 년이었어. 그런데 말이지. 인간세상이란 게 참 희한하게 돌아가. 난 마땅히 극형을 당해 죽어도 쌀 년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그런데 밖에 왜 이리 어수선해. 나도 모를 이유를 얘기하려는데 안 되겠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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