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아래서
김 밝 은
저만치서 머뭇거리는 봄을 불러보려고
꼭 다물었던 입술을 잠시 뗐던 것인데
그만,
울컥 쏟아내 버린 이름
고소한 밥 냄새로 찾아오는 것일까
시간의 조각들이 꽃처럼 팡팡 터지면
희미해진 기억을 뚫고 파고드는 할머니 목소리
악아, 내새끼
밥은 묵고 댕기냐
- 리토피아, 2024. 여름 94
시 해설
김밝은 시인은 ‘저만치서 머뭇거리는 봄을 불러보려’ 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꼭 다물었던 입술’로 참고 견디었다. 입을 벌리고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고 더 큰 추억이 굴러올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잠시’ 입술을 뗐던 것인데‘ 참을 수 없어서 ’그만‘ 시인이 ‘울컥 쏟아내 버린 이름’이 있다.
하얀 이팝꽃 만개한 나무를 보면 하얀 쌀밥이 생각난다는 시인도 있었다. 김밝은 시인은 ‘고소한 밥 냄새로 찾아오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한다. 사방에는 ‘시간의 조각들이 꽃처럼 팡팡 터지면’ 시인은 ‘희미해진 기억을 뚫고 파고드는 할머니 목소리’를 듣는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가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파고드는 목소리를 시인은 잊을 수가 없다.
시인이 신음처럼 할머니를 먼저 불렀다. ‘그만’, ‘울컥’, 소리를 쏟아내고 만 것이다. 외할머니의 추억은 딸이었던 엄마를 동시에 불러낸다. 엄마의 엄마가 존재했고 아버지의 엄마도 존재했다. 그분들에게 ‘악아, 내 새끼’라고 불리었다. ‘아기’라고만 해도 연약하고 귀여우며 보호해야 할 후손인데 ‘내 새끼’라고 소유권도 밝혔다. 가까이서 양육을 못 도와주셨더라도 오랜만에 손녀를 만난 할머니는 ‘밥은 묵고 댕기냐’ 하시면서 작은 입술에 밥술 떠 넣어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 사랑을 다 기억하는 시인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한데 봄날이면 이팝나무 아래에 시인은 또 서 있을 것이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