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 장편소설】 「팽이의 시간」(1) - 제1장 격랑의 시대

1. 격랑의 시대

이광 승인 2023.04.03 15:09 | 최종 수정 2023.06.14 15:36 의견 0

1                                       

부산발 경부선 열차였다.

아이는 차창으로 몸을 비스듬히 틀고, 낙동강 하류의 물줄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옆에 앉은 연분홍빛 한복 차림의 아주머니 또한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간간이 아이의 표정을 살피려 했지만 아이는 짧게 자른 머리의 뒤통수만 보여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아이의 책가방이 서로 밀착되지 않도록 가로막고 있었다. 마침 광주리에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담은 판매원이 그들의 객차로 들어섰다.

“오징어, 땅콩. 삶은 계란 있어요, 삶은 계란.”
“인호야, 삶은 계란 사주까? 저 봐라, 과자도 있데이.”

열 살가량인 아이의 이름은 인호였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호의 어깨를 왼손으로 감싸며 차창 쪽에서 고개를 돌리도록 유도했다. 판매원이 그들 앞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그녀는 나긋나긋한 말씨로 아이를 부추겼다.

“뭐 물 꺼고? 아저씨 기다리는데 얼른 골라보거래이. 이모는 삶은 계란 할란다.”

그녀는 세 개씩 넣어 묶은 삶은 계란 꾸러미를 꺼내놓은 다음 카라멜과 드롭프스 사탕을 번갈아들고 인호의 선택을 종용했다. 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살래살래 고개를 젓고는 좀 전의 자세로 되돌아가버렸다. 그녀는 삶은 계란만 한 꾸러미 샀다. 그리고 계란 하나를 집어 껍질을 깐 다음 소금 싸둔 종이를 펴 소금을 살짝 묻히고는 인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인호가 돌아보자 그의 입술 앞에 계란을 바짝 갖다 대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계란은 이모의 입으로 들어갔고 남은 두 개는 그녀의 핸드백이 차지했다.

밖은 어느새 강의 풍경이 걷히었다. 기차가 밀양역에 닿을 때쯤 인호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들었다. 인호의 잠든 자세를 보다 편안하게 고쳐주면서 이모는 애틋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핸드백을 열고 작은 지갑을 꺼냈다. 은단만한 크기의 구슬이 빽빽이 박혀 있는 동그란 지갑에서 묵주가 나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묵주를 쥐고 입술만 조금씩 움직이며 소리 없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그들의 목적지인 대구역에 가까워질 때까지 그녀는 기도했고 인호는 잠들어 있었다.

인호는 지난밤 가족 품을 벗어나 이모가 사는 대구로 떠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소리의 세계가 예정되어 있음을 상상도 못 한 채 잠 속에 잠겨들었다. 지금껏 또래들 사이에서 뭔가를 먼저 본 쪽이 외치는 ‘찍’ 하는 소리를 위해 집중하던 날들이 있었다면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는 ‘아멘’이란 소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찍’은 지상에서 자기가 발견한 것을 제 것이라고 외부에 선언하는 소리였고, ‘아멘’은 영적 존재인 자신을 자각하고 내면으로부터 고백하는 소리였다.

 

2

이정식은 휴전회담이 거론 중이던 1951년 여름에 입대하여 군수사령부 소속 수송부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가끔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경험담 중 하나가 일등병 시절 선임 운전병에게 단 하루 만에 운전을 배워 그 다음날 바로 트럭을 몰았다는 사실이었다. 주특기가 운전병이 아니라 군의 정식 운전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 제대할 때까지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운전 직종으로 진로를 잡으려고 면허를 득할 계획을 세우다가 군 상관의 주선으로 취직이 되었다. 부산항 부두에서 화물을 검수하는 회사였다. 맡은 일을 철저히 처리하는 신중함과 부지런함은 직장에서 곧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어떻게 하면 물려받은 재산 한 푼 없는 처지로 자수성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가지고 있던 것을 송두리째 잃고 지냈다. 부산은 피난민들이 지은 판잣집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대개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였다. 거리에는 거지와 부랑아들의 동냥 행렬이 눈에 띄지 않는 날이 없었다. 팔이나 다리 한 쪽을 잃은 상이용사들도 해진 군복을 걸치고 돌아다녔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조국을 위해 피 흘린 대가를 구걸해야 했다.

