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는 항상 마음속에서 꼭 가보고 싶은데, 못 가고 가슴만 태우는 곳이 꼭 있기 마련이다. 왜 그런지 모르게 갈 일이 있을 때, 다른 일이 겹치는 곳이다. 바로 그곳이 이번에 가게 된 바로 점봉산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다.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떡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16m 고지에 약 165,290m²(5만 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하여 마치 고산 화원을 방불케 한다. 봄에는 얼레지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 물봉선, 가을에는 쑥부랑이, 용담, 투구, 단풍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국내에서 생태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으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희귀한 식물도 많다
한 달여 전 아는 분 친구가 운영하는 곳에 예약해 놓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설피밭로 393-24에 있는 눈꽃 세상 펜션으로 간다. 가는 길가 계곡에는 골짜기를 흔드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다른 곳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저수지와 강물이 말라 있는 곳이 많지만, 이곳은 얼마 전 강원도 지방에 비가 내려서 수량이 많은가? 보다.
산골로 들어가는 길에 공기도 맑다. 차창을 활짝 열고 마음껏 산소를 들이마신다.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또 이마에 바람이 와 닿으니 더욱 기분이 상승한다. 오늘 밤을 강원도 골짜기에서 보낸다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들뜨는지도 모르겠다.
펜션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하고 주차하자 주인아주머니가 마중을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산에서 살아서 그런지 얼굴이 맑다. 미소도 곱다. 2층 달맞이 방을 안내받아 짐을 날라 옮겼다. 곁에 기린 방에는 가족 단위로 한 팀이 와서 산골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산골은 어둡기 시작하면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안내된 곳에 숯불을 피우고 밤의 향연을 준비한다. 숯불이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면서 주위를 일깨워준다. 그와 함께 바깥은 어두워지고 우리 둘레를 감싸고 있는 실내는 창문이 열려 있으니 벌레들이 손님맞이를 하러 왔다.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에서부터 크고 작은 벌레들이 우리와 같이 잔치를 즐기려 한다. 바람이 휘익 불자 마음도 상쾌해진다. 고기를 굽는다. 술 한잔을 곁들여 오늘을 마감하는 시간을 가진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우리들의 이야기도 밤하늘에 펼쳐놓는 폭도 자꾸 길어져 간다. 아쉽게도 밤하늘이 구름이 끼어 별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조금씩 바람이 불면서 차츰 걷히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마당에 있는 탁자에 누웠다.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와 별이 만나는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별을 보고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고,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좌 등등 별자리를 찾아본다. 아직 다 걷히지 않아서 다 보이지 않지만, 북두칠성은 산등성이 너머로 별자리가 보인다. 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다. 아는 별자리를 찾았다는 것이 뿌듯하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메모한다. 깜박 잠이 들었다. 찬 공기에 일어나니 고양이가 쓱! 지나간다. 깜짝 놀랐다. 그래 들어가 자야지 하면서 일어나서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고 가슴에 담고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쾌한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밖으로 나와 이슬에 맺힌 야생화들을 찍는다. 그리고 풀잎에 맺힌 이슬도 만난다. 마음껏 팔을 편다.
9시에 곰배령 문을 연다니 일찌감치 광장에 가서 주위를 둘러본다.
백두대간 단목령, 설피, 송이와 과일을 파는 가게, 등등이 자리하고 안내한다. 곰배령 통제소에서 줄을 서서 개인별로 입산 허가증을 9시에 개방하고 11시까지 입산 마감하고, 16시까지 입산 허가증을 반납해야 한다.
관리센터 주위에는 자작나무로 만든 갖가지 놀이기구를 만들어 놓았고, 곰배령에서 피는 야생화 개화 시기를 월별로 구분하여 놓았다. 아마 저 꽃들을 보려면 일 년 내내 살아야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점봉산 산림생태 탐방로를 보니 탐방 거리 10.5km, 약 4시간 소요가 된다. 점봉산 산림생태 관리센터가 800m, 이고 곰배령이 1,164m이다.
‘점봉산의 산림생물 다양성은 미래세대를 위하여 우선으로 보전해야 할 “인류의 자연 유산”이다. 한반도 자생식물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맞닿은 곳인 점봉산에는 자생종의 20%에 해당하는 약 85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국제기구 유네스코(UNESCO)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산림청은 백두대간 생태 축의 보고인 점봉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연중 입산 통제하여 관리하고 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걷는다. 물소리는 여전히 맑고 청량하다. 주위로 들어선 나무들이 꽉 들어차서 하늘을 덮고 있다. 조금 들어가니 ‘강선 마을’ 표지판이 나온다. 두어 곳에 음식 파는 가게가 있고 여기저기 두어 채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는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훤히 앞길을 안내해 준다. 한 집에는 앞 화단이 온통 꽃으로 꾸며져 있어 여기도 화원이다.
마을을 지나면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가면 굵은 자작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무늬가 갖가지이다. 그 사이로 피어 있는 꽃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어우러지고 있다.
물소리는 우리와 같이 걷는 것 같다. 폭포를 이루는 곳에는 하얀 물보라가 꽃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버섯들이 피어나서 더 골짜기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 오르는 길가에 한 잎씩 피어있는 꽃과 나물, 이끼, 넘어져 썩어가는 나무들, 거기에 피어나는 버섯과 씨앗이 떨어져 새로운 잎을 틔우며 자라나는 갖가지 생물들이 경이로울 뿐이다.
다리가 무거워 올 즈음 마지막 곰배령 꽃밭에 다다른다. 펼쳐진 넓이에 그냥 놀라고, 그 넓이를 꾸미고 있는 갖가지 꽃이 싱싱하다는 것이 새롭다.
화원에 들어가는 가슴이 뛴다. 거기에서 헤엄쳐 본다.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로 고이 모셔본다.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커다란 렌즈를 가지고 온 사람, 휴대전화로 찍는 사람 갖가지 나름으로 찍어대는 모습이 모두 환하게 얼굴이 밝다. 작은 점봉산에는 안개구름이 끼었다가 다시 드러나고를 시간을 두고 보여주고 있다.
곰배령 표지석에는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10여m 서 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무 데크로 된 길을 따라 돌아가면서 그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화와 대화를 한다. 수많은 사람과 눈맞춤을 해도 마냥 해맑은 꽃들이라 더 아름답다. 돌고 또 돌아서 가면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른 마음이 생겨서 다시 나누는 대화, 끝이 없을 것 같다.
점봉산 맞은편으로 올라가서 다시 내려다본다. 넓기도 하지만 작은 꽃잎들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를 더욱 아름다운 소리로 다가온다.
내려가야 하는데 자꾸 맴을 돌 듯이 돌아보고 다시 뛰어가서 찍고를 연거푸 한다. 이제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을 안은 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면서 내리막길을 한 발짝씩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오르면서 다 보았다 싶었지만, 또 새롭게 다가오는 꽃과 나무, 풍경을 만난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 생각이 났다. 그렇지 다 볼 수 없지. 사람도 그처럼 다음 생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 씩 웃으면서 걸음을 걷는다. 역시 물소리와 꽃들이 보내주는 산길은 이런 맛에 오는 것이리라.
내려오면서 강선마을에 와서 산나물 전과 감자전 그리고 곰취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피로를 쓸어 담으면서 물소리를 따라 내려간다.
점봉산 관리센터에 오니 오늘 다녀간 사람이 507명이라고 확인되어 있다. 나도 저 사람들의 한사람으로 점봉산 꽃동산을 구경하고 온 것이다. 내가 가졌던 한가지 숙제를 한 기분이다. 가뿐한 마음이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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