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5. 무식과 인정㊦

박기철 승인 2024.07.15 10:14 의견 0

14. 무식과 인정㊦

알았어. 인정해. 나는 어릴 적 프랑스놈들한테 우리 아버지가 맞아 죽고 곧 이어서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자살했으니 프랑스 놈들은 나한테 철천지 원수가 되어야 맞는데 반대로 난 프랑스를 좋아했어. 프랑스를 불란서(佛蘭西)라고 하던데 난 친불파(親佛派)의 행동대장임을 자처한 거지. 그럴 만도 했어. 꾀죄죄한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프랑스란 나라는 때깔부터 화려했거든. 난 그걸 동경했어. 그래서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제2차대전에 프랑스를 위해 열심히 싸웠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어. 프랑스란 나라가 신기하게도 흑인들을 심하게 차별하지 않은 편이었어.

나름 똑똑했던 나는 전공도 세우고 장교로 승진하고 그러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대통령이던 사촌형을 몰아내고 내가 대통령이 되었지. 그러나 나는 대통령에 만족하지 않았어.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는 나폴레옹처럼 나도 황제가 되었어. 인구 500만 명도 안되는 조그만 나라를 제국이라 칭하고 황제가 되다니 지금 생각하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웃기네. 다 나의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의 결과야. 국가 통치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나는 엉망으로 다스렸어.

그런 거 열거하기가 하도 많아서 딱 하나만 말할게. 나는 가난한 우리나라 재정의 1/5이나 쓰며 방탕하게 벌였던 엽기적 황제대관식 이후부터 정신이 나갔어.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이 도를 완전히 넘어 버린 거지. 그러다보니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유니폼을 입히도록 강제했는데 그 유니폼 교복은 내 사진이 들어간 거였어. 그냥 그걸 무료로 나눠주거나 싼 값으로 사서 입히게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 그런데 교복값이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의 절반에 달하는 큰 돈이었어. 쉽게 말해 성인 1인당 6개월 월급으로 살 수 있는 교복이었어. 그러니 그걸 살 수 있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지.

게다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어. 실업률(失業率)이 높은 나라였지. 난 직업이 없는 사람한테 벌을 주기도 했었어. 직업이 없더라도 직업이 있다는 걸 증명하면 벌을 안주었지. 말이 되? 정말 엉터리 폭압적 정책이었지. 아무튼 그런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이 교복을 사서 자식한테 입힐 수 있겠어. 그러니 우리나라 모든 학생이 그 비싼 교복을 입도록 하는 건 도저히 금전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였어. 그런데도 난 밀어 부쳤어.

지금까진 꿈쩍도 하지 않은 국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어. 돈 문제이기 때문이야. 압제에 저항하고 싶어서 저항한 게 아니라 저항할 수 밖에 없었어. 애당초 교복 살 돈이 없으니까… 학생들도 거세게 들고 일어났어. 난 깔아 뭉개도록 지시했어. 수 틀리면 총과 탱크로 죽이도록 명령하기도 했어. 시위 현장에서 끌려 잡혀온 놈들도 많이 죽였어. 그 때 몇명이나 죽었는지 나도 자세히 잘 몰라. 아마도 수백 명이 될 거야. 국가가 교복을 입지 않는다고 어린 학생을 죽였는데 나라 꼴이 되겠어.

결국 내가 그토록 믿고 따랐던 프랑스란 나라가 나를 축출하려고 나섰어. 나는 그렇게 물러나고 말았지. 황제로 취임하고나서 2년도 안되서야. 그렇다고 내가 죽었다는 건 아니야.

그렇게 너는 물러나는구나. 죽지는 않더라도 큰 벌을 받았겠지.

재판을 받았지. 내가 저지른 14개 혐의들 중에서 사람을 먹었다는 식인만 증거불충분 무혐의가 되고 13개는 인정이 되어 나는 무기징역을 받았어. 사형이 안 된 게 천만다행이었지. 이후 나는 20년형으로 감형받고 나중에는 풀려났어. 그리고 나중에는 내 졸개가 대통령이 되는데 그 놈 덕분에 사면까지받게 되지. 내가 대위였던 그 놈한테 별을 달아 주었는데 그 은혜를 잊지 않았던 거지. 나는 45살에 쿠테타를 일으며 10년 동안 대통령이었고 2년 동안 황제였어. 12년 권좌에서 물러날 때 내 나이가 58세였어. 그리고 나는 17년이나 더 살았어. 권력은 없었지만 나는 이후에도 누릴 거 다 누리고 살았어. 내가 빼돌린 돈이 많았거든. 다이아몬드 상아 우라늄을 프랑스 등에 팔아 먹었는데 그 판 막대한 돈은 거의 다 내 꺼였어. 외국으로 빼돌린 돈이 많았어. 그렇게 나는 호의호식하며 75세에 죽었어. 심장마비로. 자연사였지.