검수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정식은 직장 동료인 남덕희를 만났고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첫 살림은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영주동 산동네에 차렸다. 그들 사이에 인호가 태어났고 세 살 터울로 동생 준호가 태어났다. 두 아들을 둔 이정식은 그간 모은 돈으로 전세집이지만 대신동에서도 평지에 속하는 동네로 집을 옮겼다. 실은 대구에 사는 처형이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까지 얻었으니 신세를 크게 진 셈이었다. 그는 김해의 공병학교에서 흘러나와 화물차로 개조된 스리쿼터를 인수했다. 소달구지나 지게꾼들이 소화물을 맡아 품삯을 버는 데 비해 스리쿼터 한 대만 굴려도 당당한 화물운송 사업이었다. 꾸준히 잘 나갈 것만 같았던 이정식의 사업은 5.16 혁명군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그만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혁명군 헌병대에서 불법 개조된 군용차 압수 조치가 있었고 이정식은 차주로서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정식이 직접 군부대와 개입한 정황이 없음을 확인한 헌병 조사반은 그를 풀어주었다. 자신을 무죄로 방면해준 이상 이정식은 차량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이틀간 부대 앞에서 기다린 끝에 그를 조사한 헌병 하사관과 대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에게 차가 없으면 생계가 곤란한 처지를 하소연하며 선처해달라고 매달렸다. 상대는 시큰둥하게 듣고 있더니 피곤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아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찬물을 끼얹었다.

“이봐요, 이게 억지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감방에 처넣어줘? 그냥 내보내준 거 천만다행이다 생각하고, 조용히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응!”
“이왕 봐주시는 거 차까지 돌려주시믄 은혜는 평생 잊지......”

이정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헌병의 입에서 한층 고조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거 영 말귀를 못 알아듣네. 썩 꺼지라고, 확 잡아 처넣기 전에!”

헌병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이정식을 쏘아붙였다. 이정식은 눈물이 핑 돌았다. 소중한 생계수단을 잃었다는 생각과 함께 동년배에게서 받는 굴욕에 울컥 설움이 치민 것이었다. 상대의 눈에 어린 물기를 보자 헌병은 마치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투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충고 하나 하겠는데 말이야, 앞으론 면허 없이 차 몰 생각은 안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그날 이후 이정식은 분을 못 이기고 사흘 내내 술에 젖어 지냈다. 그리고 벽에다 대고 욕설을 뇌까렸다. 

“그래, 니 잘났다. 개노무 새끼.”

수입이 끊기자 모아둔 돈이 없는 집안 형편은 얼마 못 가 짜부라졌다. 이정식은 살던 집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구덕산 저수지 오르는 길가의 판잣집으로 집을 옮겼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엔 양초를 켜야 했다. 이사한 뒤로 일자리가 쉬 나타나지 않자 그는 기가 한풀 더 꺾인 얼굴이 되어 백주에 나다니길 꺼렸다. 그만큼 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때였지만 면허 없이 취직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전에 일한 회사를 통해 부두 하역현장의 검수원 자리도 알아보았지만 그를 받아줄 여지는 없었다. 살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그를 억눌렀다.

 

이사한 후 옆집 아저씨가 엿장수임을 안 인호는 엿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뜻이 통하는 이웃 아이들이랑 동전이나 빈병을 주우러 다녔다. 하루는 재건시장 쪽을 훑었고 그 다음날은 공설운동장과 전차 종점 부근의 길바닥을 샅샅이 훑었다. 허탕 치기 일쑤였지만 왕복하면 제법 먼 길을 두 눈을 번득이며 비질하듯 쓸고 지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가다가 떨어져 있는 동전을 제일 먼저 발견하곤 “찍!”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손으로 그것을 가리켰을 때 온몸에 이는 전율은 참으로 짜릿한 것이었다. “찍!”하는 외침과 동시에 동전은 제 것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조금씩 엿을 떼어주며 대장 행세를 하는 일도 꽤나 달콤한 맛이 있었다. 

이사한 지 달포가 지나 인호의 이모가 대구에서 오기로 했다. 인호 아버지 이정식은 두부공장에 자리가 나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두부를 만들고 나면 자전거에 실어 식당이나 반찬가게로 배달하는 일도 맡아 했다. 날마다 비지는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판잣집을 벗어날 대책은 될 수 없었다. 인호 어머니 남덕희는 양장점을 차릴 마음을 굳히고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예전 언니와 함께 생활할 때 재봉틀을 익혀 옷을 만들어본 경험이 적지 않았다. 언니가 양재학원에서 배운 재단과 봉제 기술을 꼼꼼히 전수해준 덕에 옷을 제법 맵시 나게 지을 줄 알았다. 그 솜씨가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꼭 해봤으면 하고 속에 품어둔 일이기도 했다. 인호의 이모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동생을 돕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이광 시인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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