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 (39) 이팝나무꽃 반영이 아름다운 위양지, 조상의 얼을 이어가는 혜산 서원

박홍재 기자 승인 2022.05.24 10:34 | 최종 수정 2022.05.30 10:12 의견 0

갈 곳을 정하기도 힘들지만, 그날의 시간대를 잘 맞추어야 여행이 한층 더 유익할 수가 있다. 이번에 찾아가는 곳 밀양 위양지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토요일에 밀양 사진가협회에서 출사했다니 위양지가 깨끗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 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6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은 바쁘게 서둘러서 첫차를 탔다. 교대 앞에서 세 사람이 출발하여 남산동에서 한 사람 태우고, 양산 신도시에서 태워서 다섯 명이 출발이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서울주 IC에서 함양·울산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산과 산 사이를 굴과 굴로 이어져서 끝없는 굴을 통과하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지만, 산을 통과하는데 굴을 뚫어서 어디든 사통팔달로 통하도록 하여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산업의 물류 배송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거미줄보다 더 촘촘하게 전국을 가로세로 그리고 대각선으로 이어진 도로망이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지난주 아니면 2주 전에 왔어야 했던 것 같다. 어쩌랴. 녹색이 드리운 위양지는 물풀로 덮여 있고, 이팝나무에 꽃은 지고 없어도 나뭇잎이 싱그럽다.

렌즈39-1. 위양지 저 너머로 완재정이 나붓이 떠 있다
 위양지 저 너머로 완재정이 나붓이 떠 있다

경남 밀양시 부북로 위양로 273-36에 있다. 위양지(位良池)는‘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축조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의미이다. 본래 이름은 양양지다. 신라 때 축조됐다는 양양지는 논에 물을 대던 수리 저수지였지만, 인근에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면서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대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밀양 팔경 중 하나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가 피고 아름드리 왕 버드나무와 소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온다. 위양지의 풍경을 완성하는 정자, 완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한옥 기와집이다. 경남 문화재 자료 제633호이다. 연못에 있는 섬 하나에 1900년에 지어진 안동권씨 입향조 학산 권삼변(鶴山 權三變 1577~1645)을 추모하기 위한 문중 소유의 정자‘ 완재정'이 있다. 이 정자 주변으로 핀 이팝나무와 찔레꽃 등이 위양지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렌즈39-2. 마지막 남은 이팝나무꽃이 완재정과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 남은 이팝나무꽃이 완재정과 어우러져 있다

이팝나무꽃이 절정일 때면 위양지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전국에서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팝나무꽃이 위양지에 드리운 반영을 보러 온다. 그 풍경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몇 년 전에 관광버스로 갔는데, 사람들로 꽉 들어차서 걷기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버스는 주차할 곳을 못 찾아서 우리가 위양지를 한 바퀴 돌고 난 뒤까지도 자리를 못 찾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기억도 있다.

아직 여덟 시도 안 되어 도착하니 어찌 한산한 기분이다. 이팝나무에 꽃은 지고 여름이 벌써 와 있었다. 그러면 여름을 즐기자.

완재정을 들어서려니까 난데없이 잉어 한 마리가 공중에서 우리 앞에 떨어진다. 화들짝 놀란 회원이 호들갑을 떤다. 가만히 보니 아직 살아 있다. 물에서 바깥으로 나왔으니 아가미만 끔뻑거리고 있다. 꼬리를 쥐고 위양지로 돌려보냈다. 다시 기운을 차리기를 바란다.

렌즈39-3. 위양지에 비친 완재정과 산그림자가 정겹다
 위양지에 비친 완재정과 산그림자가 정겹다

다리를 건너 완재정으로 간다. 이팝나무꽃은 졌지만, 드라마 ‘달의 여인 –보보경심려’ 촬영지라고 안내한다. 위양지에 드리운 이팝나무와 왕 버드나무, 하얀 찔레꽃이 연출하고 위양지 물가에 핀 노란 붓꽃이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못 수면 위에는 물풀이 자라 나무의 반영을 완전히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무늬를 만들어 준다. 붓꽃이 연출하는 그림도 반영과 어울려 위양지의 풍경을 다른 모습으로 다가서면서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렌즈39-5. 위양지 섬에 위치한 완재정이 붓꽃 너머로 보인다
 위양지 섬에 위치한 완재정이 붓꽃 너머로 보인다

