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이끌어가는 꽃이 있다면 단연 수국일 것이다.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망울에 사람들은 푸근한 마음을 얻는다. 부산 근교에도 태종대에 태종사를 비롯하여 수국이 피는 곳은 많이 있지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 이번 걸음은 멀리 경남 고성으로 간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국도를 빠져나와 마산항이 내려다보이는 도로를 따라가면서 경남대학교를 지나 무학산 아래 만날 고개를 넘어간다.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의 장소 만날 고개를 이야기하면서 그 시대와 요즈음의 시대를 나름의 이야기로 나누면서 지나간다. 그렇게 가는 동안 아름다운 주변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랜다.
경남 고성군 거류면 은황길 82-91 벽방산(600m) 아래 위치한 만화방초에 오르는 길이 오롯하게 구불텅하게 안내한다. 항상 겪어보는 것이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와서 구경하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8시 40분경,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말이다. 대신 제일 위쪽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어 편하게 오르게 되었다.
‘한여름 수국 향기와 수국 빛이 있는 곳! 제5회 고성 만화방초 수국 축제! 일시: 2022년 6월 18일(토요일)~7월 17일(일) 장소: 경남 고성군 만화방초. 주최, 주관: 고성군, 만화방초’라는 현수막이 우리 눈길을 확 이끈다.
그러면 지금이 7월 3일이니 수국 축제 중이라는 것이다. 괜히 흥이 난다. 여름은 언제나 걸으면 땀이 나고 일찍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변에 피어있는 수국 군락을 보니 땀이 싹 가시는 것 같은 위로를 받는다. 주차장 가에 있는 보라색 수국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색상을 맞추어 본다. 아침 시간이라 색상이 선명하게 잘 나온다. 그래 됐다. 오늘도 사진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몇 장을 연거푸 찍는다.
오르막을 200여 m 오르는 길가에 여기저기 보라색부터 시작해서 노르스름한 것, 보라색이 퇴색된 듯한 색깔, 노르스름한 색깔과 보라색이 섞인 색깔, 붉은빛을 띤 색깔, 흰색 등등 색상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아울러 모양도 겹잎이 있는가 하면 홑잎도 많다.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큰 나무 아래 나름의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들이 초입에는 여기저기 피어있어 군락보다 좀 더 싱싱한 모습인 것 같다.
입구에서 입장료가 어른들은 3,000원, 학생 어린이는 2,000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중앙 잔디광장에 그림 전시회 및 체험 공간이다. 칠면조 세 마리가 주인을 따라 자신들의 목소리로 따라가고 있다. 눈길을 끈다.
그 앞에 이해인 수녀의 시가 걸려 있다.
수국을 보며 / 이해인 / 기도가 잘 안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이해인 수녀의 시를 천천히 읽고 그런 마음으로 수국을 대하리라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겨서 수국정원으로 가는 마음이 맑다.
이곳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은 액자들이 즐비하게 오는 손님들은 맞이하고 있다. 그림에도 나름의 표현들이 수국의 표현처럼 다르게 다가온다.
조금 오르면 ‘벨라의 정원’이 바람개비와 함께 펼쳐진다. 색색이 다른 꽃들이 우리를 환하게 맞이한다. 그러면 우리는 각각의 꽃들과 눈맞춤을 한다. 방향에 따라 햇빛을 등지고 역광으로 옆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더욱 빛나게 연출하면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번갈아 가면서 눈맞춤을 한다.
또 다른 사람이 꽃과 같이 사진을 찍으면 또 기다리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빨리 찍고 물러나 주기도 하고, 자신들이 마음에 들도록 길게 찍는 사람들도 있다. 거의 가족이나 연인들이 많다. 연인들은 남자들이 여자를 찍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남자가 그만큼 여자에게 배려해 주는 것 같다. 여성 상위시대인가?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봐야 어디에서 열심히 찍고 있겠지? 싶어 내가 찍고 싶은 꽃들과 눈맞춤 하면서 좀 다르게 연출하려고 이리저리 화각을 돌려본다. 더 많은 꽃과 눈맞춤 한다. 마침 나비 한 마리가 꽃이 좋아서 꿀을 따 먹느라고 이리저리 날개를 펴서 날고 있다.
서서 휘휘 둘러보니 산수국이 매우 피어있는 곳으로 간다. 숲속의 바다로 연결이 된다. 편백나무가 우뚝 서 있는 곳으로 길이 나 있다. 나무와 어울리는 꽃들이 다른 상큼한 그늘의 맛을 풍겨 준다. 작은 연못도 한몫한다.
일행과 만나서 멀리 들판을 바라보는 자리에 옹기가 몇 개 놓여 있다. 그것을 배경으로 우리 사진을 찍는다. 공식 모델이 우산으로 활짝 펼친다. 저 멀리 녹색 들판 사이로 집들이 다른 색깔로 펼쳐진다.
다시 수국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제는 경남 김해시 대동면 수안리에 있는 수국이 있다고 하여 그쪽으로 가기로 하였다. 길을 잘못 들어 한 바퀴 돌아서 도착하니 오후의 햇살이 낙동강을 멀리 비치고 있었다. 언덕 위에 자리한 마을에 어떻게 이런 낙원을 만들었을까?
2016년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공모에 선정되어 추진되었다고 한다. 2년 동안 가꾸어 2018년부터 제1회 수국 축제가 열렸다고 하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이제 어느 정도 지났고, 올해는 가물어서 꽃이 탐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덕 위에 꾸며 놓은 정원이 볼 만하다.
마을에서 건너가면 수국 향이 진동하며 여행객을 맞이한다. ‘소뜽걸 수국공원’이란 수안마을의 로고인 것 같다. 대나무밭에 길을 내어 전등을 켜서 길을 내고 꽃으로 꾸며서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언덕을 올라가면 아기자기한 모습의 골목이 모여서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것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늘에서 동네에서 손수 키운 채소와 음식을 팔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별로 관심을 주지 않자 자기네들끼리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이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빨리 팔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팔 수 있으리라.
‘수안리 미륵암 마애석불은 수안리 선유대(선암마을) 아래에 있던 바위, 미륵암에는 마애불상(자연 암벽에 부조로 조각한 불상)이 새겨져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1972년 남해안 고속도로 건설과정에 있어 미륵암 마애불의 보존 여부와 이전에 대한 감정평가를 앞두고 있었으나 당시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 부족과 공사 지연을 막으려는 대처로 인해 감정평가 없이 폭파, 훼손되었다. 이를 비통하게 여긴 주민들이 일부 7조각을 모아 허술하게나마 모아 붙여 연화사 뒤 공터에 옮겨 놓았다. 경성대학교 글로벌 문화학부와 함께 진행한 「수안마을 문화역사 연구」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되어 새롭게 복원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역사에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현대화란 이름으로 곳곳에 많은 우리 문화유산이 파괴되어 없어진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내 고향에도 들판에 고인돌이 큰 것만 해도 10여 기가 있었는데 경지 정리를 하면서 모두 파묻어 버렸다. 그 시절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문화유산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이다.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때를 기억해 내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지고 안다손 치더라도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러면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잊혀 버린다.
수안마을도 그런 경우인데도 마을에서 새롭게 복원했다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모여 마을도 아름답게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큰일을 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대한민국 곳곳에 사라져간 문화유산 복원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저 멀리 낙동강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 역사도 저 강과 같이 유유히 흘러 저 대양을 향한 희망이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위를 식힐 겸 '수안애뜰' 카페에서 땀을 식힌다.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시 길을 나설 때는 해거름이 멀리 가 있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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