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6) 벌교 - 변현상

이광 승인 2021.11.24 06:44 | 최종 수정 2022.12.16 17:04 의견 0

벌교
           
변현상

 

전라도
보성
벌교

저 갯벌이 종교다

날름
날름

주워먹는
꼬막은 구휼금이고

널배가 넓은 신전을
헌금도 없이
지나간다

 

여기, 전남 보성의 벌교를 종교라고 주장하는 시인이 있다. 부언하자면 벌교의 갯벌이 종교라는 것이다. 그 주장이 과연 어떠한 정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독자는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중장에 등장하는 꼬막은 벌교의 갯벌에서 많이 생산되는 조개로 꼬막요리는 그곳의 향토음식으로 이름나 있다. 겨울이 제철인데 크기에 비해 풍부한 육즙과 졸깃한 식감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시인은 이 꼬막을 구휼금이라 칭한다. 가난한 시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갯벌이 아낌없이 내어준 꼬막은 구휼금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일용할 양식으로 광야에 내리는 만나를 연상케 하고, 시인의 주장대로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게 종교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종장에 들어서면 갯벌은 우리 삶을 품어주는 넓은 신전으로 치환되며 종교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널배가 ‘헌금도 없이/지나간다’ 라는 진술은 헌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종교의 일면을 슬그머니 꼬집기도 한다.

이 작품은 자유로운 배행을 구사하여 보는 이마저 자유롭게 한다. 초장의 행갈이는 넓은 지역에서 점점 목표지점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줌인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중장에서는 꼬막을 채취하는 모습을 ‘날름’이란 의태어 한 마디로 함축하고 행을 바꿔 반복함으로써 현장과 같은 생동감을 자아낸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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