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생
정 종 숙
눈 쌓인 마당
빗살무늬 길 곱게 내던 경비는
눈이 그치자 보이지 않았다
종이 상자 가지런히 묶어 탑처럼 쌓아 올리던 경비는
산수유 열매 빨갛게 익을 무렵 보이지 않았다
종이 상자 테이프 뜯는 소리에
화단 꽃들이 한 뼘씩 자랐는데
울타리에 접시꽃 심어놓은 경비는
감나무 감을 따고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때가 되면 보이지 않았다
- 정종숙 시집, 춥게 걸었다, 시와소금 시인선 173
시 해설
바닷가 모래밭에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하는 걸 못 보고 바다로 가는 어미 거북도 있고 모천으로 가서 알을 낳고 부화를 못 보고 죽은 연어도 있다는 생태계의 방식을 대비해 보면서 부모의 정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부모가 곁에 없는 상태하에 태어난 후손들이 있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어미들이 있는 자연계가 경이롭다.
눈이 쌓인 마당을 빗질하며 길을 내어주던 경비는 ‘눈이 그치자 보이지 않았’고 종이 상자를 모아 쌓던 경비도 꽃씨를 심던 경비도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음을 알고 시인은 존재와 부재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산수유 열매 빨갛게 익었고 화단의 꽃들이 한 뼘씩 자랐는데도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었을 경우도 있고 아예 경비를 두지 않는 방침에 따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경비는 그들이 곧 거기를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때가 올텐데 접시꽃을 왜 심어놓았을까, 시인은 ‘때가 되면’ 그들 모두가 보이지 않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별을 이야기한다. 아기를 안아주던 그 따스한 가슴도 때가 되면 보이지 않고 곁에서 꽃을 함께 가꾸던 사람도 보이지 않는 때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나를 아껴주던 ‘경비’ 같은 그들은 늘 곁에 있었고, 그들이 있어서 주위는 깨끗했으니 소중한 분이 아니던가. 나도 그들에게는 어느 순간에 떠나는 존재로 보일 수가 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인 이때가 얼마나 고귀한지 알아야 할 것 같다. 하루살이도, 1년생도, 2년생도 한 생애.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