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 융합학과의 첫 강의에서 마주한 학생들의 표정은 생각 이상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나마 물리학과와 물리교육과 학생들은 어렵더라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였지만 물리학을 단지 다양한 이학 과목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공학계열 학생들은 물리학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리학은 첨단 과학기술의 근간이며 우주와 자연의 기본 원리를 다룬다는 내 말이 그들에겐 그저 고리타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 이야기 정도로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이 문제는 구조적으로 학생들 잘못만은 아니다. 많은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물리를 제대로 배워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학, 생물, 지구과학 과목과 비교해 노력에 비해 좋은 수능점수를 보장해 주지도 않고, 정답 시비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물리 과목은 철없는 호기심을 회유시키기에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입시라는 목표만을 생각한다면 물리 과목을 우회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이렇게 기초물리를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 이공계열에 입학하면 일반물리학 강의자는 신입생들의 급격한 기초학력 저하를 체감하게 된다. 물론 학생이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부족한 기초지식을 보충하며 교과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공계열 학생들이 수강해야 할 많은 과목 중에서 유독 힘이 드는 일반물리학을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학생들은 물리학이 이공계열 전공지식에 도움을 준다는 조언에 별로 공감하지도 않는다. 물리를 잘 몰라도 첨단 이공분야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실용적인 공학지식과 첨단 장비를 체험하는 과정에 난해한 개념과 복잡한 수식 유도로 가득한 물리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할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다양한 인문/예술 분야의 지식이 철학이라는 사유의 뿌리와 연결되듯 다양한 이공학 지식도 결국은 물리학의 근본 원리와 만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물리학은 첨단 연구분야의 주제들과 동떨어진 고리타분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야별 과학기술 연구가 심화되어 갈수록 복잡한 현상 속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과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혁신적 발상은 대부분 물리학적 사유의 기초 근육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나노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물리학’과 다른 이공학 분야 사이의 경계도 없다. 물리학은 수학을 사용하고, 화학은 물리학을 사용하고, 생물학은 화학을 사용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다.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물리학과 화학의 경계는 오래전에 허물어져 버렸고, 다양한 기초과학과 공학기술이 총동원되어 원자나 분자를 제어하는 기술은 이제 생명과학과 의료 분야를 향하고 있다. 수학과 물리학이 싫어서 생명과학 분야를 선택했다면 오산이다. 혁신적 생명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뒤늦게 물리학 책을 펼쳐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과학 선진국 생명과학분야 학생들은 이미 심화 수준의 물리학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목으로 수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으로 요약되는 눈부신 융합기술로 가득할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특정 전문지식에만 치중하는 것보다 기초과학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은 물리학의 인프라를 늘리고 학부 물리학 전공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국 수석이 물리학과에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뉴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물리학과 이름을 찾기 어려운 대학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은 신비스러운 섬이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 위에서 홀로 떠 있으면서 그 섬의 주변은 수학이라는 낯선 언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라틴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었던 중세의 성서처럼 물리학은 수학이라는 언어적 장벽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물리학자들이 과학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참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은 여전히 그 어휘와 표현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전공자들의 관점에서는 과학대중강연 발표자의 워딩 속에 숨겨진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만 물리학이라는 섬에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이들에게는 항상 딱딱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미쉘 세르’는 ‘번역’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이질적인 두 분야 사이의 진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상호 번역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일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익숙한 표현이지만 다른 분야의 이들에게는 어휘와 표현이 모두 생경하게 느껴지므로 해당 분야에 적합한 어휘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질적인 두 분야 간 소통의 상징으로 남성과 여성이 혼재하는 ‘헤르메스’나 중성의 ‘천사’라는 상징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과학의 섬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를 ‘번역’하거나 꿈을 꾸듯 그곳에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종종 ‘이알못’이나 ‘문알못’이라는 말로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확인하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과학자인 경우는 없다. 인간의 본성은 오히려 인문학에 가깝다. 하지만 인문학 지식도 과학 지식처럼 수고와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인문학 지식 없이 인간적 본성만 지닌 경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언어를 배우기 전에 몸으로 오감을 느끼며 다양한 욕망과 감정이 생겨나는 유아기를 거쳐 어른이 되었다. 그러므로 감성은 이성보다 원형적이고 보다 직관적이다.
하지만, 감각과 감성을 타고난 인간에게 물리학적 사유는 지극히 불편하다. 욕망과 감정을 거세하고 세상을 오로지 물질 덩어리로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은 심지어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리학을 설파하는 물리학자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관점에 익숙해졌을까? 사실 물리학자들도 물리를 처음 배울 때는 상식과 다른 낯선 내용에 대해 감성적 대립을 경험했다. 정돈된 과학 원리가 말하는 충격적인 세계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로워한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이들 역시 올챙이 시절 경험한 인간적 괴리감을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신비스럽고 낯선 과학 지식을 전하며 대중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세상에서 과학으로 개종한 바로 그 순간의 경험에 대해 간증하는 과학자는 없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과학 지식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핵심을 겉도는 산만한 질문과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상상들이 난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화, 종교, 문학, 예술이라는 인간적 상상을 지나 상식과 어긋나는 결론으로 도약하는 긴 방황의 여정이 바로 과학의 역사다. 물이 수증기가 되기 전에는 외부에서 열을 공급해도 한동안은 아무런 온도변화가 없는 구간이 존재한다. 비록 온도계의 눈금 변화는 없지만, 액체와 기체가 뒤섞인 과도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증기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사유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감성과 논리가 이질적으로 뒤섞인 단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색다른 과학 읽기를 통해 과학 지식의 필요성과 차별성을 더 제대로 알 수 있게 되거나 기존 과학에서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글들은 이런 교육적 동기에서 시작된 일종의 다양한 실험적 습작들이다. Part-I <낯선 언어>에서는 ‘수포자’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가 지닌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다루면서 수학은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 조급함과 점수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이고 회화적인 속성을 지닌 하나의 낯선 언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Part-II <고전물리>에서는 입자의 힘과 운동, 소리와 빛의 파동, 전기/자기 현상을 다룬다. 상식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익숙한 물리 현상들을 다루는 고전물리는 가급적 물리 이론에 대한 설명보다 물리적 현상에 문학적 감성을 투사하려 했다. 이런 접근은 물리학 지식에 대해 기존 방식의 설명이 지녔던 딱딱함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는 교육적 효과와 함께 문학이나 예술의 관점에서 물리 이론을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하는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Part-III <현대물리>에서 다루는 상대성이론, 통계역학, 양자물리는 비전공자들에게 낯설고 어려운 개념과 과학 지식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많아 글의 호흡이 길고 난이도가 높다. 하지만 인간이 감지하기 어렵거나 일상의 상식과 상충하는 현대물리의 내용들은 사실상 현대철학자나 예술가들의 고민과도 연결된다.
다가올 시대에는 과학기술과 인문/예술의 경계에서 다양한 연결망이 맺어지거나 새로운 개체화가 진행될 것이다. 아마도 물리학은 그 중심부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선택적 전공지식이 아니라 교양 지식이 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동화책이 되겠지만 이 책 속의 시와 그림이 제공하는 다양한 은유를 통해 어렵고 딱딱해 보였던 물리학에 조금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앞으로 《인저리타임》을 통해 연재될 글들은 제한된 분량으로 책에 모두 담지 못한 글의 동기와 자세한 해설을 덧붙일 예정이다.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안해 주신 조송현 대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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