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 - 손증호, 흙!흙!흙!

이광 승인 2021.10.26 21:08 | 최종 수정 2021.10.28 10:04 의견 0

흙!흙!흙!
                    손증호

 

콘크리트 숲에 갇혀

한 아이 울고 있다

눈물 닦아 줄 사람

어디에도 안 보이는데

깜깜한 얼굴을 묻고

흙!흙!흙! 울고 있다.

 

손증호 시인의 <흙1흙!흙!>을 읽는다. ‘콘크리트 숲에 갇혀’ 울고 있는 한 아이는 아파트 단지 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일 수 있다. 부모는 돈벌이 나가고 같이 놀 만한 친구가 없어 외로움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실지로 낮 시간에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데 ‘섬집아기’나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아기처럼 잠만 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또 한편 울고 있는 아이는 빌딩이 늘어선 거리,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어른들의 동심일 수도 있다.

‘눈물 닦아줄 사람/어디에도 안 보이는’ 중장은 콘크리트 숲에 가린 소통 부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조용필의 명곡 <꿈>의 가사에도 있듯이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인 것이다. 종장에 오면 또 달리 생각할 여지가 보인다. ‘깜깜한 얼굴을 묻고’ 콘크리트 바닥 아래 갇힌 흙 또한 따스한 햇빛이 그리워 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도 문명에 신음하는 자연의 울음을 아이의 울음 속에 같이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흙의 발음은 ㄹ받침이 묵음이 되면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흐느끼는 소리와 같아진다. 시인은 이를 잘 포착하여 시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흑, 흑 눈물을 흘리는 콘크리트 틈새의 한 줌 흙에서 새 봄 민들레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초중종장의 전구, 후구를 각각 한 행으로 처리하여 여백이 전혀 없이 배행한 것은 건조한 도시문명의 상징인 콘크리트 구조물을 연상케 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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