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물길을 따라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걷는 도보에 매력을 느낀다. 처음 길을 따라나서서 시작한 것이 2009년 여름이다. 10박 11일간 태백 황지연못에서 시작하여 하구언까지 아름다운 곳에 들러서 걸으면서 느꼈던 생각이 새삼스러워진다. 시간도 어언 13여 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몇 번 낙동강 곳곳을 따라 걸었었다. 그 걸음이 물과 걷지만, 주변의 마을과 경치를 아우르며 걸어서 더욱 의미 깊은 걸음이었다. 그때의 강물도 흘러 흘러서 바닷물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흐르고 있는 강물은 또 언제 바다에 닿아 바다와 어울리게 될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에서 한 방울의 물이 흘러서 영남 내륙을 적시면서 마지막 하구언에 도착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마도 수량에 따라 그 흐름이 빠르고 느림이 있을 것이다. 궁금하다. 여기저기를 알아보니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은 없지만, 수량에 따라 약 25일~40일 정도란다. 한 달여를 흘러 내려오면서 골마다 굽이치고, 휘돌아 흐른다.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흘러 내려올 것이다. 황지연못에서 하구언까지 521.5km이란다.
여름 날씨라 소나기라도 올 것 같지만,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분주히 흘러가고 오고 있다. 4시간여를 달려서 봉화군으로 간다.
봉화군 명호면 삼동2리 300여 년이나 된 느티나무 아래에 도착하였다. 예전에도 한 번 걸으러 왔던 곳이라 눈에 익다. 곁에는 ‘고산비상학향심생자명(高山飛上鶴鄕心自名): 산 좋고 물 좋은 이곳 향리를 위하여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황찬수, 안덕영 님의 문전옥답을 기증받아 마련한 자리로 길이 후손에게 남기고자 동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노라. 1995년 8월 10일 하학동민 일동’이라는 비가 세워져 있다. 역시 나무는 여전하고 곁에 삼동2리 하학동 경로당이 빠끔히 쳐다보고 있다. 느티나무도 수많은 세월을 견디느라 속이 썩어서 시멘트로 속을 채워놓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면 마을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지만, 말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우리 사람도 저 느티나무처럼 보고 듣고 한 것을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시끄럽지 않고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마을에는 내리쬐는 여름 햇볕만 일렁거린다.
합강을 향해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안내 표지판에 ‘뒤너무’와 ‘합강’이라고 적혀 있다. 참 정겨운 이름이다. 특히 산골을 걷다 보면 정겨운 그런 이름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기대하는 마음이 쑥 가슴에서 뿜는다.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인적이 없는 합강길을 따라 걷는다. 1km 정도를 걸어가면 저 아래로 낙동강 줄기가 제법 넓은 폭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른편에 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을 본 개가 마구 짖어댄다. 집 가에는 복숭아도 익어가고 있다. 벌통도 몇 개 자리 잡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은 낡을 대로 낡아 있지만, 잘 견디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산골의 땟국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리라.
건너편에도 집이 한 채 있다. 두 형제가 이쪽저쪽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오고 가는 줄배가 건너편에 묶여 있다. 오른편으로 재산천이 낙동강 본류와 합쳐지면서 합강 나루터라는 이름을 얻었다. 강으로 내려가서 여름의 열기를 식힌다. 더운 기운이 강바람에 골짜기로 휘리릭! 날려 간다.
예전에 왔던 길이라 더욱 정감이 간다. 나루터에 묶인 배가 있는가 하면, 이쪽에도 한 척이 수명을 다했는지 강바닥에 코를 박고 꿈적도 하지 않는다.
합강나루터만 해도 강폭이 넓다. 우리는 강을 거슬러서 올라간다. 오르면서 보면 강이 이어진 것을 볼 수가 없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휘어지고 굽어지면서 골짜기로 흐르기 때문이다. 지도를 펴고 바라보면 강의 굽이가 뱀도 아마 그렇게 굽어서 기어가지는 못할 것처럼 굽어있다.
합강나루터를 300m 정도 걸어 올라가니 멀골 솔밭이 2.66km, 아람 솔밭 4.31km 이정표가 나온다. 머리에 그려진다. 돌너덜을 지나면서 길을 가다 보면 여기저기에 벌통이 놓여 있다. 산골에서 수입원이 되고 있다. 또 넓은 밭도 만나지만, 손길이 닿은 지가 오래된 것 같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아마 내가 몇 번째 걷는데, 유일한 걸음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원추리꽃을 보니 사람을 만난 듯 반갑기도 하다.
