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73) 비상구 - 차윤옥
조승래
승인
2025.01.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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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차 윤 옥
요양원에는 비상구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들이 의사라고 자랑하던 할머니가
시신으로 운구運柩되는 저녁나절에
비로소 하늘 문이 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도 비상구를 알려주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비상구 불빛이 깜빡거린다
- 시집 식은 찻잔, 계간문예시인선 210
시 해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면 스스로 먹고 씻기가 힘든 상황이 오는 것을 본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서 넘칠 만큼 가진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부양을 대신해 주는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이 겪는 일이다. 그 요양원에 일단 들어가면 제 발로 걸어 나오기는 극히 어렵다. 차윤옥 시인은 이를 요약하여 ‘요양원에는 비상구가 없다’고 표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문은 열리지 않’음을 안다.
요양원에 들어갈 때는 정신이 있어서 ‘아들이 의사라고 자랑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자랑으로 끝나고 일정 시간이 흘러서 그 ‘할머니가 시신으로 운구運柩되는 저녁나절에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상구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맥박이 점점 느려지고 시선이 흐릿해질 때 떠나는 그에게 ‘천천히, 천천히 비상구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나 보다. 뭉클한 아픔을 차윤옥 시인이 잘 표현했다.
비상구에 대한 ‘하 린’ 시인의 시를 이어서 살펴본다.
건물은 전부 비상구를 갖고 있는데 사람만 갖고 있지 않다
아니다 누구나 비상구가 있다 그저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 폐쇄시키거나 열지 않는 사람들 그중에 한 명은 기
필코 내 어머니다.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머니는 어머니를 끝까지 탈출하지 않았다 (--중략--)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궁금했다 비상구가 처
음으로 열린 걸까 마침내 닫힌 걸까
- 하 린 시집 기분의 탄생에서 '비상구에 대한 역설' 부분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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