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 장편소설】 「팽이의 시간」(2) - 제1장 격랑의 시대

이광 승인 2023.04.06 16:30 | 최종 수정 2023.04.12 17:47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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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의 이모 남경숙은 해방이 되던 해 최우진이란 청년 사업가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함께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다. 최우진은 대구가 고향인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삼남이녀의 자식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떴다.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몸져누워 있는 모습뿐이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가난했지만 오순도순 살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동안, 아버지가 없는 살림은 점점 기울어만 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이별이 잇따랐다. 먼저 큰형이 살길을 찾아 북간도로 떠났고 뒤따라 큰누나가 한입 덜기 위해 출가를 했다. 한 해가 흐르고 난 뒤 작은형이 떠나고 또 이듬해엔 작은누나마저 시집을 갔다. 최우진은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다. 종종 집 떠난 형제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자리 잡히면 어머니를 모시러 오겠다던 큰형은 소식이 없었고, 작은형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은누나 내외도 뒤따라 만주로 떠났는데 자형의 독립군 활동 관련 첩보를 받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가 사돈댁을 쥐 잡듯이 뒤지고 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지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이 깊어짐을 알고도 혼자 남은 자식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종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최우진은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냈는데 그때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최우진은 재당숙이 다리를 놓아 부산에 있는 음료공장을 찾아갔다. 사이다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로 일본인 사장이 경영하고 있었다. 사장은 공장 한편에 붙어 있는 사무실 내에 잠자리를 마련하여 그를 거기서 기거하도록 했다. 사장은 조선인이라면 일단은 업신여기고 보는 여느 일본인들과는 달랐다. 그는 나이든 조선인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와 가까운 조선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친절한 태도가 몸에 배 있는 사람이었다. 최우진은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는 동안 외롭지 않았다. 성실성과 함께 기술자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은 그는 입사 칠년 만에 공장장이란 중책을 맡았다. 창업 초기부터 사장이 공장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자신을 대신할 만한 인물로 그를 신임한 것이었다. 대부분 여성인 공장 직원들도 젊지만 유능하고 도량을 갖춘 최우진을 지지해주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항복했다.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나라를 되찾은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다. 최우진 역시 공장 사람들과 어깨춤을 추며 만세를 불렀다. 그날 사장은 서울 출장 중이었다. 다음날 늦은 시간에야 꺼칠한 얼굴을 하고 공장에 나타난 사장은 최우진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 내 일본군이 철수하자 사장은 일본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공장과 함께 그와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은 최우진에게 관리를 일임했다. 이는 추후 적산가옥 불하와 관련하여 최우진에게 연고권이 되어주었다. 떠나는 날 사장은 공장 직원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언젠가는 이곳 또한 본래 있던 자리처럼 돌아올 날이 있을 거라고 했다. 제 2의 고향인 정든 부산을 떠나야 하는 감회에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최우진 또한 눈물을 글썽이며 그가 돌아올 때까지 공장을 잘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우진은 집을 떠난 형제들을 떠올렸다. 그들도 해방된 조국을 찾아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가슴속에 꼭 움켜쥐었다. 사장이 떠난 다음날 최우진은 그가 물려주고 간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맨 처음 부산땅을 밟았을 때완 너무나 달라진 자신의 위치가 실감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에 처한 사이다 공장을 잘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만큼은 굳게 다잡고 있었다. 사장이 남긴 집은 완전 빈집은 아니었다. 거기엔 사장 식구들 뒷바라지하던 가정부 처녀가 거주하고 있었다. 최우진과도 여러 번 보아온 사이였다. 둘을 부부로 맺어주려는 사장 내외의 의도를 서로가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사귀진 않았지만 상대를 운명의 짝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절반이상 해둔 셈이었다. 그 가정부가 바로 인호의 이모 남경숙이었다.

남경숙은 김해 진영의 본가에서 이팔청춘의 나이에 부산으로 나왔다. 양재학원을 다니기 위해서였다. 딸이 남다른 바느질 솜씨를 보이기도 했지만 시골 처녀들이 정신대에 끌려가는 불상사를 염려한 부모의 뜻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경숙에게 양재를 가르친 일본인 여선생은 재봉틀에 능숙해진 그녀가 요리에도 소질이 있음을 알고 마침 좋은 자리가 있다며 소개해준 곳이 바로 사이다 공장 사장 집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사장 가족의 전속 재단사 노릇도 무난히 수행했다.

