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밥통

                           김종호

 

 

아랫목
이불속에
호강하는 밥공기를

단숨에 
쫒아버린 
당돌한 밥통 혁명

말하는 
밥통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다


김종호 시인의 <보온밥통>을 읽는다. 잠깐사이 반세기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초장의 ‘아랫목/이불 속에’ 식지 않게 넣어둔 밥공기는 1970년대 이전의 생활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 따뜻한 저녁밥 한 끼는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호강이었다. 반대로 타관을 타거나 조직 내에서 가족적인 배려를 받지 못하는 처지를 두고 찬밥신세란 말도 생겼을 것이다.

중장에서 언급되는 ‘밥통 혁명’ 앞에 시선이 멎는다. 보온밥통은 혁명이라 일컬을 만큼 핵가족 확산과 함께 새로운 생활상을 열어가는 큰 역할을 했다. 전기를 이용한 신식 밥통의 등장은 정성으로 지켜낸 온기를 편리한 기술에 맡기게 함으로써 기술이 정성을 대신하는 변화의 시대를 이끌었다.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따랐지만 밥통의 진화는 가속화되어 혁명을 일으킨 보온밥통의 시대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소위 압력밥솥이 출현하고 말하는 기능까지 갖춘 제품이 나오자 급기야 ‘설자리를 잃’고 만다.

해고의 위험이 적은 안정된 직장을 철밥통이라 하듯 밥통은 일자리의 의미도 가진다. 그러므로 밥통 혁명은 중의성을 띄며 농업사회에서 산업화로, 나아가 정보화 사회로 탈바꿈하는 오늘날의 노동현실도 비추고 있다. 첨단산업을 상징하는 ‘말하는/밥통’은 종전의 밥통들을 일시에 구식으로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도 새롭게 변신하지 않으면 보온밥통처럼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