근데 말년에도 잘 살았단 네 얘길 듣고 보니 신경질이 난다. 뭔 감형에 사면이고 호의호식이야. 너처럼 악랄한 놈은 죄값을 톡톡히 받아야 하는데…

근데 나는 약과야. 우리나라 옆 동네에서 나처럼 얼굴 검은 권력자들은 나보다 더 악랄한 놈들이었는데 오래 살았어. 천수를 누린 놈들도 있어. 수십만 명 학살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가령 민간인을 25만 명이나 학살한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는 나보다 1살 더 오래 살았어. 향년 76세야. 가령 악랄한 독재자의 표본인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나보다 2살 더 오래 살았어. 향년 77세야. 이디 아민과 1, 2위를 다투는 짐바브웨의 무가베는 95세까지 살았어. 르완다 내전 때 후투족이었던 르완다의 바고소라는 투치족 수십만 명을 죽였지만 80세까지 살았어. 비록 감옥에서 죽었어도 오래 살았지. 100만 명이나 학살한 나이지리아의 야쿠브 고원은 지금 89세야. 아직 살아 있어. 역시 100만 명 이상 학살한 이디오피아의 맹기스투는 지금 87세로 살아 있어. 그런 놈들보다 나는 일찍 죽었고 그런 놈들에 비하면 나는 잔혹하지 았았어. 귀신은 뭐하나 몰라. 그런 놈들 일찍 붙잡아가지 않고…

뭔 헛소리야. 궤변(詭辯)이야. 네가 학살한 사람의 숫자가 적을 뿐이지 너는 아주 나쁜 놈이야. 귀신은 뭐하나 몰라. 너 같은 놈을 왜 더 일찍 잡아가지 않았는지… 어떻게 75세까지나 살았나? 그것도 호의호식하다 자연사로…

미안해. 비교하자면 그랬다는 거야. 비교하다 보니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이게 되었네. 나는 여기 들어와서 비로소 철(哲)이 들었어. 살아생전엔 그리도 내 이름처럼 그렇게 무식하더니만… 내 얘긴 이만해야겠다. 거의 다 했어. 이제 인정이 네 얘기 좀 해봐.

무식이 네가 저지른 권력 얘기 들으니 우리 때 권력은 아무 것도 아니네. 그렇다라고 우리 때 권력도 만만치 않았어. 나한테 증조 할아버지였던 황제, 오빠였던 황제, 남편이었던 황제, 그리고 아들이었던 황제… 그러니 그 황제 아들의 엄마인 나 인정이가 어떤 여자인지는 알겠지. 난 존엄한 자란 뜻인 아우구스투스의 여성형, 아우구스투나였어. 존엄한 여인이었지. 너처럼 쿠테타로 갑자기 권력을 가진 얼치기들이랑은 차원이 달라. 혈통이 다른 거지. 그런데 나는 내 아들이 황제였을 때 아들로부터 감시를 당했어. 내가 워낙 나내든 스타일이어서 그랬을 거야. 내 주변엔 남자들이 많았어. 내가 남자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모두 다 내가 나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내가 유혹해 내 목적을 위해 전략적으로 부리려는 놈들이었어. 말을 부리는 마부(馬夫)처럼 사내들 부리는 남부(男婦)! 물론 나는 내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황제였던 남편을 독살해서 남편이 없는 몸이기는 해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내 관심은 남자보다 온통 권력에 있었어. 권력 맛이 얼마나 좋은지 너도 맛봐서 잘 알잖아. 내 생각대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 권력! 난 그 권욕에 빠져 살았던 거야. 과부가 되어서도… 아들이 황제인지라. 네가 아들을 성적으로 유혹했다는 말들이 있던데 그건 말이 안 돼. 아무리 아들이 방탕한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엄마가 아들을 유혹했겠어. 아직도 항간에 그런 소문이 있다는데 나는 화가 나 분개해. 제발 말도 안되는 말을 그만 둬. 그냥 사람들이 재미삼아 지어낸 말이야. 다만 황제인 아들을 통해 내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려던 건 사실이었어.

그러면서 나는 아들과 대립하게 되었어. 그런 와중에 난 정말로 불쌍하게 죽고 말아. 아들이 엄마인 나를 감당할 수 없어서 아들은 나를 죽였어. 처음에 아들은 날 물에 빠져 죽게 하려고 했어. 배에서 파티를 한다며 나를 오라고 하면서 쇼를 하더니 나 혼자만 배에 두고 떠났어. 그런데 배에 구멍을 내서 물이 들어왔어. 배는 침몰했어. 그래도 몸이 튼튼해 수영을 잘했던 나는 헤엄쳐 와서 살아났어. 그러자 아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죽였어. 아들이 보낸 병사들의 손에 죽었어. 나는 그 때 병사들 앞에서 옷을 홀랑 벗어 이렇게 당당하게 외쳤지. “너네 황제를 나은 배다. 자, 이 놈들아! 찌르려면 찔러라!” 그래도 그 놈들은 날 찌르더군. 난 그렇게 죽었어. 내 나이 44살 때였어. 한창 농염했을 때지. 아! 아직 할 얘기가 더 있는데 어째 밖이 소란스럽네.

박기철 교수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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