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 (43) 전남 영광의 속살을 찾아 ... 백제불교의 첫 도래지 마라난타사

박홍재 기자 승인 2022.07.05 08:06 | 최종 수정 2022.07.08 13:46 의견 0

2022년 5월 28일 부산 시조 회원 37명이 떠난 봄 문학기행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제대로 회원들이 모여서 행사를 해보지 못했다. 그러한 답답한 시간을 보내다가 코로나도 조금은 변이를 거듭하면서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 숨통이 터지자 2년간 못한 문학기행을 기획했다.

가고 싶은 곳은 사람마다 달라서 한 곳으로 일치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는 문학기행이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서로 원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을 원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인데 혼자 잘 가지지 않은 곳으로 가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보지 못한 곳, 멀리 가기로 정했다.

당일 아침 7시 교대역에서 출발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가는 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씩 인사 겸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자리에 앉아서 조용하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4시간 여를 달리는 동안 지겹지 않게 중간중간에 시 낭송도 하면서 풋풋한 시간을 가졌다. 차창 가로 펼쳐지는 5월의 신록 사이로 하늘은 그런대로 맑았다. 중간에 쉬어가면서 문산휴게소에서 회원 한 명도 태웠다.

드디어 차가 서서히 영광으로 들어서면서 괜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길가에는 굴비란 글자가 안 적힌 가게는 없을 정도로 간판에는 무슨 무슨 굴비, 법성포 굴비에 대한 정체성이 대단해 보였다.

마라난타사 전경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우리는 백제불교의 첫 도래지인 마라난타사였다.

‘마라난타(摩羅難陀)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중국 남조의 동진을 거쳐 백제로 건너왔다. 침류왕은 교외까지 나아가 그를 맞아 궁궐 안에 머무르게 하였다. 마라난타는 궁중에 머물며 국왕 등에게 설법하였으며, 백성들도 점차 교화되어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백제 불교의 시작이다. 마라난타는 침류왕을 설득해 불사를 봉행하게 하였다. 385년(침류왕 2년)에 새로운 도읍지 한산주(漢山州)에 백제 최초로 절을 창건하고 10인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득도시켰다. 마라난타는 인도 북부의 간다라 지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불교를 전파하는 데 뜻을 두고 있었다. 그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수행 정도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라난타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사방을 유력하며 불교를 전파하였다. 마라난타의 교화에 힘입어 백제는 392년(아신왕 원년) 2월에 <불법을 숭상하고 복을 구하라>라고 하는 교서를 반포하게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마라난타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고 하였다.’<마라나타 소개>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는 고구려가 서기 372년, 백제가 서기 384년, 신라가 서기 527년에 받아들였다. 그만큼 불교의 유입은 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는 길이 되었다.

렌즈43-1 마라난타사 승강기
마라난타사에 오르는 승강기

커다란 탑 앞에 차량이 도착했다.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은 마라난타사를 들어가는 첫 관문인 엘리베이터였다.

보통 올라가는 길이 언덕이 대부분인데, 엘리베이터라니. 지자체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졌다. 백제 최초 불교 도래지, 마라난타사 건립을 위해서 타 종교와 갈등도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추진력 있게 좀 더 다르게 만든 것에 대한 역사의식이 뚜렷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렌즈43-2. 영광대교와 법성포구 그리고 마라난타사
마라난타사 앞 법성포구 그리고 영광대교

언덕에 올라서면 저 건너로 영광대교가 바다를 가로질러 주탑 두 개를 환하게 팔처럼 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내리면 법성포(法聖浦 : 불법이 들어온 성스러운 포구)로 들어오는 물길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지금은 밀물이어서 물이 빠져나가고 갯벌이 보인다.

오른편으로 걸어가면 간다라 양식인 이국적인 황토 색깔로 불탑과 감실형 불당으로 작은 탑이 봉안된 탑원을 만나게 된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는다. 왼편에 마라난타사가 육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그 앞으로 만다라 광장과 아소카 석주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렌즈43-3. 마라난타 스님상
 마라난타 스님상

오른편 길을 따라가면 간다라 불교문화관에서 문화해설사님 계셔서 마라난타사에 얽힌 이야기와 마라난타 존자가 어떤 경로로 왔으며 그 길을 설명해 주시고, 그리고 백제불교의 현황에 대해서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속속들이 구경하려면 하루도 모자랄 것같이 광범위하다. 눈으로 맛보기만 하고 다음 진행을 위해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다. 세세히 다 돌아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되돌아 나왔다.

