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54) - 부처님을 믿지 중놈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지 목사를 믿지 말라 (더 나아가 하느님을 믿지 예수를 믿지 말라)  

허섭 승인 2021.12.19 17:10 | 최종 수정 2021.12.24 16:40 의견 0
354 진사증(陳師曾 1876~1923) 장유이(牆有耳-벽에도 귀가 있다) 28.6+36.4 북경풍속(北京風俗) 중에서 중국미술관
진사증(陳師曾, 1876~1923) - 장유이(牆有耳-벽에도 귀가 있다)

354 - 부처님을 믿지 중놈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지 목사를 믿지 말라 (더 나아가 하느님을 믿지 예수를 믿지 말라)  

음탕한 여자가 극단에 이르면 여승이 되고
명리에 매달리는 사람도 과격해지면 불문(佛門)에 들어가니

깨끗해야 할 불문이 음란(淫亂)과 사악(邪惡)의 소굴이 됨이 이와 같도다.

  • 淫奔之婦(음분지부) : 음탕한 여자. 奔婦는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고 남자에게 달아난 여자라는 뜻으로, ‘바람난 여인’ 을 가리키는 말이다. 
  • 矯(교) : 극단으로 치달음.  矯는 원래 ‘뒤틀린 화살을 바로잡는 것’ 을 뜻하는 글자이나, ‘속이다, 핑계 대다 / 힘쓰다, 용감하다, 굳세다’ 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돌함’ 을 의미한다. * 한편 矯를 ‘속여 가장(假裝)하는 것’ 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상당한 일리가 있다.
  • 尼(니) : 여승, 비구니.
  • 熱中之人(열중지인) : 일에 열중하는 사람. 여기서는 명리(名利)에 매달리는 사람을 뜻한다.
  • 激(격) : 과격해짐.
  • 入道(입도) : 불문(佛門)에 들어감.
  • 淸淨之門(청정지문) : 신성한 불문(佛門).
  • 婬邪(음사) : 음란(淫亂)하고 사악(邪惡)함.  婬은 淫과 통함.
  • 淵藪(연수) : 무리들이 모여드는 소굴(巢窟).  淵은 물고기가 모여드는 연못, 藪는 새나 짐승들이 모여드는 늪이나 수풀.

※ 어조사 也(야)의 쓰임
일반적으로 也는 서술형 종결사로 쓰이나, 여기서는 앞에 나온 말 전체를 명사형(명사절)로 만들어 주는 파생접사로 쓰인 것이다. 우리말로 치면 ‘ ~함, ~하는 것’ 에 해당한다.

※ 내 자신이 구도자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먼 후일 나도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처럼『채근담』을 주체적으로 재편집할 기회가 있다면 본장은 아마 빼버릴 것이다. 사실 유학자(儒學者)인 필자의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이 장의 내용은 심히 편견(偏見)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말인즉 옳다. 사랑이든 출세든, 세속적인 욕망이 맹렬(猛烈)할수록 그 실패와 좌절의 충격 또한 클 것이고 이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의 허무를 절감(切感)하고 불문(佛門)에 들어서는 이가 오죽 많았겠는가? 옛날이나 오늘이나 불가(佛家)에는 수준 이하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리들이 많다. 그것은 제도적인 문제로 승려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정비되어 있지 못하고 그 과정 또한 느슨한 것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불교의 인연법(因緣法)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기구한 연유로 몸을 숨기거나 의탁(依託)해야 할 생명들을 불문(佛門)은 그 어떤 사연에도 불문(不問)하고 다 품어주질 않았던가. 

종교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을 우리는 성직자(聖職者)라 칭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직자와 구도자(求道者)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직자는 직업인일 뿐이다. 다만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종교에 종사하기에 좀 그 차원이 다를 뿐, 실은 가장 전문적인 직업인이다. 성직자를 두고 당신은 구도자가 아니라고 하면 당사자는 무척 화를 내겠지만, 이미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한 오늘의 종교인들이 구도자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밥벌이를 위해 성직자가 된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개신교의 목사보다는 가톨릭의 신부나 수녀, 불교의 스님들이 훨씬 더 구도자로 살아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우선 그들은 출가자로서 속세의 인간관계를 넘어선 자들이기에 개인적인 욕망으로부터 상당 부분 초연(超然)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하여 인간적인 욕망과 번뇌가 없겠는가?  

나는 평소 지인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부처님을 믿지 중을 믿지 말며 하느님을 믿지 목사를 믿지 말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부처님의 법을 믿지 부처를 믿지 말며 하느님을 믿지 예수를 믿지 말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항시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 이유는 오직 우리 안에 부처님(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함이요, 예수만이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독생자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스스로 알고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삶이며, 이 지극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 예수!’ 하는 것이라고 … (부처님께서는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나를 믿지 말고 법을 믿어라’ 라고 당부하셨다.)

많은 이들이 돼먹잖은 목사나 시답잖은 중을 두고 비난하고 분개할 적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왜 그들한테만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시오? 그게 싫으면 당신이 그렇게 사시오.” 

- 내 자신이 구도자이면 굳이 성직자를 두고 비난할 일은 없을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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