최우진과 남경숙은 인사를 나누며 지내온 사이였으나 막상 한 집에서 살게 되자 오히려 서먹해졌다. 두 사람은 서로 조심스러운 경계를 넘지 못하고 각자의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첫날 저녁 최우진은 그의 음식만 식탁 위에 차린 남경숙에게 식사를 같이하자고 권했다. 결국 같이 식탁에 앉았지만 둘 다 말없이 밥그릇을 비우기만 했다. 최우진은 쌍방이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덮어둔 채 질질 끌어선 안 될 일이라 판단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일을 일찍 마치고 들어온 최우진은 아직 저녁 준비 전인 남경숙의 방문을 두드렸다.

“예, 사장님.” 

화장대 앞에서 머리 손질 중이던 남경숙은 뜻밖의 노크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서둘러 매무새를 가다듬고 숨결을 고른 다음 문을 열었다. 최우진은 문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자리에서 두 손을 깍지 끼고 공손히 서 있었다. 최우진이 망설이자 남경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필요한 기 있는가예?”
“경숙씨. 술 한잔 하고 싶은데요.”
“아, 예. 준비하겠심더.”

경숙이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최우진은 서둘러 뒷말을 꺼냈다.

“잠깐만요. 오늘은 집에서 말고,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자는 겁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며 최우진은 마른 침을 삼키고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좀 전에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지요? 저는 말입니다, 경숙씨 마음이 필요합니다. 제 마음을 드릴 테니 경숙씨 마음 저한테....... 주세요.”

최우진의 말이 떨어지자 경숙은 내쉬어야 할 숨마저 삼키고 온몸이 뻣뻣해졌다. 최우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눈에 넣고 싶어도 이미 내리깐 시선을 다시 들어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일이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고대하고 있었던 일이 아니던가. 벅차오르는 가슴! 황홀한 두근거림을 경숙은 숨을 천천히 내쉬며 진정시켰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최우진을 바라보았을 때 그 역시 쑥스러움을 가까스로 이겨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침내 경숙 또한 생긋이 웃는 낯을 보였다. 두 사람은 시내로 나가 저녁을 함께했다. 경숙은 맥주라는 술을 난생처음 맛보았다. 하얗게 일어나는 거품으로 채워지는 잔은 그녀의 설레는 마음까지 넘칠 듯 담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이다 공장은 해방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 넘기고 꾸준히 번창했다. 경숙은 나중에 커서 인호의 어머니가 될 동생 덕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덕희는 여덟 살 터울로 그녀가 어릴 때 어머니를 대신해 업고 키운지라 동기간 이상으로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를 마친 덕희를 여고에 진학시키기 위해 친정에서 불러낸 것이었다. 

가족이 그리웠던 최우진은 그녀 못지않게 어린 처제를 반가워했다. 김해 진영의 처가에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엔 명절 때마다 찾아갔고 장인 장모의 생신날도 빠뜨리지 않았다. 처가를 다녀오면 목말랐던 부모의 정을 가슴에 촉촉이 채워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틈틈이 대구의 수성동 옛집도 찾았다. 혹 형님들이 들르지 않았는지 알아보았고, 출가한 누나들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언젠가는 나타날 형제들을 위해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사과밭도 사두었다. 사과 과수원을 갖고 싶어 하던 큰형의 너털웃음이 눈앞에 삼삼했다.

수성동 옛집은 안채의 구조는 그대로 살리고 새로이 단장했다. 문간방과 헛간, 소가 없어진 지 오래된 외양간은 허물고 부엌이 딸린 바깥채를 만들어 세를 놓았다. 안채는 형제들이 오면 언제든지 지낼 수 있도록 비워두었다. 쇠문을 달기 위해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대문 기둥 한쪽엔 세든 사람의 문패를 걸게 하고 다른 한쪽에는 그의 문패를 걸었다. 집수리를 끝내놓고 그는 아내와 함께 둘러보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집을 찾아갈 때 동네 어귀에서부터 안겨드는 귀가의 정감이란 참으로 훈훈했다.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예전엔 모두가 있었던 곳, 가족과의 추억이 실바람처럼 속삭이고 있는 집이었다.

