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70) 풍어제 - 김윤아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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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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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어제
김 윤 아
6년째 찾는 사람이 없다는 그녀가 누워 있다/흰 모래밭이 된 혀/코 쓸려 넘어가는 바닷물/그녀의 몸 곳곳에 기장 앞바다/은멸치의 비릿한 전생이 질펀하다
구릿빛 팔뚝의 사내가/ 털어도 털어도 털리지 않던/
멸치 내장과 비늘 범벅된/그물이었던 그녀의 삶
대변항 바닥에 내팽개쳐진 멸치처럼
비늘 쉬이 떨어진 그녀는 지금 욕창 깊은 바닥
침대를 등지느러미로 매달았다
이제 짜디짠 소금물을 감각할 수도 없는
그녀 같은 그녀들이 돋았다 스러지는 흰 곽의 요양병원
가만히 귓전에 시를 낭송해 줄 때/ 한 웅큼 툭 던지며/
푸른 바다에 우려지는/ 은멸치의 낮은 고동 소리
- 시와시학, 2024년 가을호
시 해설
병석에 6년째 누워있어도 찾는 사람 없는 외로운 그녀의 몸 상태를 묘사하는 ‘흰 모래밭이 된 혀/ 코 쓸려 넘어가는 바닷물’과 ‘욕창’ 등으로 보아 많이 아픈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혀가 마를 정도인 그녀의 남편은 바다에서 생업을 하고 있었다. 정치망 어장이 없어서 그물로 잡은 멸치를 구릿빛 팔뚝으로 털던 그와 그녀는 그물 같은 삶을 공유했다.
기장군 ‘대변항大邊港 바닥에 내팽개쳐진 멸치’처럼 삭아지고 있는 요양병원 그녀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요양병원은 걸어 들어간 사람이 걸어 나오긴 힘들다는데 그녀는 요즘의 병든 노인으로 보아야겠다. 바닷가에서 살아온 사람임에도 소금물 맛도 못 느끼는 ‘그녀들이 돋았다 스러지는 흰 곽’ 같은 요양병원이 다수의 노인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임을 시인이 일깨운다.
요양병원이 대안일 수밖에 없어서 자식들이나 남은 가족이 선택한다. 시인이라서 ‘가만히 귓전에 시를 낭송해’ 주지만 ‘한 웅큼 툭 던’진 그것은 가슴 한구석을 도려낸 것이라서 ‘푸른 바다에 우려지는 은멸치의 낮은 고동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다.
통멸치젓 찢어서 올린 밥 한 숟가락 받아드시고, ‘고맙다, 사랑한다’ 잊었던 말씀 다시 하시면 좋으련만.
김윤아 시인은 2024 시와시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지만 (사)시읽는문화 이사장으로 시낭송에도 최고 수준으로 부산 KBS ‘마음의 휴식, 시테라피’를 진행하기도 했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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