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온갖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서로 오라고 부른다. 어디로 갈까 하고 꽃소식을 들어보면 갈 곳이 너무 많다. 어디로 갈까? 하고 막상 생각을 해보면 또 선뜻 나서는 곳을 정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시간을 어떻게 할애하고 무엇을 볼 것이냐 하느냐가 정해지기까지 또 망설이게 된다. 무슨 꽃을 볼 것인가 정해지면 꽃 찾아갈 곳이 정해진다. 전국에 꽃핀다는 소식에 우리도 갈팡질팡할 정도이다. 본래는 남해 다랑이 마을에 유채꽃이 좋다고 하여 정하였다가 비슬산 참꽃이 한창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바뀌어서 방향을 돌린다.
‘비슬산(琵瑟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대구시 달성군과 경북의 청도군, 경남의 창녕군에 걸쳐 있는 최고봉은 천왕봉(1,083.4m)이다. 주위에 대견봉(1,035m), 청룡산·최정산·우미산·홍두깨산 등이 있다. 기반암은 석영반암이며, 스님 바위·코끼리바위·형제바위, 기 바위, 거북바위 등의 이름난 바위와 산마루에는 풍화·침식 작용으로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암석이 드러나 있다. 산정은 평탄하며, 남서쪽과 북쪽 사면은 절벽을, 북동쪽 사면은 완경사를 이루고 있어 참꽃군락지로 이루어져 있고 30만 평이나 된다.
1986년 2월 이 일대가 비슬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참꽃, 여름엔 울창한 수림과 어우러진 계곡, 가을엔 단풍과 억새, 겨울에는 얼음 동산으로 장관이다. 그밖에 냉천 계곡·홍등 약수터·천명 약수터 등이 있다. 또 드라마 ‘추노’의 마지막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용연사를 비롯해 유가사·소재사·용문사·용천사 등 많은 절이 있다. 양리 - 유가사 - 도선암- 산정 - 조화봉 소재사 - 양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문화유적이 많아 대구시민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비슬산 소개 글 참조>
아침 9시부터 산행 셔틀버스가 운행된다고 하여 그 시간에 맞추어 6시30분에 출발한다.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현풍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산과 들에는 봄이 와 있다. 벚꽃을 비롯하여 복숭아꽃, 살구꽃 등이 피어 마음을 확 끌어들인 후이다. 이제는 꽃은 지고 연초록 잎들이 피어나는 산천은 연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연한 잎새들이 뿜어내는 빛깔은 우리 마음을 순하게 정화해 준다. 하나도 아닌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잎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좋다! 하는 말만 내뱉는다. 눈 호강을 하면서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비슬산 정상으로 오르는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곳을 따라 오르는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오는 것이다. 거의 30여 분을 졸졸 따라 올라가니 이제는 차를 세울 곳이 없다. 길을 돌고 돌아 길가에 주차원의 양해를 구해 겨우 주차하였다.
그런데 표를 사는 줄이 상상을 초월한다. 주차장 하나를 다 메우고도 남는다. 어쩌랴! 우리도 줄을 서서 한 발짝씩 따라간다. 한 시간 반 줄을 서서 정상으로 가는 차표를 샀다. 그런데 또 우리가 탈 차를 기다린다. 차량 20대와 전기차 여섯 대가 연신 오르내리면서 날라도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도 63번 차랑 번호를 타고 차량에서 정상까지 20여 분 걸렸다. 유가사에서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의 선택은 차량이었다.
오름길에 오른편 계곡에 얼음덩이가 있다. 겨울에 얼음 축제 후에 아직 녹지 않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둥근 바위들이 무더기로 있는데 학자들이 공룡알이라고 한단다. 운전기사님이 하는 말이 ‘자신이 보니 바윗덩어리인데?’ 하시어서 차를 탄 사람들이 웃음을 자아내었다. 또 왼편으로 바위 너덜겅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이 규모가 커서 학술적으로 자연 학습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차량에서 내리니 바라보는 아래로 현풍 시내가 매연에 휩싸인 채 희미하게 나타난다. 산줄기들이 한꺼번에 눈 속에 들어온다.
