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69) 참깨 - 이현

조승래 승인 2024.12.19 12:30 | 최종 수정 2024.12.19 13:59 의견 0
[출처 = 블로그 '솔꿈농장']

참깨

이 현

세탁기 대신 짤순이를 혼수로 사주던 엄마.

무쇠솥에 툭툭 튀는 참깨처럼 달달 세월에 들볶여서일까,
달챙이 같고 닳고 닳은 몸뚱이 안 아픈데가 없단다

다 거둬야 말가웃?
올해도 텃밭에 참깨씨를 뿌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풀을 매고 귀 빠진 자리에 모종을 한다.

아버지 기일에 들른 내게 마지막이다, 참기름병을 들려주신다.
새벽에 들볶인 몸뚱이 스스로 더 달달 볶아대니 얼마나 고소할까,

짤순이로 다 짜내서일까, 돌아서는 눈에 눈물 한 방울 없다.

- 시와소금, 2024년 가을호

시 해설

빨래를 물에 잘 헹군 뒤 물을 짜는 것이 힘 드니까 이 노동에서 해방시켜는 것이 짤순이라는 생활용품이었다. 야채 물기 제거에도 원심분리를 하는 짤순이는 획기적인 발명품인데 시인은 혼수감에 세탁기도 아닌 짤순이를 사줄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생각한다. 자식에게 자가용 대신 자전거 사주신 정도의 비유를 할 수 있는데 그 형편을 이해하면서 참깨를 가지고 회상한다.

닳고 닳은 몽당숟가락, ’달챙이‘ 같은 몸이 된 엄마는 부족한 살림살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어 몸이 안 아픈데가 없으시단다. 긴 세월 ’무쇠솥에 툭툭 튀는 참깨처럼 달달‘ 들볶이어서 그럴거라 추정한다. 젖이 부족한 송아지가 어미 소의 가슴을 들이받듯 자식들은 더 달라고 했을 것이다. 참기름이 고소하긴 해도 깨를 짜 받아낸 육즙이 아닌가,

’다 거둬야 말가웃‘, 텃밭 깨농사 수확해 보아야 한 말 반(15되), 파종에서 쭉정이 깻묵 다 버리고 남은 참기름의 고소함은 시간과 땀에서 변환된 것이다. 아버지 기일에 갔더니 어머니는 참기름 한 병 주시면서 ’마지막‘이라 하셨다. 더 이상 시간 여유가 없으신 어머니를 두고 돌아서는 시인의 눈에는 마른 눈물이 흥건했을 것이다.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고소함과 어머니의 체취 묻은 고소함은 같을 수는 없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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