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2) 팽이 - 이우걸

이광 승인 2022.01.05 11:25 | 최종 수정 2022.01.06 11:11 의견 0

팽이
                       
이우걸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새해 벽두를 여는 시조로 필자가 등단 이전부터 가슴에 품어 왔던 작품을 올린다. 살면서 수시로 부딪히는 난관이 우리의 현실임을 일러주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북돋워주는 명작이다. 한눈에 7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감지되고 있지만 그보다도 ‘가혹한 매’를 생의 근원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일 때 이 작품이 던지는 감동의 진폭은 더욱 깊고 크다 하겠다.

가혹한 생존 환경에서 절실하게 그려내는 희망의 무지개, 이를 바라보며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비장한 모습에 사뭇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는 시인의 육성은 상황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음에도 ‘쳐라’ 하며 단호히 맞서는 강단으로 사람들의 용기를 자극한다. 중장보다 다소 묵직한 저음으로 다가오는 종장에서는 꾹 참고 기다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접시꽃이 발현한다. 이는 중장에서 용기를 얻은 이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하고, 여전히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정감 있게 위로한다.

종장 마지막에 굳이 ‘하나’라는 숫자를 붙인 의미를 생각해본다.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으로 끝맺었을 경우 종장의 음수율은 딱 들어맞으나 꽃은 동적이라기보다 정적인 모습을 갖는다. 반면 ’접시꽃 하나‘라고 명명함으로써 각자 개체로서의 생이 자연스럽게 호명되며 독자는 ’피어나는‘ 그 실체와 동일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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