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우연히 식당에서 이쑤시개 한 통을 쏟은 적이 있다. 입에 쓰이는 것들이 바닥에 떨어졌으니 모두 쓸모없게 된 셈이었다. 허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바닥을 나뒹구는 이쑤시개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면서 유난히 짧아 보이는 이쑤시개의 모습이 마치 한 생의 시작과 끝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이쑤시개들이 제각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쑤시개가 바닥에 떨어지며 선택한 특별한 방향은 일평생 한 방향만을 바라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곳을 향한 굳은 신념일 수도 있지만, 아무런 방향 없이 살아가다 불현듯 죽음의 문턱에서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쑤시개가 마지막 순간에 향하는 방향은 정말 완전한 우연일까?”
이쑤시개를 바라보며 번져나간 이 쓸데없이 진지한 생각은 갑자기 낙하 순간 ‘선택’과 ‘우연’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선택의 기회가 과연 모든 방향에 대해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실험을 했다. 식당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를 주워 담은 후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이쑤시개를 던졌다. 나침반 방향을 기준으로 각도기를 이용해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가 향하는 각도를 일일이 측정해 공책에 적었다. 충분한 우연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쑤시개들은 가급적 높이 던졌다. 만약 처음에 이쑤시개를 던지는 조건을 매번 똑같이 통제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방향을 향하게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쑤시개를 던지는 나의 손, 내 손을 제어하는 나의 마음, 손을 벗어난 이쑤시개가 허공으로 솟구쳐 바닥으로 떨어지는 여러 단계의 과정에 제어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므로 이 모든 것을 그저 ‘우연’ 속에 모두 묻어 두기로 했다.
비록 ‘우연’과 관련되어 있지만 모든 방향에 대해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작위로 던진 이쑤시개의 방향은 원의 모습을 닮은 분포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원의 분포를 확인하려면 아주 많은 각을 수집해야 하므로 데이터수집의 현실성을 고려해 360도를 30도씩 나눈 12각형으로 분석했다. 예를 들어 0도에서 30도 사이의 방향은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결국 이쑤시개 던지기 실험은 열두 개의 이쑤시개를 던지는 것을 하나의 세트로, 세트 마다의 결과를 누적해 ‘평균분포’를 구하는 것이었다.
처음 몇 회의 세트 동안은 기괴한 모양의 분포가 만들어졌다. 찌그러진 별은 다음 세트에서 찌그러졌던 부분이 펴지고, 반대편 모서리가 다시 찌그러졌다. 변해가는 분포의 모습이 느리게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회수가 제법 많아지자 꿈틀거림이 줄어들며 점차 대칭적인 윤곽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순간 원을 닮은 예쁜 12각형의 모습이 등장했다. 뻔한 결과지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이라도 충분히 많이 경험하고 나면 궁극의 이상적 모습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 옛날 도형으로 표현되었던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의 진리가 현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결정되는 방향에 아무런 특별함이 없다는 결과가 왠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세월이 지나 대학에 입학한 후, 통계물리학 전공 책 속에서 이쑤시개를 다시 만났다. 교과서에서 묘사된 내용은 양끝이 N극과 S극의 서로 다른 자성을 지닌 작은 바늘의 방향에 대한 통계적 해석이었다. 이쑤시개 던지기처럼 공간에 특별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외부 자기장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 보이지 않는 자기장은 바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이쑤시개 던지기 같은 실험을 하려면 바늘의 질량을 극복할 만큼 큰 자기장이 필요하므로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실험은 아니다. 그래서 나침반을 이용한 실험을 생각해 냈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다. 그래서 나침반 속에 떠 있는 자석 바늘은 항상 북극을 향하려 한다. 나침반의 작은 공간 속에도 한 곳을 향하게 하려는 보이지 않은 힘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침반을 바닥에 두기 전에 심하게 흔들어 보면 어떨까? 나침반 바늘에 자유의지를 닮은 내적 운동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침반의 요동이 많을수록 북극을 향하려는 의지는 더 많은 교란을 받는 셈이다. 이제 카메라로 요동치는 나침반의 한순간을 찍어보자. 사진 속 나침반 바늘은 바닥에 놓이는 순간 북쪽을 향할 수도 있지만, 내적 요동으로 인해 그 정반대를 향하거나 동쪽이나 서쪽을 향할 수도 있다.
아주 많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모아보면 나침반의 자유의지와 지구 자기장이라는 거대한 의지 사이에서 자유와 순종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우연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누적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나침반 바늘이 향하는 분포 도형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하지만 방향에 대한 ‘누적평균분포’를 도형화한 모습은 원이 아니라 북쪽으로 치우친 타원을 보여 준다. 나침반을 흔든 후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더 늘리면 심하게 찌그러진 모습을 보여 준다. 비록 하나의 나침반 바늘 속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요동이 존재하지만, 지구의 의지는 수많은 우연을 지나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나침반 바늘에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힘을 닮은 특별한 방향이 존재할까? 치열하게 살아가는 매 순간에는 그 힘과 방향을 알기에 마음 속이 너무 요란하다. 나름 선택한 몇 개의 방향들은 모두 지독하게도 운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누적평균분포’를 구하듯 수많은 시행착오의 기억을 차분하게 돌이켜 보자. 어쩌면 오랫동안 자신을 일관되게 이끌고 있었던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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