“여보. 지금 부산의 우리 집은 말이오, 당신이랑 살면서 정이야 들었지만, 내 집이란 애착은 크게 없는 거 같아. 내가 잠시 맡아 사는 집이란 생각도 들고. 여기 이 집이 내 맘속에 있기 때문일 거요. 그래, 바로 여기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우리 집이야, 우리 집.”

최우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의 얼굴을 온화한 눈빛으로 감싸주었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남경숙의 친정집에도 끔찍한 비극을 몰고 왔다. 북한군이 연일 남진해 오는 동안 각 지역 비상시국대책위원회와 군 특무대가 합동으로 보도연맹 검속을 단행했다. 전시의 긴박감 속에서 하달된 요주의 인물 처형명령은 무고한 민간인마저 적으로 처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많은 마을사람들이 희생당했으며 그 속엔 남경숙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낙동강 전선의 대반격으로 전쟁의 주도권이 아군으로 넘어왔을 때까지도 그 사실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무렵 여상 2학년 가을 학기 중인 덕희가 학교에서 진영 등지의 양민학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와 언니에게 그 무서운 소문을 전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들 자매가 친정을 찾았을 땐 주인 잃은 집은 폐가로 변해 있었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망연하던 자매는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부모의 시신을 찾으려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허탈의 수렁으로 빠져들 따름이었다. 경숙에겐 남동생인 덕희의 오빠마저 사라져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불편한 몸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농사일을 돕던 효심이 지극한 청년이었다. 최우진은 자신이 처가 식구들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그리 즐기지 않던 술을 취하도록 들이켰다. 술 탓인지 평소 가끔씩 하던 잔기침도 잦아져 약을 한 제 지어먹기까지 했다. 예전 장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의 뇌리에 맴돌았다.

 

해방 후 맞는 첫 3.1운동 기념행사였다고 했다. 당시 진영지역에선 좌, 우익 세력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경숙의 아버지는 가까운 진영중학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이는 민족주의 세력이 주축인 좌익에서 주관한 것이었다. 그 이후 경숙 아버지는 젊은 우익 진영에서 자신을 좌익으로 점찍어 두었다는 걸 눈치로 알고 있었다. 그는 어느 쪽에도 뜻을 두진 않았지만 심정적으로는 좌측이었다. 그것은 단지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벗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추석 명절을 맞아 딸과 함께 온 사위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건넸다.

“최서방, 자네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편 가르는 일에 나서지 말게. 이쪽저쪽 다 아이믄 회색분자라꼬 트집 잡을지 모르지만 우야겠노, 그런 덴 관심 없다꼬 뒤로 빠지는 수밖에. 정, 한 쪽을 잡아야 할 입장이라믄 표 안 나게 발만 살짝 들여놓게나. 별 수 있나, 눈치껏 살아야지. 참말로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이데이. 서로가 힘을 합쳐도 할 일이 태산인데 둘로 딱 쪼개져 있으이......”

지루했던 휴전협상이 맺어지고 전쟁은 끝이 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 아니 쉬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수많은 패자를 남긴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끌어안고 다시 살기 위한 각자의 생존 전쟁이 시작되었다. 부산역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피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향이 이북이거나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애면글면 터를 잡은 부산에 눌러앉았다. 

경숙은 부모를 잃은 슬픔을 딛고 성당에 나가기로 했다. 양재를 함께 배웠던 친구로부터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찾아간 성당에서 경숙은 자신을 부르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렸다. 한편 덕희는 여고를 졸업하고 항만화물 검수회사에 취직했다. 첫 월급을 받고 그 기쁨을 전할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지만 자상한 형부와 언니가 있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첫 월급을 쪼개 형부의 머플러와 언니의 브로치를 샀다. 누군가에게 건넬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녀의 발걸음은 모처럼 신이 나 사뿐거렸다. 

