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꽃을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맑고 밝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기쁨을 일으켜 저절로 얼굴에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맑고 밝은 마음을 언제나 가질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있다면 거기가 극락일 것이다.
주위 환경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그곳에 깃들어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어떨까? 그렇게 동화되어 꽃과 다름없이 환하게 살아가게 될까? 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있을까? 하고 의문이 가는 곳이 바로 통도사 깊숙이 자리한 서운암을 떠올리게 한다.
서운암은 고려 충목왕 2년(1346) 충현대사가 창건하였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인 통도사 암자이다. 불보사찰은 부처님의 불사리탑을 금강계단 뒤편에 모셔져 있어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다. 법보사찰은 부처님의 말씀 즉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합천 해인사이다. 승보사찰은 16국사를 배출한 승주 송광사이다. 그래서 불, 법, 승 삼보사찰이 정해진 것이다. 불교 의례를 할 때 처음 꼭 삼귀의를 한다.
통도사에는 산내 암자가 20여 곳이 있다. 그중에서도 서운암은 신도와 탐방객이 가장 많은 절 중의 하나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예하가 주석하시면서 민화, 서예, 옻칠공예, 전통천연염색, 전통도자기, 된장, 고추장, 불화 등을 손수 만드시며 예술가의 삶을 살아오고 계신다. 특히 전통시조에 대한 열정이 많아 올해로 39년 동안 부산, 울산, 경남 시조시인 4명에게 성파시조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통도사는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면 옛길인 ‘무풍한송길’이 있다. 예전에는 이 길로 왕래가 되다가 새롭게 찻길이 건너편으로 생기면서 생겨났다. 길 양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드리운 길을 걸으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통도사 본사를 바라보면서 왼편으로 오르다 보면 보타암을 지나 취운암을 지나가면 삼거리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왼편으로 가면 또 갈림길이 생긴다. 또 왼편으로 들어가면 서운암이 자리한 곳에 다다른다.
왼편에는 수장고를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찻집이 나온다. 숨을 돌리면서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마음을 가다듭는다. 찻집에서 나오면 연못에는 수련잎이 무늬를 놓고 있는데 가끔은 수련이 한 두 송이 피어서 반긴다.
세 갈래 길옆에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쪽박에 물 한잔 들이킨다. 산의 청량함이 몸속으로 들어와서 서운암 구경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제 암자를 구경해 본다. 왼편으로 ‘장경각 가는 길’이라고 안내하고 위쪽에 왼편 장경각 오른편 삼천불 전이라고 이끈다.
오른편에 건물 아래층은 종무소이다. 이 층에 삼천불이 모셔져 있다. 올라가서 첫눈을 마주치는 불상이 자신의 지금 모습이란다.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나선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장독들이 햇살을 받아서 빛난다. 약 5000개의 장독에 국내산 콩으로 한약재를 써서 만든 약된장을 담근 지 10년이 넘었다. 깔끔하고 담백해서 양산의 특산품이다. 장독을 배경 삼아 사진 한 장을 찍다 보면 건너편 언덕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오른편으로 스님들이 거처하는 승방이 있고, 행사하는 마당 있는 건물이 있다. 가끔은 공작이 내려와서 마당을 거닐 때도 있다.
왼편 길을 포기하고 다시 샘이 솟는 곳으로 하여 오른다. 차도를 따라 가면 양옆으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모두가 살구나무이다. 중간중간에 꽃나무들이 커가고 있다. 잘 살피면 왼편에 성파 종정 예하 기림비가 낮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오르면 장경각에 이른다.
장경각 앞마당에 들어서며 확 트인 풍경에 마음이 활짝 열린다. 작은 산들이 앞쪽에 도란도란 자리한 건너편에 영축산이 정상이 독수리 부리처럼 보인다. 그 뒤로는 함박등, 죽바우등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언제나 저 산길을 걸으면 배내골과 통도사 골짜기를 바라보면 걸을 수 있다.
마당에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울주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를 성파 종정 예하께서 전통 나전 옻칠 기법으로 세월이 흘러 사라져가는 기록 유산의 대체 보존이라는 중요한 의미와 더불어 시각으로 고대 예술의 원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은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수중 전시라는 방법을 통해 과거 – 현재 – 미래가 공존하는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물빛에 반짝이는 나전 옻칠 색깔이 물속에서 고래와 거북이, 물개와 같은 바다 동물, 호랑이, 멧돼지 등 육지 동물을 사냥하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다시 발길을 옮겨 장경각에 들어선다. 팔만대장경은 불경이 양면에 새겨져 있지만, 도자 대장경은 한쪽 면에 새기다 보니 16만 도자 경전이 되었다. 배치는 의상조사 법성계 법성도 모양으로 도자 경전을 놓아 한 바퀴를 돌면 법성계를 한 번 읽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나씩 바라보는 마음이 경건해진다. 얼마나 많은 정성과 땀이 배었겠는가. 저절로 손이 모아서 돌아 나온다.
다시 심호흡하고 활짝 펼쳐진 풍경을 둘러보면서 다시 물속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둘러본다.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도 보고 또 보아도 멋지고 아름다움 작품이다.
언덕바지를 내려오면 입구에서 바라보았던 소나무 두 그루 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현재의 서운암 감원 스님 법명이 서송인데 서운암 소나무라는 뜻이라고 하신다. 내려가는 길 양옆에는 꽃나무가 위무하듯 줄지어 서 있다. 꽃이 필 때쯤에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사람들로 길이 비좁을 지경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좌우로 바라보면 꽃들이 즐비하다. 특히 4~5월이면 금낭화와 이팝나무가 꽃을 피워서 꽃 대궐을 이룬다. 서운암 꽃길에서 만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복사꽃, 할미꽃, 벌개미취, 참나리, 붓꽃, 은방울꽃, 비비추, 애기똥풀, 산철쭉, 꽃창포, 하늘매발톱, 황매화, 불두화 등이 오솔길 가에 피어서 꽃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삼삼오오 와서 구경한다. 특히 금낭화가 필 때면 언덕배기에 금낭화 꽃으로 물결친다. 그것을 보다 보면 꽃 속에 든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낀다.
나무 그늘로 난 사잇길을 걷노라면 장독대에서 빛나는 햇살이 되받아 빛나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불두화 피는 시기나 산철쭉이 피면 또 다른 분위기를 이끈다. 할미꽃이 장독대 사이에 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도 있다. 꽃이 피는 때는 전국에서 모이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지고 있다.
꽃 피는 시기에 맞추어 전국 문학인 꽃축제도 열린다. 한국꽃문학상도 시상하는 다채로운 행상이다. 그때쯤에는 장독대 둘레로 시화전이 열려서 마음의 양식을 쌓을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봄에 진달래가 필 때면 부산, 울산, 경남 시조시인들이 서운암 마당에 모여서 화전놀이를 한다. 요즘은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지만, 매년 열린다. 꽃을 따서 전 위에 올려 아름답게 전을 부쳐 누가 잘했는지도 겨루기도 한다. 그러면 화전놀이의 끝에는 춤추고 노래하면서 팀별로 만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흥겨운 한마당이 벌어진다.
이렇게 서운암은 꽃놀이에서부터 화전놀이, 문학축제, 민화를 그리고 나전칠기 옻칠을 하는가 하면 서예와 전통염색, 도자기 등등 수많은 전통 문화를 이어나가는 요람이 되고 있다.
성파 종정 예하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서운암에는 언제나 끊이지 않는 방문객들이 즐기고 문화의 향기에 젖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초파일과 추석, 새해에는 성파 종정 예하를 찾아 뵙는다. 온화한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도 닮으려고 마음을 모은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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