데크를 따라 조금 오르면 능선에 닿게 되고, 건너다보이는 대견사 삼 층 석탑이 건너편으로 벼랑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 층 석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때에 따라 배경 사진으로 유명을 떨친 석탑이다. 탑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다. 아마도 사진을 찍는 모양이다.
능선에 오른다. 왼편으로 대견봉이 솟아 있고 건너편에는 천왕봉이 솟아 있다. 그 사이 완만한 경사면에 참꽃이 피어 있는데 말로는 다 표현하기가 힘이 들 지경이다. 오른편 뒤에는 강우 레이더 관측소가 천장이 둥그런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어 우선 눈에 확 들어온다. 무슨 공사인지 한창이다.
사람들로 가는 길이 서로 부딪힐 뿐만 아니라 사진 찍느라 서 있는 사람들로 길이 비좁다. 그래도 펼쳐지는 참꽃 세상이 주는 강렬한 색깔은 가슴에 자꾸만 새겨지고 있다. 경사면을 덮는 곳곳에 무더기로 피어난 참꽃들이 혼자서 혹은 군락으로 물결로 채워지면서 출렁인다.
붉은 물감을 바닥에 풀어 채색한 도화지 같고, 누군가 채색된 명화 같은 느낌을 준다. 능선을 따라가면서 보이는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기에 온 모든 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같이 온 사람들을 찍어 주느라 어떻게 미소를 지어라, 옆으로 더 물러서라, 웃어라, 하트를 내라 등등 들려오는 소리가 즐거움의 소리를 표현하는 사람 개인마다 만끽하는 표현 소리이다.
바닥에 깔린 야자 매트가 있어 다행히 먼지는 덜 나는 편이다. 요즘 등산로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 길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해 주고 있다. 그런데 깔리지 않은 곳은 얼마나 밟았는지 흙이 말 그대로 분말에 가까울 정도로 가루로 변해서 먼지로 풀풀 날리고 있다. 그때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게 아니라 먼지를 마시게 된다. 비가 좀 오면 괜찮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30만 평의 참꽃 군락지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장관을 보면 모든 게 다 사라지게 된다. 참꽃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봄마다 달성군에서‘참꽃 문화제’를 열어서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몇 년째 행사가 취소되었단다.
어쩌면 사람들이 하는 행사는 자연이 내뿜는 자연에 대한 치유에 비한다면 아주 작은 곁다리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펼쳐진 참꽃의 화려함은 저마다의 모양과 군락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가슴에 닿아 기억 속에 남아 다음에 또 오게 하는 것이 더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에 따라, 더 가까이에서 보느냐? 전체를 보고, 하나의 꽃으로 보고 더 깊이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보느냐? 누구와 보느냐? 등등 다가오는 참꽃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또한, 참꽃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아 왔고, 가장 가깝게 우리 생활에서 접하던 꽃이다. 개별적인 꽃들이 이렇게 군락을 이루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게 가슴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가서 가만히 바라보면, 누이 같고 누님 같고, 어머니 같고 가족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나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꽃이면서 이입이 잘 된다. 꽃 속에 있는 사람이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더 잘 그려지는 걸 느낀다. 그게 아마도 친숙한 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과 참꽃이 잘 어울려지는 것이다.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를 보면, 어린 양을 지켜주는 양치기 소년 같은 생각을 하게 한다. 드문드문 서 있는 소나무들이 참꽃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참꽃지기 같아 보인다.
달성 명예 군민 홍보대사 송해 선생님이 와서 찍은 사진도 환하게 걸려 있다. 나도 거기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참꽃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참꽃
박홍재
곁으로 다가서면
손잡는 엄마같이
따뜻하게 맞아주는
누이와 누님 같고
내 모습
참꽃 속에서
가족 얼굴 만났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