한편 성당에 나가면서 평온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 우진은 그도 함께 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행은 자꾸 미루어졌다. 그가 망설인 이유는 아버지의 지병을 자신이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폐병으로 자리보전했을 당시 병이 옮을까봐 가족의 접근이 금지됐었다. 음식과 탕약을 올리는 어머니만 잠깐씩 출입하곤 했다. 사실 우진은 그런 연유로 아내와의 접촉을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피해왔다. 잔기침이 잦았지만 다행히 결핵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안 경숙은 남편이 혼자서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당신 건강 문젠데 지하고 의논했어야지예.”

우진은 아내의 표정을 읽으며 그녀의 섭섭함을 지워주려고 애썼다.

“미안하오. 어쩌다 보니 그리 됐구려. 앞으론 무슨 일이든 상의할 테니깐 이해해 주구려. 가만있자, 해당화 열매 좀 구할 수 있을까?”
“해당화 열매를예?”
“음. 그게 천식에 좋다고 하데. 어머니가 천식이 심해 도라지하고 해당화 열매를 달여 드셨지. 나는 아마 아버지보다 어머니 쪽을 택했나보오. 아궁이 앞에서 불 땔 때마다 기침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셨지. 그래서 그 일을 내가 맡아 했잖소. 근데 나 역시 불을 땔 땐 기침이 절로 나오더군.”

우진은 옛 생각에 빠져든 듯 눈길을 허공에 두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경숙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기침을 말끔하게 고쳐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녀는 도라지와 해당화 열매를 구해 남편이 물처럼 마시도록 달였다. 우진의 기침은 더 나빠지지도 않고 잘 낫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진 본인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경숙이 보기엔 남편이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 같았다.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도 아닌데 입맛을 잃곤 하는 게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사내라면 어느 정도 아랫배가 나와야 풍채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더구나 명색이 사장인데 뱃살이 너무 없어도 볼품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보신엔 뭐니 뭐니 해도 뱀이 최고라는 소리에 경숙은 뱀탕을 한 달 내내 끓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진이 경숙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여보, 우리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소.”
“우리 공장을예?”
“그래 말이요. 우리가 내놓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공장을 할 사람 같아. 사이다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니깐.”
“당신 생각은 어때예?”
“글쎄. 내가 요즘 자주 피곤하고 일을 해도 의욕이 전 같지가 않아서...... 당신이 잘 챙겨주는데도 말이오. 그래서 당신이 찬성한다면 이번 기회에 공장을 넘기고 대구로 돌아가면 어떨까 싶소. 좀 쉬었다가 나중에 거기서 공장을 새로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고.”
“당신 뜻이 글타믄 저도 찬성이지예. 당신 말대로 우선은 좀 쉬면서 기운을 차리는 게 좋을 거 같네예.” 

꾸준히 복용하는 보약에도 불구하고 한 번 꺾인 남편의 기력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경숙은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면 점차 원기를 되찾으리라 기대했다. 동생 덕희는 직장 생활에 충실하고 있었고 회사 근처에 방을 얻을 뜻을 먼저 꺼내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 내외의 부산 생활 정리는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대구 수성동 옛집으로 돌아온 우진은 처음 며칠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재당숙을 비롯해 일가친척들을 찾아 인사 올리고 부모의 산소엔 뗏장을 다시 입혔다. 그를 아는 동네 어른들도 빠짐없이 찾아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병이 깊어 부산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좍 퍼졌다. 고향에서 남편의 회복을 기대했던 경숙은 오히려 더욱 빠르게 악화되는 그의 건강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진은 두통이 심해 꼼꼼히 읽던 신문도 보는 둥 마는 둥 했고, 기침 끝에 객혈이 따랐다.

경숙은 의사로부터 남편이 폐암이며 말기 증상을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작정으로 용하다는 곳은 다 찾아가 갖은 처방을 받아왔다. 우진은 그런 아내의 괜한 수고를 덜어줄 때가 왔음을 감지했다.

“당신, 정말 지극 정성이오. 허나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거 같으이. 인명은 재천이라잖소.”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예.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다 아입니꺼.”

우진은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였다가 서서히 경숙을 바라보았다.

“간밤에 어머니 꿈을 꾸었소. 많이 아프면 데리러 올 테니 안심하란 말 해주러 왔다 하시지 뭐요. 꿈인데도 생생합디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 계신 데가 저 어딘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 근데 참, 당신 대구 온 뒤론 왜 성당에 나가지 않는 거요?”

