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7. 경수와 진숙

박기철 승인 2024.08.18 18:21 의견 0

17. 경수와 진숙

네 이름이 뭐야! 여자지만 격투기 선수처럼 보이네. 힘이 세겠어. 난 경수라는 이름의 남자이지만 너랑 죽기살기로 싸우면 내가 질 거 같은데. 아무리 약해 보이는 남자라도 웬만한 보통의 일반적 여자랑 죽기살기로 붙어 싸우면 남자가 대개 이기거든. 남자는 원래 근력(筋力)이 세서 그래. 그래서 남자는 여자 앞에서 힘 자랑하면서 여자보다 세다고 과시하면 쪼다야.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센 건 당연한 건데 그걸 굳이 여자 앞에서 자랑하고 과시할 필요가 없거든. 그런데 너는 웬만한 보통의 일반적 남자랑 싸워도 능히 이기겠는데… 그만큼 너는 베리베리 스트롱 우먼처럼 보여. 피부도 검고 그러니까 특별히 더 그래 보여. 딱 보기에 엄청난 여자네.

나 진숙이라고 해. 네 말대로 나는 사실 강력한 여자야. 웬만한 남자는 한 방이면 끝나. 너 같은 보통 남자는 나랑 힘으로 붙으면 내가 긍방 제압할 수 있어. 근데 너는 좀 얌전해 보이네. 점잖아 보이는 건가? 어릴 적엔 모범생이었겠어. 여기 들어올 타입이 아닌 거 같은데 어찌 여기 들어온 거야?

나 이래봬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였어. 대통령이었다구. 그 것도 초대 대통령! 그런데 나라를 말아먹은 무능한 대통령이었어. 나는 내 부하 군인들이 일으킨 쿠테타로 장갑차 안에서 총살 즉결처형된 불쌍한 사람이야. 내 입장에선 쿠테타를 일으킨 놈들한테 피살된 거지. 그때 내 동생과 제수씨도 같이 처형되었지. 우리 형제가 죽은 건 억울하지만 지금 여기 와서 생각해 보니까 처형될 만했어. 죽어도 쌌어. 우리도 권력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 물론 내가 권력을 준 내 동생이 주도하여 벌였다지만 결국은 내가 그렇게 해도 좋다고 동생한테 용인하며 벌인 일이니까 결국은 내가 한 짓이었어. 당시에 나를 옹위하는 비밀경찰들은 백색 테러를 자행하면서 수많은 국민들을 잡아 넣고 고문하며 죽이고 그랬지. 내가 직접 그런 건 아니지만 결국은 내가 한 짓이야. 나 나쁜 놈이었어. 그런데 내가 죽고 나서 우리나라는 더 개판이 되었어. 그 개판을 내가 애시당초 깐 거지. 내가 처형되고난 다음에 나를 이은 놈이 2년 후에 하나 나타났는데 그 놈은 나처럼 생긴 건 멀쩡한데 나보다 더했어. 부정부패가 심했어. 물론 토지개혁을 나 때보다 잘 했다곤 하지만 망국을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었지. 금마라도 정신 차리고 내가 망쳐놓은 걸 복구하며 잘 했어야 했는데 금마는 10년 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 재산 불리기에 바빴어. 그러면서 북쪽 놈들과 전쟁을 벌였지. 아무리 세계최강의 나라인 미국이 적극 파병하며 도와 주었지만 별 수 없었지. 금마 부하 장군들은 북쪽 놈들과 싸우라고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들을 북쪽 놈들한테 팔아 먹기까지 했다더군. 징한 놈들! 그야말로 부정부패를 넘어 미쳐 돌아간 거지. 금마 부하들은 거의 다 북쪽 편에 붙은 놈들이었어. 결국 북쪽 놈들한테 우리 남쪽 나라는 먹혀 버렸어. 이때 남쪽 나라에서 살던 수백만 명의 남쪽 사람들이 북쪽에서 쳐들어 온 점령군을 피해 보트를 타고 해외로 탈출하여 보트 피플이 되었는데 10만 명 이상이 익사하거나 해적들한테 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해.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은 당사자인 금마는 비행기를 타고 큰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주하여 78세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더군. 금마 여기서 보면 내가 호통을 칠 텐데… 여기서 그래 봤자지. 아무튼 나는 금마가 그렇게 할 수 있는 큰 멍석을 먼저 깐 장본인이니 나도 큰 소리칠 입장은 안돼.

그래도 너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네. 그랬으면 됐어. 네 잘못을 알면 되는 거야. 그런데 여기 들어와서까지 살아생전에 자기의 잘못을 영 모르고 딴소리 헛소리 개소리 하는 놈들이 많다던데… 넌 그나마 괜찮은 남자야. 모범생마냥 생긴 거처럼… 그렇다고 네가 잘 했다는 건 아니지. 그냥 그랬다는 거야. 나는 여자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구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너는 나라를 망친 암군으로 비난받고 있겠지? 근데 너보다 나쁜 놈은 너 다음에 대통령인지 총통인지 하는 지도자가 된 놈이네. 금마는 너를 반면교사로 삼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망국의 길로 간 거야? 내가 여기서 보게 된다면 정말로 단단히 야단 치고싶다. 그래놓고도 금마는 대통령이었던 지네 나라를 탈출하여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다고? 정말 귀신은 뭐하시는지 몰라.