렌즈43-4.백제 불교 전래와 마라난타사에 대한 해설
백제 불교 전래와 마라난타사 해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예약한 곳, 정일품 한정식에서 영광 굴비가 나오는 한정식을 푸짐하게 먹었다. 모두가 만족한 미소를 띠면서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참 오랜만에 굴비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렌즈43-6. 영광굴비로 된 점심식사
영광굴비를 위주로 차려진 한정식 점심상

이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백수해안도로와 노을 전시관으로 간다. 해안도로는 걷지는 못하지만, 노을 전시관에서 전시품으로 저녁노을을 대신 간접 체험을 한다. 서녘을 바라보니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아쉽다. 앞에는 70~80년대 유명했던 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 청년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가수이다.

렌즈43-7. 노을 전시관 모습
노을 전시관

다시 버스를 타고 영광성당으로 간다. 바로 곁에 조운 생가가 있다. 초라하기 그지없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조운(曺雲, 1900년 7월 22일 ~ ?)은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조 작가이다. 본명은 조주현(曺柱鉉)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호는 정주랑(靜州郞)이다. 전라남도 영광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매부(이복 자형)는 소설가 최서해이다. 조운은 월북 이후 월북 문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잊혔으나,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가 발표되어 학계에 알려져 재평가받게 되었다.’<조운 생애>

렌즈43-8. 조운 시조시인 생가 모습
시조시인 조운 선생의 생가

특히 구룡폭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설시조 작품이다.

‘구룡폭포(九龍瀑布) / 조운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샘도 강(江)도 바다도 말고 옥류수렴(玉流水廉)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둘러 보느냐.’

렌즈43-9. 순교자의 영광성당
 순교자의 영광성당

곁에 영광성당의 늠름한 위용과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아쉬움을 안고 천주교 영광성당은 영광 출신 이화백과 양반 오씨가 신유박해 때 영광에서 순교한 것을 기리고자 2010년 순교자 기념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영광성당은 2014년에 순교자 기념문과 순교자상을 세워 쓰며, 2017년에는 순교자 기념 전시관을 경내에 건립해 순교자들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둘러보는 순간 최초의 전래는 그만큼 자기희생이 따라야 함을 느낀다.

렌즈43-10. 강항 선생상
수은 강항 선생상

이제 수은 강항 선생이 머무른 내산서원으로 간다.

‘영광 내산서원(內山書院)은 강학(講學)과 선현(先賢)의 제향을 위하여 조선 중기 이후 사림에 의하여 향촌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기구였다. 내산서원은 수은 강항(1567~161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13년(1635년)에 건립하였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지었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으나, 광북 후 현 소재지에 복원하고 내산서원이라 이름하였다. 용계사에는 강항 선생 및 동토 윤순거의 신위와 수은 선생의 초상이 봉안되어 있으면 강항 선생의 묘소가 있다.’

수은정자와 함께 연못이 있고, 용계사에는 언덕 위에 자리하여 앞이 확 트여 있어 자리가 명당이다. 일정에 쫓기는 길이 바쁠 뿐이다. 하지만 잠시 정자에서 노래 한 곡도 뽑으며 여유를 부려본다.

렌즈43-11. 내산서원에서 내다 본 풍경
내산서원에서 내다 본 수은정자

멀리 온 만큼 걸음은 또 빨라진다. 버스를 타고 불갑사로 향한다. 불갑사 주차장에서 걷는 길이 산사를 향해가는 길이 걷기도 좋다. 길가에 꽃무릇이 피는 계절이면 꽃무릇이 예쁘게 피었겠지만, 계절이 맞지 않아 옛날 왔던 기억만 떠올리며 아쉬움을 대신한다.

백제 침류왕 때 인도 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처음 지은 불법 도량인 불갑사를 둘러본다. 계단으로 오르는 불전에 다다르는 길은 어느 사찰이나 마찬가지로 부도탑이 왼편에 자리하고 걸어가면 불갑사 안내판 오른편에 ‘불갑사’라는 현판과 함께 다음 단계에 금강문이라고 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더 오르면 천왕문, 불광보조 그리고 마침내 대웅전 본당에 다다른다.

렌즈43-12. 불갑사 대웅전 앞
불갑사 대웅전 앞

물 한 잔을 떠서 목마른 중생의 목을 축인다. 시원하다. 사찰에서 느끼는 감로수 같다. 서서히 여름으로 계절은 바뀌고 있다. 대웅전 꽃살문에 연꽃 문양이 격자무늬 문살과 어울려 아름답다.

흰옷 단복을 입은 초등학생 악대가 대웅전 앞에 자리한다. 연주보다 서쪽 하늘을 마주 보는 햇빛에 아이들이 얼굴이 일그러지며 지쳐 보인다. 그들의 연주를 아련히 들으면서 절문을 나선다.

렌즈43-13. 불갑사 전경
불갑사 전경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싱그러운 산사 곁에 산들이 푸르름에 마음껏 숨을 들이켠다. 오늘 하루가 내 몸속에서 소화되는 기분이다.

하늘을 쳐다본다. 푸르다. 나의 하루도 푸르렀다. 모두가 푸르렀으리라.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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