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TV 캡처]

문어들은 저런 식으로

이 영 광

괴상하고 험악하게 꿈틀거리며
문어를 먹는 문어를 보면
세상에 죄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거미를 먹는 거미
뱀을 먹는 뱀
상어를 먹는 상어

괴상하고 어지럽게 꿈틀거리며
문어에게 먹히는 문어를 보면
세상에 벌이란 없는 것 같다

아귀에게 먹히는 아귀
사마귀에게 먹히는 사마귀
인간에게 먹히는 인간

사랑하듯 끌어안고
서로 빨며,
문어들은 저런 식으로 하는 것일 뿐

생명도 죽음도 없다는 듯
생명도 죽음도 그냥
있다는 듯

-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은 마음

시 해설

육이오 동란을 겪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같은 민족 즉, 동족(同族)끼리 서로 죽인다는 뜻인데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다. 동족혐오가 더 심해지면 동족을 먹는 동족포식이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식인종의 사례가 있다. 사회학, 생물학계에서는 생활 조건에 비해 자신의 동족이 많아지면 동족상잔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고 한다.

시인의 눈에 포착된 생물계의 여러 현상 중에서 같은 종족을 살육하면서 아무 죄의식도 없는 것인가 회의를 하게 되었다. ‘괴상하고 험악하게 꿈틀거리’는 살육 모습을 목격하고 몸서리치고 싶었고 ‘문어를 먹는 문어를 보’니까 ‘세상에 죄라는 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그뿐 아니라 거미가 거미를 먹고 뱀이 뱀을 먹고 상어가 상어를 먹고 있으며 식물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시인은 ‘괴상하고 험악하게 꿈틀거리’다가 ‘괴상하고 어지럽게 꿈틀거’린다고 문어의 살육 장면을 다르게 표현한다. 험악하던 모습이 어지럽게 보이는 것은 시인의 현기증이 생기는 마음 때문이며 ‘세상에 벌이란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죄도 벌도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시인이 더 가슴 아픈 것은 ‘인간에게 먹히는 인간’을 보는 것이다. 문어가 ‘사랑하듯 끌어안고 서로 빨며’ 죽이는 것이 사악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으로 문어처럼 ‘저런 식으로 하는 것일 뿐’이며 ‘생명도 죽음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생명도 죽음도 그냥 있다는 듯’해 보이니까 죄와 벌이 생명을 가진 종족에게서 꼭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