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 은유는 어떤 의미인가?
노엄 촘스키(1928~) 교수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하워드 진(1922~2010) 교수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1994/2002)에서 저자가 직접 그 은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여기서 중립적이란 그 방향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워드 진이 미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저서 『미국민중저항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1982)의 출간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기술하되, 지배자들의 침략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던 민중들의 증언과 저항의 몸부림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미화된 프론티어 정신으로 윤색된 미국 정사(正史)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숱한 살육과 약탈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이 얼마나 오도되어 있는가를 몸서리치도록 실감시켜준다.
‘밑에서 보는’ 시각의 미국 역사 이해는 지배자의 미화된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폭로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美國’의 ‘美’자가 싫어 그냥 아메리카나 US 혹은 USA로만 쓰고 싶었다. 물론 중국이 ‘美’를 쓴 것은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라, 발음의 유사성으로 그냥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출간 후 10년 동안 24쇄를 거듭했고,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판매 부수인 30만 부가 팔렸고, 미국 출판대상 후보에 올랐고, 세계 전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 하워드 진은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콜럼버스에 관해 쓴 첫 장에 대한 흥분된 반응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콜럼버스가 세계 역사의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이며, 그의 상상력과 용기로 이룬 대담한 업적은 존경해 마땅하다고 배운다. 하워드 진은 콜럼버스가 용맹한 뱃사람인 것은 인정하지만,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 친절한 아라와크 족을 사악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콜럼버스 자신이 직접 쓴 일지와 많은 증인들의 보고에 근거하여, 지적했다.
콜럼버스는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며, 이 모두는 오로지 부를 추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콜럼버스는 서구 문명의 가장 못된 가치들-탐욕, 폭력, 착취, 인종차별, 정복, 위선(콜럼버스는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주장했다)을 표상한다고 하워드 진은 주장했다.
편지의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지만, 몇몇은 불신의 눈초리나 분노를 담고 있었다. 자기 딸이 학교에서 가져온 『미국민중저항사』를 들여다본 캘리포니아의 한 어머니는 격분한 나머지, 이 책을 갖고 수업을 진행한 교사를 조사해 달라고 교육위원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하워드 진은 콜럼버스에 대한 불경함뿐 아니라, 미국 역사 전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분명히 했다. 한 서평자가 말한 것처럼 “관점의 역전, 영웅과 악당의 자리바꿈”을 주장한 것이다. 하워드 진의 역사 평가는 가히 전복적이다. 그러나 진실이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은 새로운 국가의 재주 많은 창건자인 동시에, 또한 하층계급의 반란이나 “평등한 재산 분배”를 두려워한 부유한 백인 노예주이자 상인, 채권 소유자들이었다. 미국의 영웅적인 군인들-앤드루 잭슨, 시어도어 루스벨트-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인디언 학살자, 전쟁광, 제국주의자였다. 미국의 자유주의자 대통령 대부분-제퍼슨, 링컨, 윌슨, 루스벨트, 케네디-은 비(非)백인의 권리보다는 정치권력과 국가 확장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하워드 진은 1991년 걸프전 와중에 매사추세츠 한 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다. 학생 대부분이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고, “95%가 전쟁에 찬성한다”는 사립학교였다. 강연은 대체로 호응이 좋았다. 그러나 강연이 끝나고 토론에서 내내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보이며, 하워드 진을 보려보던 한 소녀가 갑자기 분노로 가득 찬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나라에 살고 계신가요?”
30년도 더 지난 대한민국에서도 자주 듣는 질문이다. 지난해까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를 주장하면, 일부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비난이다. 그러면서 내란 피의자 윤석열 체포에 ‘국격’을 운운하고,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인다.
이 질문에 대한 하워드 진의 대답은 애국, 애국심이란 진정 무엇인지 명징하게 일깨워준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이 있을 수 없다는 하워드 진의 주장은 최상묵 권한 대행의 중립이 얼마나 비루한 기회주의적 처신임을 방증한다. 다음 글에서 살펴보자.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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