맞아! 나는 그래도 환갑은 넘기고 죽었으니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서 요절한 건 아니야. 그래도 일찍 죽었지. 내 부하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서. 근데 금마는 나보다 훨씬 더 부정한 짓을 저질러 놓고도 나보다 25년이나 더 오래 살 수 있었어. 세상은 불공평해. 살아생전에 가진 건 공평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기가 벌인 죄에 대한 댓가는 공평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 바르게 살며 착하고 선한 사람이 못살며 일찍 죽는 경우도 많고, 악하게 산 년놈들이 잘 살며 오래 사는 경우도 많아. 그것도 신의 섭리인가? 도무지 인간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도대체 이해될 수 없는…

얘기가 딴 데로 흐르네. 네가 먼저 부정부패하여 너네 나라가 망한 거 아니야? 왜 너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어? 너 말마따나 악당 악인 악마 같은 높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게 인간세상에는 비일비재해. 사람들이 차마시고 밥먹는 일처럼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지. 너는 부정부패하고 무능하여 네 부하놈들이 널 처단해서 일찍 죽었지만 너만큼 부정하며 무능하고 비리를 버리는 놈들이 잘 사는 경우는 쌔고도 쌧어. 그나마 너는 너의 죄값을 받아 일찍 죽은 거라 생각해. 괜히 남이랑 비교하면서 억울해하지 말고…

애시당초 부정 부패 무능 비리의 근원적 뿌리가 되어 이후 나라가 멸망하는데 결정적 단초가 된 놈

응! 알았어. 네 말 잘 들어야겠다. 마누라 말 잘 들으면 떡이 생긴다는데 너는 내 마누라는 아니어도 여기 내 룸메이트니까 여자인 네 말을 잘 들어야겠다, 그런데 너는 어쩌다 여기 들어 왔어?

나는 여자인데도 우선 권력욕이 엄청났어. 내 오빠는 내가 권력욕이 엄청난 걸 알고 내가 아들을 낳으면 내 아들이 왕이 될 줄 알고 나를 불임녀로 만들었어. 나는 아들을 낳을 수 없었지만 내가 왕이 되었어. Queen! 내 오빠의 아들로 왕위를 물려 받으려던 내 조카를 죽이고 내가 왕이 되었지. 중국 명나라 때에도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영락제란 군주가 있었다지. 조선이란 나라에도 조카를 죽이고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라는 군주가 있었다지. 나도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었어. 명나라 영락제나 조선의 세조 때 왕권이 강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듯이 나도 왕권이 강해서 우리 나라를 안정시켰어. 얼굴 허연 포르투갈 놈들이 얼굴 검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우리나라를 먹으려고 하였지만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어. 그 허연 놈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처럼 하고선 나는 내 나라를 지켰지. 결코 우리나라는 그 놈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지킨 성군 여왕으로 기려지고 있어. 우리나라는 나 죽고 500여 년이 지난 후 공화국이 되었는데 초대 대통령은 나를 기리는 시를 쓰기도 했다고 들었어. 지금 우리나라 수도에는 나를 기리는 동상도 있고 내 이름으로 된 거리도 있어. 그 만큼 나는 후손들에게 업적이 뛰어난 여자야. 너처럼 허약하고 비리비리하며 부정부패한 대통령과는 질이 달라.

아! 대단하구나. 진숙! 그런데 그렇게 성군으로 추앙받는 네가 여가 왜 들어왔어? 여기 온 년놈들은 모두 안 좋은 걸로 들어 왔다고 들었는데…

그 얘기를 하려면 좀 챙피한데. 짐승이 미쳐 날 뛰듯이 창(猖)하며 내 옷이 찢겨져서 속살이 보이듯이 피(披)한 창피(猖披)함이 내 몸속으로 몰려 오네. 그렇다고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다고나 하지는 않아. 그냥 좀 쪽팔리고 창피해서 챙피스러울 뿐이야. 챙피하니 내 체면이 좀 깍이는 기분이 들어.

아니 네가 뭘 어쨌길래 그런 창피한 마음이 든다는 거지? 도무지 가늠이 안되네. 뭔가 좀 은밀한 사연이 있을 거 같은데?

그렇지. 은밀하다면 은밀하다고 할 수 있지. 내 은밀한 성생활에 대한 거니까… My sex life. 좀 챙피해도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할게. 여기서 뭔 말을 못하겠어. 나는 불임녀였어. 왕이었던 나의 오빠가 나를 불임녀로 만들었다고 들었지. 날 불임녀로 만드는 과정은 잔인했어. 인정사정 없었어. 나의 성기에 뭔 꼬챙이같은 걸 집어넣고 나의 자궁을 끄집어냈어. 마취도 없이 애기집인 자궁(子宮)이 적출될 때의 아픔은 그야말로 끔찍했지. 나는 그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섰어. 더 강한 여자가 된 거야. 결국 여왕이 되어 무지막지한 아픔을 겪었던 그 힘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내가 여자잖아. 밤이 되면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고픈 여자… 나는 어떤 식으로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었을까? 나는 권력욕이 엄청났던 거만큼 성욕도 엄청났어. 특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녀이기에 그 성욕은 비정상적으로 엄청났어. 자손을 낳기 위한 순리적 성욕이 아니라 철저히 즐기기 위한 성욕이었지.

