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비 족장의 고인돌
정 순 영
바위 속으로 들어간다
나뭇잎으로 아래를 가린 해맑은 얼굴들이 살았던 태고의 시간
나도 활 하나 메고 고라니 사냥에 나섰다
‘푸른비’로 불리는 족장이 먹을 만큼만 잡으라고 명령한다
스물 남짓의 가족이 둥근 움집에 앉아 잡아 온 고라니 고기를 나눠 먹는다
입가에 걸린 초승달이 빛나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별빛 사이로 풀벌레 소리 스며든다
꿈에 ‘푸른비’ 족장의 혼령이 바위에 오른다
수천 년의 시간이 낙엽 되어 발밑으로 구르고
선조들이 묻힌 바위는//‘푸른비’ 족속을 지켜온 수호신// 당신의 후손인 나는// 멀리서 달려오는 초원의 바람 소리를 듣는다
바위가 깨어난다
- 시와사람 2024 겨울 114호
시 해설
시의 시작은 ‘바위 속으로 들어간다’이고 마지막 연은 ‘바위가 깬다’고 하는 이 시는 선사시대 원시부족에 대한 삶을 통해 단순함이 주는 매력을 독자에게 전해 주는 것 같다.
의복이 제대로 없었던 태고의 시대에 겨우 나뭇잎으로 아래를 가렸지만 모두가 해맑은 얼굴을 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푸른비’ 부족의 전사가 족장의 명을 받아 사냥을 나섰는데 ‘나도 활 하나 메고 고라니 사냥에 나섰다’며 의기양양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 있는 가장이 나서는 현대와 같다. 족장의 명은 ‘먹을 만큼만 잡으라’이다. 지금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만 잡아서 낭비하지 말고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라.
사냥은 성공하였고 하루치의 음식 앞에 스물 남짓 가족이 모인 움집은 금방 기쁨이 넘쳐서 부족들의 입가는 위로 올라가 마치 초승달 같았다. 입꼬리가 양쪽 다 내려온 그믐달 형상이면 배고픔이고 슬픔이다. 살아 있는 고라니들은 그 부족들의 입가가 쳐져 있으면 긴장되지만 삶은 연장된다. 모두에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별빛 사이로 풀벌레 소리 스며든다’ 공평한 시간이 왔다.
꿈에 ‘푸른비’ 족장의 혼령이 선조들이 묻힌 바위에 오른다. 수천 년의 시간을 ‘푸른비’ 족속을 지켜온 수호신인 바위는 그 후손에게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불어오던 초원의 바람 소리 함께 듣노라니 바위가 깨어난다. 새로운 소원을 접수하겠다는 길조이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