한 바퀴를 왼편으로 돌면서 눈길이 가는 곳에 카메라로 풍경을 담는다. 먼 산의 풍경도 위양지에 드리워서 한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무엇이든지 혼자만 돌올해서도 안 되고 주위와 함께 어울려야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독불장군처럼 나서는 것도 안 된다. 해서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또 약간 모자란 듯 채워지지 않으면 더 채울 수 있어 여유롭다. 여기에 와서 그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마지막 돌아 나오는데 왕 버드나무가 용틀임하고 서 있다. 내 고향 당수 나무에 있던 왕버드나무가 생각이 났다. 그곳에도 네댓 그루가 저 모양처럼 자라고 있어 우리는 호드기를 꺾어 불곤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렌즈39-4. 위양지 왕버드나무가 용트림을 하고 있다
위양지 왕버드나무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논에는 서양 밀밭과 메밀밭, 보리밭이 있었다. 내 마음을 푸른 물결 위에 누인다. 평화롭다. 푸른 물결이 보리밭에서 일어나서 하얀 메밀밭에서 한 번 돌아 밀밭을 쓸어 위양지를 지나간다. 그 바람에 내 마음을 얻어 본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 마음을 가슴에 고이 담아 위양지를 떠난다.

렌즈39-6. 보리밭, 메밀밥, 서양밀밥 너머에 위양지를 두른 버드나무
 보리밭, 메밀밥, 서양밀밥 너머에 위양지를 두른 버드나무

물결에 반영된 나무들의 영상을 가슴에 안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밀양시 산외면 다원1리길 17-18에 있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297호(1994.7.4. 지정)인 혜산서원(惠山書院)으로 간다.

혜산서원은 ‘다죽리 죽서(竹西) 마을에 세거(世居)하는 일직(一直) 손씨(孫氏)의 5현(賢)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1753년(영조 29)에 창건한 손조서(孫肇瑞)의 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던 자리이다. 손조서는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와 탁절(卓節)로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士林)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西山古宅)” 또는 철운재(徹雲齋)로 편액(扁額) 하였다. 1971년에 서원의 경계 구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 봉안되었던 일직 손 씨 명현 다섯 분의 서원(書院)인 정평공 손홍량(靖平公 孫洪亮)의 안동 타양서원(陀陽書院),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의 밀양 서산서원(西山書院),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의 대구 청호서원(靑湖書院), 문탄 손린(聞灘 孫燐)의 대구 봉산서원(鳳山書院), 윤암 손우남(綸菴 孫宇男)의 영천 입암서원(立巖書院) 등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복설(復設)하고 혜산서원(惠山書院)으로 중건한 것이다.’<혜산서원 소개 글에서>

혜산서원 본채
혜산서원 본채

우리가 갈 도착할 즈음 승용차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차에서 내려 낙호문(樂乎門)이란 대문 안 집으로 들어간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으니 오늘 영남 유림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자리라고 한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서원을 구경하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돌담을 돌아 서원으로 갔다. 담벼락에 붉은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담 밑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어 길손을 맞이한다. 뒤쪽에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렌즈39-13. 서원 담벼락에 핀 장미빛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서원 담벼락에 핀 붉은 장미가 옛 영화를 말해준다

서원을 둘러본다. ‘성균진사영묘제손선생유허비’가 거북등에 우뚝 서 있다. 그 앞에 격재 손선생 신도비명 병서가 세워져 있다. 내용은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 의금부 춘추관 성균관사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세자 좌부빈객 오위도총부부총관 행 통정대부 집현전 한림학사’로 시작하는 빽빽하게 적혀 있다.

렌즈39-11. 죽계서당 모습
 죽계서당 모습

1,300평 규모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례문(尙禮門), 신문(神門), 중문(中門), 전사당(典祀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다원서당(茶院書堂), 이이정(怡怡亭), 고사(庫舍), 대문(大門) 등 13동의 건물이 경계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렌즈39-12. 영남 유림이 와서 담소를 나누는 동산정,
영남 유림이 와서 담소를 나누는 동산정

경내를 둘러보면서 선조들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후손이 거기에 맞는 재력으로 뒷받침해 놓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사라져간 업적들이 산골짝 골짝마다 많이 묻혔겠다는 생각 든다. 누천년에 걸쳐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이 온전히 지탱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 문화를 알아가는 방법 중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를 바로 알아가는 것이 혜산서원에 와서 모여 있는 후손을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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