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67)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 박찬선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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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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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박 찬 선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마라
누워 있으면 아주 편한 잠자리
죽음도 이렇게 오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
적막의 무거운 이불 덮고 더러는 휘감고
땀 쩍쩍 흘리며 뒤척인다.
무의식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옷 벗듯 나를 벗어두고 어디론가 떠났다.
저마다 혼자인 동행/걷기는 늘 원점으로 돌아온다.
자주 가던 등산로 쌓은 돌담이 돌무더기로 있다.
달을 바라보았다는 망월사/ 숲속에 주춧돌만 남아 있다.
돌아가신 어른과 대화를 나눈 정신과 의사 아들이 쓴 논문/ 어떻게 결론 났을까/ 재선충으로 붉게 물든 소나무 베듯 싹뚝 베어냈을까/ 촘촘하게 동심원으로 부풀어진 세월의 무늬처럼/ 남아 있을까/ 외로움을 호소하다가 떠난 친구의 전화를 받고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 창문을 연다.
비딱하게 닳은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다.
- 한국시인, 2024년 vol. 07)
시 해설
이 시는 해가 진 뒤 잠자리에 들어간 시인이 아침까지의 마음 산책 과정을 알 수가 있는데, 대략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쓰신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시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마라’로 시작한다. ‘누워 있으면 아주 편한 잠자리’에서 ‘죽음도 이렇게 오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적막 속에 뒤척인다. 그러다가 무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의식 저변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 외롭게 보이고 걷다가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자주 가던 등산로 돌담도 무너졌고 망월사도 숲속에 주춧돌만 남았으니 이불로 비유한 적막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땀범벅이 되었으리라. 돌담 허물어졌어도 돌무더기는 남아 있고 절은 사라졌지만 주춧돌은 남아 있고 달은 허공에서 모습 바꿔가며 흔적을 지켜보고 있다. 최후의 증인이 되리라.
돌아가신 분과 대화를 나눈 정신과 의사의 논문에는 뭐라고 결론을 내렸을까? 전염성 강한 환부 도려내듯 기억을 제거해 버렸을까, 나이테처럼 남아 있을까 시인은 여러 궁금증이 많다. 아직 건강하신 분이시기에 주위에 관심도 많다.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찾으며 위로하고 위로를 받으며 떠난 친구의 전화를 새벽에 받았다. 그도 밤을 견디었기에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보니 축담에 ‘비딱하게 닳은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어서 기쁜 것이다. 뒤굽이 편마모 되어 있는 원인도 알고 있을 것이며 신발이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산책하러 나가야 할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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