지금은 푸르름으로 꽉 찬 골짜기이지만,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차 있어 보기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강 주변 풍경이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그 보는 재미로 더욱더 낙동강 걷기 하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멀골 솔밭은 늘미에서 남동쪽 월암산 아랫마을로 달이 춤추는 곳이란 뜻의 무월곡(舞月谷), 또 늘미에서 멀다고 하여 원곡(遠谷)이라 하던 것이 현재 멀골로 유래되었다. 월암산의 금강송과 낙동강 맑은 물이 흐르는 경치를 지녀 잘 보존하고 있다. 아람 옛길은 힘든 구간을 지나 바위틈 옹달샘 물을 마시고 솔밭의 정자에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 지친 심신이 이내 평온해지는 곳이다.’<멀골 솔밭 소개 글에서>
멀골 솔밭에 도착한다. 시원한 소나무 그늘에서 쉼을 한다. 소개처럼 편안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땀을 식히고 출발한다. 아람 솔밭을 지나 길을 가는 길에 바위들을 만난다. 모두가 비슷한 모양을 견주어 이름을 붙여 준다. 자라 바위, 선묘동 석문, 소바위, 말바위, 형제바위, 영묘대 등등 많은 이름이 붙여져 있다.
길도 질러가고, 더위도 피할 겸 해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물길을 가로질러 건너간다. 오랫동안 물이 흘러서 강바닥에 돌이 매우 미끄러웠다. 조심해서 물을 건너가는데 그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역시 더위에는 물이 최고인 것이다. 물에 들어서니 더위가 가신다. 신발을 정리하고 나서 구문소를 향했다. 구문소(求門沼)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에서 솟아난 황지천이 이곳의 암반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을 만들고 소를 이루었다 하여 구멍소, 또는 구문소라 한다.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문소 위 산마루에 가면‘자개루’라는 정자가 있다. 그 또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고개를 넘어가면 철암천과 황지천이 만나 낙동강이 되어 흘러 흘러 내려간다.
구문소에 가니 분위기가 조금 싸하다. 들어보니 축구부 선수들이 왔다가 한 선수가 물에 빠졌단다. 바라보는 우리도 모두가 안타까웠다. 구문소에 119 구급요원들이 강물 속을 살피고 있다. 나중에 뉴스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곁에는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 있어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앵무조개, 산호, 고사리류, 인목의 잎, 규화목, 암모나이트, 벌레굴, 스트로톨마이트, 등등 많은 화석이 있다. 다시 황지 연못으로 간다.
황지천은 낙동강 발원지이다. ‘황지는 본래 황부자의 집터로 상지, 중지, 하지 3개의 연못으로 나눈다. 상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나오는 굴이 있어 1일 약 5,000톤의 물이 용출된다. 이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철암천과 합하여 낙동강이 되어 경상남북도와 부산시를 거쳐 남해로 흐른다.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옛 문헌에 낙동강 근원지로 기록되어 있다.’
‘황지(黃池)라는 지명은 황동지(黃同知)라는 부자의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노랑이 황부자는 시주하러 온 노승에게 쇠똥을 퍼주었는데, 이를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였다. 그러자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해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기를 원하면 나를 따라오시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노승을 따라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며느리는 바위가 되었다. 그리고 황부자의 집은 땅 밑으로 꺼져 연못이 되었다. 황부자의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상지(上池)가 집터, 중지(中池)가 방앗간 터, 하지(下池)가 화장실 터라고 한다.’<황지 전설에서>
2009년 처음 여기에 와서 10박 11일로 낙동강 물을 따라 걸을 때 낙동강 유역청장과 낙동강 주변에서 강을 사랑하는 4~50여 NGO 들과 어울려 제사를 올리던 때가 지금 풍경과 겹쳐서 떠오른다. 그때 행사가 낙동강에 대한 보를 막느냐 마느냐에 따라 갑론을박할 때였으니 그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오늘에 와 보아도 신비롭기도 하다. 저 많은 물이 어디에서 용솟음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러면서 맑은 물에 손을 담가 본다. 여름밤은 무르익어 가고 있고, 곳곳에 버스킹에서부터 각종 음식물을 파는 곳이 즐비하다.
태백은 700m 고지여서 여름을 지내기 위해 한 달살이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모기가 없어 여름에는 쾌 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태백에서도 청청한 곳 오투(O2)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꿈속에서 태백의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푹 잠을 잤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