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강을 따라 걷다 보면 강을 근거지로 삼아 옛 선조들의 흔적을 만난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내려온다. 안동에는 안동호가 건설되면서 잠시 주춤거린다. 이처럼 물이 머무는 곳 어딘가에 새로운 사상이 싹트고 낙동강을 따라 여러 고장으로 퍼져나간다. 그중에서 영남의 거목들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서원과 고택들에서 살아갔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안동은 서원을 몇 꼽을 수 있다. 서원은 선비가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학동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한 곳이다. 풍천면에 병산서원이 있고, 도산면에는 도산서원이 있다. 하회마을 부용대에 화천서원, 안동호 근처 호계서원, 안동김씨의 묵계서원, 안동대학교에 역동서원 등이 있다.
그중에서 ‘도산서원은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세운 서원. 사적 제170호.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 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2019년 7월 6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도산서원 소개 글에서 발췌>.
산 중턱과 마루를 넘나드는 안개가 아침을 멋스럽게 꾸며준다. 거기다가 아침밥 짓는 연기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산골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감성을 느낀다.
오늘은 도산서원으로 간다. 이황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서원이라 두어 번 왔던 곳이라 눈에 익은 풍경이다. 하지만 주위 환경은 변화가 심하다. 특히 들어가는 입구에 여러 가지 시설물은 예전과 다르다. 눈에 익지 않기 때문이다.
100여m를 걸어가면 퇴계 선생을 존경한 공자 종손 이야기의 추로지향기념비. 퇴계 선생의 마음 수양하던 곳, 천광운영대.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던 곳, 천연대. 등이 마주한다. 두둑에는 소나무가 도래솔로 둘러쳐 있다. 그 아래로 강물이 휘돌아서 흐르고 있다. 강 건너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작은 산 아래 집들이 엎드려 있다. 강 건너에 시사단이 둥그렇게 높은 곳에 모셔져 있다.
도산서원에서 바라보는 앞은 넓은 들과 나지막한 산이 있어 확 트인 공간이다. 하지만 서원이 앉은 자리는 야트막한 산 아래 오목하게 들어앉았다. 서원 앞마당에는 휘어지며 자란 능수 버드나무 두 그루가 소나무 호위받고 있는 듯하다. 샘물처럼 스스로 맑고 깨끗해지기를 일깨워 주는 곳, 열정 몽천도 곁에 있다. 여기 또한 서원이 자리한 곳은 포근하고 앞이 확 트여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하기 좋은 장소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 도산서당, 공부하던 제자들의 기숙사 농운정사. 도선서원의 중심 건물이자 유림 화합과 강학의 장소 천교당.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지고 의례가 진행되는 경건한 장소 상덕사. 퇴계 선생의 생애와 학문, 유물로 본 퇴계 선생의 삶을 볼 수 있는 곳 옥진각 등등의 전각들이 어깨를 겯고 앉아 있다.
퇴계 선생의 사상은 이기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주리론(主理論), 인생관의 논리적 학설인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 앞에서 바라보는 마음으로서 벌써 그 이치를 짐작이나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진다. 한 생애를 바쳐 연구한 학문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그 열정만은 느껴진다.
가슴에 간직한 채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을 지나서 안동호반 자연휴양림을 걸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도 지나간다. 안동호의 수위 변동에 상관없이 수상을 걸을 수 있는 부교(浮橋)인 선상 수상길을 향해 간다. 뭉게구름은 하늘에 떠 있고, 햇볕은 쨍쨍 내리쬔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으로 위안 삼고 걷는다. 가뭄으로 안동호 수위는 바닥을 보인다. 기후 변화에 가뭄이 몰려오고 비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현상이 잦다. 비가 와서 안동호가 그득하게 차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것처럼 풍족함을 느낄 것 같다
예안국민학교가 안동호가 생기면서 잠겨서 안타까움을 선상수상길에 새겨 두었다. 교가와 풍금 그리고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선상 수상길을 건너오면 선성현 관아의 옛 모습을 재현하여 과거의 모습과 의미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조성한 선성현문화단지가 나타난다. 또 안동호가 생기면서 수몰되는 유물을 그대로 옮겨온 군자마을을 가려고 하였으나, 날씨가 더워서 그냥 지나간다.
점심은 안동시장에 있는 신선 찜닭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히 한 잔도 곁들이고 나니 다시 힘이 생긴다. 안동호 아래 숲속에서 잠시 휴식한다. 분수와 작은 도서관도 있고 쉼터로 제격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예부터 안동을 달골이라 칭하여 밤이면 달빛이 호수를 비추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하여 나무로 폭 3.6m 길이 387m인 월영교를 만들었다. 월영교를 건너가면 엄담골과 연결된다. 월영대가 중간에 자리하여 안동에 명물이 되어 있고, 호수에는 많은 사람이 배를 타면서 즐기고 있다.
건너가면 무덤 속에서 머리칼과 삼을 엮어 미투리와 애절한 심정이 담긴 이용태의 부인의 애끓는 편지가 1998년 4월 발견되어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언론매체는 물론 세계인도 감동을 줬다. 원이 엄마의 테마 길이 열려 있다. 사랑을 엮어 맨다는 자물쇠 꾸러미가 매달려 있다.
다시 호수를 건너오면 임청각과 칠층 전탑, 고성이씨 탑동 종택을 만난다. 예전에 와서 샅샅이 둘러보았기 때문에 날씨도 너무 더워서 휘리릭 한 바퀴 돌아보고 만다.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나라 사랑의 헌신을 새기는 곳, 혹독한 수난과 꺾지 않는 역사를 간직한 곳, 보수와 진보를 통합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곳으로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이다.
고성이씨(固城李氏) 탑동파의 종갓집이다. 현재까지 고성이씨 탑동파의 종손(宗孫)들이 살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 좌승지로 증직된 이후식(李後植)(1635∼1714)이 안채를 건축하였으며, 이어 사랑채와 대청(永慕堂)을 그의 손자 원미(元美)(1690∼1765) 대에 완성했다. 대청의 북쪽에 위치한 북정(北亭)은 7대조인 진사 이종주(李宗周)가 1775년(영조(英祖) 51)에 건립하였다. 원래 이 집터는 신라 시대 고찰인 법흥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칠층전탑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볍흥사 옛터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전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탑은 1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차곡히 쌓여 있다. 앞 도로에는 가로수로 심어 놓은 백일홍이 피어서 아름답게 길을 꾸미고 있다. 요즘은 백일홍 가로수가 곳곳에 심어놓은 것이 눈에 자주 보였다.
안동은 서원이 많은 양반 고장이지만, 안동댐이 생기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또 안동찜닭이라는 브랜드가 한때는 전국을 휩쓸기도 하였다. 그런 고장을 낙동강 물길을 따라가면서 일부나마 둘러볼 기회가 되었다. 아직도 더 많은 곳이 골마다 자리한다. 그곳은 다음 기회에 다시 오기로 하면서 여기에서 마무리한다.
낙동강은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여 흘러 내려오면서 물길을 불려서 곳곳에 문화와 인심을 펼치고 있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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