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1) 유리의 감정 - 선안영

이광 승인 2021.12.29 08:42 | 최종 수정 2021.12.31 23:07 의견 0

유리의 감정
                       
선안영

 

부서질 운명 혹은 유리遊離의 다른 이름

더러운 지문들이, 덧나는 상처들이

거대한
그리운 망치에
산산이 부서지고픈

 

선안영 시인의 <유리의 감정>을 읽는다.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유리는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한다. 자칫 잘못하면 부서질 원초적 불안이 내재되어 있고, 때론 벽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외부와의 유리遊離 즉, 단절을 꾀한다. 그러나 유리의 단절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외부의 접촉에 속수무책이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투명하게 마음을 닦는 도중 어느새 오염이 되고, 외부에서 던진 말 한 마디에 금이 가며 상처가 덧나기도 한다.

경계 또는 벽으로서의 유리는 외부에 대한 갈등이 계속 쌓이며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이른다. 마침내 시인은 망치의 출현을 기다린다. ‘거대한’이라면 자기보다 큰, 믿고 의지할 만한 손길이다. 또 ‘그리운’이라면 그 손길을 이전에 경험한 적이 있음을 말해준다. 어쩌면 지고 지선한 영향력의 세례를 받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지 모른다. ‘산산이 부서지고픈’ 고통이 수반되는 현실 타개와 자기갱신의 의지가 유리를 통하여 진솔하게 토로되고 있다.

초장에서 열고 중장에서 펼친 다음 종장에서 맺는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실행한 작품이다. 종장 전구를 행갈이 하여 형용사의 중첩을 피한 셈이 되고, 망치의 존재를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작품을 음미하는 동안 한 해를 보내며 묵은 감정의 유리는 부수고, 새해엔 새 유리로 갈아 끼우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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