당신과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경숙은 그만 촉촉해지는 눈시울을 보이고 말았다.

우진은 대구에 돌아와 맞는 첫 겨울을 끝내 나지 못했다. 그를 산에 묻고 내려오는 길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은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서러움도 쌓이다 보면 저리 흰 빛일 것 같았다. 차갑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눈처럼 서러움도 서러움이 더 이상 서럽지 않도록 덮어주고 있었다. 결혼생활 십년, 한동안 친정에 닥친 비극을 견뎌내야 했던 시기 말고는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한 가지 그들 사이에 자식이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바람에 서로를 더 애틋이 여기고 지냈다. 이제 그 행복했던 시간 또한 하얀 수의를 입고 고요한 작별에 임하고 있었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갔다. 산정에 쌓인 눈도 녹아내리고 경숙의 눈물자국도 지워졌다. 예전 부모를 잃고 한 맺힌 심사를 다스리려 찾았던 성당을, 이번엔 남편을 보낸 막막함을 달래려 찾아갔다. 그리고 봄이 왔다. 홀로 맞이하는 봄이었지만 경숙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녀는 하느님의 딸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동생 덕희가 찾아왔다. 형부의 장례를 치를 땐 혼자 왔었지만 이번엔 동행이 있었다. 덕희가 다니는 직장의 동료로 그녀가 장래를 걸고 사귀는 사람이라 했다. 적당히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는 경숙 앞에 서자마자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첨 뵙겠슴다. 이정식이라 합니더”

인상도 괜찮았고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경숙은 인척에게 갖는 친밀감을 보이며 이정식을 맞았다. 의지할 친정이 없는 덕희한테 든든한 배필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사람을 위해 미리 끊어온 쇠고기로 불고기를 만들어 대접했다. 덕희에게 듣기론 이정식도 혈혈단신이었다. 양산 정관 출신인 그는 큰집에서 뼈가 굵었다. 아버지는 그가 철이 들 무렵 행방불명이 됐다고 했다. 장돌림하며 인삼과 약재를 팔았는데 보름을 주기로 집을 오가던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큰아버지는 장터를 찾아다니며 행방을 쫒았지만 마지막 행적을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평소 즐기던 술이 화근이 되었을 거란 추측만 딸려왔다. 그해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소식이 없자 모두들 객사했다고 믿는 눈치였다. 이는 다 팔자 센 여자가 집안에 들어온 탓이란 이야기가 마을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그의 어머니는 청상의 번뇌를 끊기 위해 어린 아들을 큰집에 맡기고 여승이 되었다. 

이정식과 남덕희는 사귀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가족사를 알고 더욱 가까워졌다. 그는 외로운 사람끼리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말자며 청혼을 했고, 덕희는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 하는가 여기며 그를 자신의 남자로 받아들였다. 이정식은 눈빛으로 덕희의 그런 마음을 읽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입을 맞추었다. 덕희는 순식간에 뺨에 와 닿는 이정식의 숨결을 뿌리치지 못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뜨거워지는 첫 키스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고 유일한 혈육인 남경숙과의 상견례를 위해 대구로 온 것이었다. 

덕희는 경숙에게 형부도 없는 대구 살림은 접고 이제 그만 부산으로 돌아가자고 떠보았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언니의 의중을 살폈지만 조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경숙 역시 하나뿐인 동생 덕희가 있는 부산에서 살 생각을 어찌 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남편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다. 최우진은 언젠가는 형제들 중 누군가는 집으로 찾아오리라 믿고 살았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도 그 믿음을 변함없이 경숙이 이어가주길 바랐다. 덕희는 언니의 그러한 마음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정식과 덕희를 보내놓고, 경숙은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에 최우진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덕희를 친동기처럼 아껴주었던 그였기에 동서 될 사람을 만나 동생 하나 얻은 듯 반가워했으리라. 떠난 사람이 그리운 만큼 그녀는 허전한 외로움에 젖어들었다. 원초적 외로움은 신앙생활로 이겨내고 있었지만 일상의 외로움 앞에 간간이 적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광 시인

◇ 이광 시인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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