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의 포프라타너스에 대한 편견
심 은 섭

오래전부터 공원 귀퉁이에 나이테가 촘촘한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그는 하루 종일 호수에 발을 뻗어 끌어당긴 물로 목을 축이며 청잣빛 실크를 짜고 있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베틀에 앉아 짜놓은 실크를 포목점에다 판 수익금으로 대궐 같은 집을 몇 채 사들였다는 항간의 소문이 온 장안에 파다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햇살을 사용해도 사용료조차 내지 않는다고 주변의 나무들이 수근거렸다 오늘도 지상과 단절을 하고 묵묵히 물레질을 하고 있다 가끔씩 날아드는 새들과 목례를 나눌 뿐, 어떤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산다

어느 날, 어떤 딱정벌레가 지나가며, 그는 실크가 아니라 지친 사람들에게 내어줄 푸른 그늘을 짜는 중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무료 급식소에서 저녁 배식을 마치고 지나가던 개미가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이마에 땀을 닦는 것을 보았다

늙은 나무를 향해 빈정대는 말을 일삼던 노을이
계면스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 심은섭 시 <고목의 포프라타너스에 대한 편견> 전문, 동행문학 2024년 겨울호

시 해설

남이 잘되면 시기하는 무리들이 나쁜 소문을 낸다. 일 년 내내 햇살을 사용해도 사용료조차 내지 않는다고 주변의 나무들이 수근대었다. 큰 나무는 아무런 대꾸할 의미를 못 느낀다. 햇살 사용료 낸다는 생물도 무생물도 본 적이 없고 그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누리는 혜택인 줄로 안다. 달빛 또한 그렇지 않은가,

주변의 소인배들과는 오늘도 지상과 단절을 하고 묵묵히 물레질하고 있다. 큰 나무는 굳이 해명을 위해 나서지 않았고 문안 인사차 찾아오는 새하고만 대화를 나누었다. 이는 내세우지 않고 외로움을 홀로 견뎌내는 방식이며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

큰 나무는 처음부터 나뭇잎을 얼기설기 엮은 그림자를 짜고 있었던 것이며 소문이 잘못 난 것이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개미의 작은 걸음으로도 나무가 어디에 있고 어디쯤 그늘이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저녁이면 나타나서 늙은 나무를 향해 빈정대는 말을 일삼던 노을이 헛소문의 근원지임이 또 밝혀졌다. 중재나 진실 증언에 대한 역할을 못 한 노을은 가장 넓게 소문을 낼 수 있지만 이에 동요하지 않는 큰 나무 앞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노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내일이면 일상을 또 반복할 것이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