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71) 이제는 - 이수익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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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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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수 익
이제는
썰물이 좋다.
더
가득한 때를 바라지 않으리라
갯벌에 드러난 추한 상처들
다 내 것이고
휑하게 뚫린 절망의 공간 또한
내 것이니
나를 이 음습한 바닷가에 그냥 있게
내버려 두라.
이제는 다시
흡사 저 피의 부름 같은 물결의 소리로
나를 취하게 하지 말라.
숨 가쁜 아우성으로 넘칠 듯, 넘칠 듯 차오르는
밀물의 시간이 정말 나는 싫다.
- 이수익 시집,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시선사 003
시 해설
우리가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전하고 싶은 사연을 보내는 창공의 저 달의 인력이 없으면 썰물도 밀물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와는 상관없이 원로 시인은 ‘이제는/ 썰물이 좋다’ 하신다. 세상에서 가득 찼다가 비워졌다가 수 없이 반복되는 일을 지켜보셨고 그 연륜으로 하시는 말씀이 ‘더/ 가득한 때를 바라지 않으리라’이다.
현상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내고 보면 실상이 보인다. 썰물로 인해 ‘갯벌에 드러난 추한 상처들’이나 ‘ 휑하게 뚫린 절망의 공간’ 역시 시인의 것이라면서 시인의 무대에서 발생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자 한다. 주위가 음습하면 어떤가, 인과가 명확한 환경인 줄 알고 견디는 것이므로 ‘나를 이 음습한 바닷가에 그냥 있게 내버려 두라’는 단호한 선언이다.
시인은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썰물과 밀물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따라서는 평생의 시간일 수도 있다. 썰물은 마음의 평온을 갖는 시간이고 밀물은 그 반대의 현상이 발생하는 시간이다. 밀물은 마치 ‘피의 부름 같은 물결의 소리로’ 시인을 힘들게 한다. ‘숨 가쁜 아우성으로 넘칠 듯, 넘칠 듯 차오르는 밀물의 시간이’ 싫은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이대로가 더 좋다는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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