요즘 현대인들도 후손 번식을 위한 성욕이 아니라 오락적 성욕으로 변했다는데 뭐 그리 크게 문제될 거 없는 거 같은데…

그건 그런데… 나는 도를 지나쳤어. 특히 나는 권력을 지닌 여왕이었잖아. 나는 남자 황제들이 여자 후궁들의 거처인 하렘(Harem)을 만들었던 거처럼 여왕인 나도 남자 후궁들의 거처인 하렘을 만들었어. 그 곳에 늘 수십 명이나 되는 젊고 잘 생기고 아랫도리가 튼실한 남자들을 가두었지. 나만큼 남색을 밝히는 여자는 아마도 없을 거야. 나는 매일 밤 한 놈씩 내 방으로 들여서 성생활을 즐겼어. 그런데 나는 나만 즐겼어. 그날 밤 섹스 파트너가 된 남자들은 어떻게 된 줄 알아? 저기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나 청나라 때 서태후는 자기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밖으로 내보내 죽이도록 명령했다지. 자기를 성적으로 충분히 만족시키면 칭찬도 하며 선물도 주고 벼슬도 주고 그랬다는데… 나는 그런 게 아니었어. 나는 매일 밤 나와 섹스했던 그 남자들을… 그 남자들을… 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내가 너무했어. 나의 창피함을 넘어 참혹해.

도대체 뭘 어쨌다는 거야? 감질나게 하지 말고 시원하고 토로하며 고백해. 놀라지 않을 게. 차분히 들을게.

알았어. 이실직고(以實直告) 할 게. 나는 성행위를 빙자하여 나의 섹스 상대 남자들을 서서히 죽게했지. 남자의 살점을 물어뜯고 씹어 먹었어. 남자들은 아파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지. 나는 그 비명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았어. 내가 물어뜯은 남자의 살점에서 나오는 피가 내 몸에 흐르는 그 살과 피의 향연이 좋았어. 나는 살을 씹어 먹고 피를 핥아 마셨어. 아주 맛있게… 성적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얻는 변태성욕 성도착증을 새디즘(Sasism)이라고 하던데… 나는 이 용어의 어원이 된 프랑스의 사드(Sade)라는 공작이라는 놈과 차원이 완전히 달랐어. 그 놈은 그냥 섹스 상대인 여자의 목에 개목걸이를 걸어 여자를 개처럼 끌고 다닌다거나 여자 몸에 채찍질을 하는 정도의 가학적 폭력적 성행위였지만 나는 내 입으로 남자를 물어 뜯어 죽이는 살인적 성행위였어. 남자가 반항하면 나는 내 강력한 근력으로 남자를 제압하며서 살인적 성행위를 맘껏 즐겼어. 나의 즐김은 남의 죽임이었지. 지금 여기 와서 보니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내가 내 마음을 짐작하자면 아마도 내가 불임녀가 될 때 겪었던 그 무지막지한 아픔을 내 섹스 파트너인 남자한테 되돌려 주겠다는 심뽀였는지도 몰라. 나는 지금 내 잘못을 돌아보고 있어. 후회나 반성을 넘은 성찰(省察)이나 참회(懺悔)야. 성찰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나로 인해 아프게 죽어간 남자들의 명복을 빌어. 하지만 내가 참회할 자격이 되는지는 몰라. 하도 내가 남자들한테 나쁜 못된 짓을 해서 말이지. 그런데 한마디 분명히 할 게 있어. 나의 그런 살인적 성행위가 너무 과장되었다는 거야. 물론 내가 그런 짓을 안했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거리가 되기 위해 내가 하지도 않은 짓까지 추가되어 나를 아주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그렇게 나는 식인여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지니게 되었지. 내가 남자와 성행위할 때만 극단적 쾌락을 위해 남자 몸을 뜯어 먹은 거지 내가 배고파서 먹기 위해 아무 때나 남자들을 고기로 먹었겠어. 그건 너무나도 날 식인여왕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렇게 허풍된 과장이 된 거야. 그런데 왜 밖이 어수선하지. 할 말이 또 있는데…

아무튼 내가 안 놀란다고 했는데 놀랄 수밖에 없다. 정말로 진숙이 너는 놀랠 놀 녀다. 잔인무도한 년! 세상에 너 같은 년은 없었도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사람들이 사실 이상으로 너의 행실을 과장했건 말건 너는 네가 고백한 사실 만으로도 쳐죽일 년이야. 너 같은 년이 성찰이니 참회니 하는 게 무슨 필요있어. 다 개떡 같은 소리고 개콧구녕 같은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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