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그 힘에 이끌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다가가게 된다. ‘Attractive’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잡아당기는’ 물리적 인력을 표현할 수도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처럼, 지구는 질량을 가진 모든 것들을 잡아당긴다. 힘의 속성이 다르지만 음(-)과 양(+)의 전하 사이에도 전기적 인력이 작용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력과 전기력이 힘을 전달하는 방식은 좀 신기하다. 대체로 힘에 대한 감각 경험은 접촉을 통해 이뤄진다. 길을 막아서는 누군가에 부딪치거나 옷자락이 당겨지던 불쾌한 힘은 항상 몸 어딘가에 닿아 전달된다. 하지만 중력과 전기력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로질러 작용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긴 팔을 뻗어 멱살을 잡아서 끄는 것처럼, 아주 먼 곳까지도 집요하게 작용한다. 그 보이지 않는 힘으로 지구는 40만km나 떨어진 달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지구 역시 1억5000만km 떨어진 태양에 붙들려 46억 년의 긴 시간 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 힘의 경험은 마음속에서 어떤 풍경을 만들어 낼까? 물리학자들은 '힘'의 배후에 잠재적(potential) 에너지의 풍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감각적이고 경험적이라면 에너지는 개념적이고 추상적이다. 여전히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태양과 지구, 지구와 달,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의 빈 공간을 산이나 계곡을 닮은 잠재적 에너지의 높고 낮음의 풍경이 채우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포텐셜(potential)’이라는 용어를 ‘위치’라는 단어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포텐셜 에너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즉, 특정 위치는 운동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포텐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 잠재성은 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사과의 수직 위치는 운동의 변화를 일으킬 잠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잠재성은 사과를 받치고 있는 손의 견고한 뼈와 살에 의해 유보되고 있다. 하지만 손을 치우는 즉시 ‘포텐셜 에너지’는 중력의 당김으로 드러나고 사과는 바닥을 향해 가속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힘에 이끌려 위치가 바뀌면 ‘일(Work)’을 한 것으로 취급한다. 마치 현장에 투입한 자본이 기계적 노동을 실행시키는 것처럼 사과의 낙하는 포텐셜 에너지가 일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반대로, 사과를 높은 곳에 위치시키는 것은 노동에 의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처럼 포텐셜 에너지의 값을 높인다. 번지점프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일 이 필요하다. 일은 포텐셜 에너지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힘에 의해 위치가 이동하는 일(Work)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도와 가속도 같은 운동의 구체적 상태가 내포되어 있다. 높은 곳에 정지한 물체의 ‘포텐셜 에너지’가 힘으로 발현되어 운동이 유발되므로 ‘운동 에너지(Kinetic energy)’도 정의할 수 있다. 결국, 사과의 낙하는 포텐셜 에너지가 일을 통해 운동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이다. 또한, 포텐셜 에너지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가령, 세상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포텐셜 에너지=0’의 지면에 있어도 성취해야 할 목표가 생기는 순간 포텐셜 에너지의 산이 생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열등감은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깊은 계곡으로 만든다. 매력적인 대상을 향한 끌림은 아찔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미움과 배척으로 가득한 상대를 향하는 길은 험준한 절벽 오르기가 된다.
칠흑 같은 밤, 경사진 언덕과 산등성이를 더듬어 내려온 경험은 머릿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시각 장애인들처럼 바닥의 좌표 점을 일일이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산비탈을 걸어본 사람들은 미세한 힘의 변화를 고스란히 기억한다. 비록 산의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위치마다 다른 힘을 유발시킨 가파름의 풍경을 상상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힘은 포텐셜 에너지의 가파름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산과 계곡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 경우, z축을 대체하고 있는 포텐셜 에너지 산의 높이는 z방향의 운동과는 무관하다. (x,y)의 좌표 값을 지니는 포텐셜 에너지는 평면의 지도 위에서 등고선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등고선의 간격으로 가늠되는 가파름은 동서남북의 각으로 표현되는 2차원적 힘을 제공한다. 야간 산행의 경험은 2차원 세상을 살아가는 개미의 머릿속과 비슷한 풍경을 제공한다.
허공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3차원적 바람과 지구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하는 새는 공간에 대해 어떤 풍경을 지니고 있을까? 앞서 설명한 지도의 경우, (x,y)라는 2차원적 위치에 따른 높이를 이해하기 위해 3차원적 풍경을 상상해야 했다. 하지만 새처럼 3차원적 (x,y,z) 좌표값에 따라 달라지는 ‘포텐셜 에너지’를 이해하려면 4차원적 풍경을 상상해야 한다. 매 순간 3차원을 살아가는 인간은 4차원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신 공간 속 지점마다 ‘포텐셜 에너지’의 다름을 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포텐셜 에너지가 큰 지점은 붉은색, 낮은 지점은 파란색, 그 중간값은 초록색으로 표현하자. 이제, 공간을 채운 색채의 변화를 통해 3차원적 힘을 가늠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구석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불꽃이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은 허공 속에서 주황과 노랑의 연기처럼 번져나가다 초록을 거쳐 차가운 그녀의 주변에서 파랑과 보라로 뒤바뀐다. 만약 공간 속 각 지점에 표시된 색깔이 열이라는 물리량이라면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공간 속 열 분포에 대한 다채로운 색깔 풍경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열의 단위 역시 에너지다. 따라서 색채의 변화에 해당하는 열의 가파름은 화살로 표현되는 3차원의 힘이 된다. 그 힘을 면적으로 나눈 것이 압력이고 그 압력으로 허공에서 바람이 분다.
가슴 속 작은 심지에 켜진 불꽃 한 송이
무지개 향기로 허공을 가득 채워
어느새 너를 향한 바람이 분다.
이 문장은 지극히 물리적이다.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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