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8) 외등 - 최화수

이광 승인 2021.12.07 22:22 | 최종 수정 2021.12.10 16:00 의견 0

외등
                          
최화수

 

 

빛이 고픈 땅거미가 초저녁부터 보챈다

화색 흠씬 돌 때까지 외짝 젖을 내주느라

한잠도 못잔 저 어미, 눈이 퀭한 새벽녘

 

최화수 시인의 <외등>을 읽는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불을 밝히고 동이 트는 새벽녘까지 젖 물리듯 빛을 내어주는 외등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먼저 머릿속에 하나의 장소를 불러내도록 하자. 외등이 서 있는 골목길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할 때 동네 어귀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던 외등을 떠올려도 좋겠다.

초장 전구의 ‘빛이 고픈 땅거미’는 멀어져가는 빛을 아쉬워하며 바닥에 깔리는 어스름이다. 막차를 놓친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듯 빛을 보채는 땅거미를 외등은 동그랗게 품어준다. ‘화색 흠씬 돌 때까지 외짝 젖을 내주’는 외등의 헌신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를 상기시키는가. 종장의 '한잠도 못 잔’ 저 어미 앞에서 눈을 그만 지그시 감고 만다. 자식을 위해 정성을 다한 어머니, ‘눈이 퀭한 새벽녘’ 외등의 모습처럼 수척해진 노모의 얼굴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똑같은 제목으로 사랑을 다 쏟고 떠난 어머니를 노래한 3수로 된 졸시가 있지만 이를 단 한 수로 간결하게 녹여낸 시인의 솜씨가 대단하다. 시인이 종장 전구의 ‘저 어미를’ 외등이라 쓰고, 제목을 어미라 하여 미리 속내를 드러냈다면 감동이 반감했을지 모른다. 반면 짧은 단수는 독자가 단숨에 읽고 지나치다 자칫 감동의 지점을 놓칠 수도 있다. 이를 우려했는지 시인은 그 지점에 쉼표를 두고 있는데, 종장 전구와 후구의 행갈이로 사유의 행간을 주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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