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 홍시 - 이남순

이광 승인 2021.11.17 02:19 | 최종 수정 2021.11.19 19:11 의견 0

홍시
                   이남순

 

눈 감아야 보이는 사람
어둠 속에 동그란 사람

달빛 자락 흔들리는 파도 같은 생가지에

볼 한 번 부비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그 사람

 

이남순 시인의 <홍시>를 읽는다. 초장에 언급된 사람은 화자를 떠난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진 않다. 만날 수 없지만 눈을 감으면 언제든 동그랗게 떠오르는 사람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연이 있듯 우리 마음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엔 허공이 있다. 심연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묻어두는 곳이라면 허공은 꿈꾸는 곳이요, 그리움을 띄워 보내는 곳이다. 이 밤 그리운 그 얼굴은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처럼 허공에 떠 있다.

홍시 하면 생각나는 나훈아 노래와 같이 이 작품 또한 사모곡인 듯하다. 화자가 눈 감고 만나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라면 아마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한 연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따질 새도 없이 독자는 종장에서 그만 화자의 감정에 휘말리고 만다. 누구나 과거 누군가에게 좀 더 애정을 쏟아주지 못했던 일이 미련으로 남을 수 있다. 그게 후회가 되어 기억 속에서 종종 소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초장이 기본 음수율에서 한 자씩 더 있지만 음보로 볼 땐 아주 자연스럽다. 초장과 종장은 전구와 후구를 행갈이 하여 호흡을 가다듬게 도와준다. 중장의 ‘달빛자락 흔들리는 파도 같은 생가지’는 어둠 속 마음의 허공이 접선하는 지점으로 삶의 곡절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중장을 한 행으로 처리하여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한 다음 종장에서 여운을 안겨주는 시인의 배려를 엿본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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