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증호 시인의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 5 - 내 사랑은, 박재삼

시조(時調), 사랑을 노래하다

손증호 승인 2023.03.28 20:06 | 최종 수정 2023.04.01 06:23 의견 0

내 사랑은

                                박재삼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대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모국어의 연금술사’라고 평가받는 박재삼 선생의 〈내 사랑〉입니다.

첫째 수에서는 종일 오지 않는 그대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친, 슬픈 마음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둘째 수에서는 사랑하는 이가 오지 않아 고통스러우나 사내대장부이기에 차마 겉으로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밤새워 온몸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는 화자의 내면을 마치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듯하다고 표현합니다. 상실감에 휩싸인 마음을 싸릿대로 엮은 사립문에 비친 달빛처럼 천 갈래 만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한 뒤, 셋째 수에 와서 애잔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독자의 가슴 속에 파문으로 일렁이게 합니다.

박재삼 시인의 〈내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도 큰 감동을 주는 ‘사랑’ 시조로서 산문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본보기로 보여 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손증호 시인

◇ 손증호 시인 : ▷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성파시조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등 ▷시조집 《침 발라 쓰는 시》 《불쑥》, 현대시조 100인 선집 《달빛의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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