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8) 연날리기

김광석 승인 2022.01.19 17:04 | 최종 수정 2022.01.24 11:32 의견 0

하루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연을 만들어 왔다. 오징어 같은 몸통에 알록달록한 문양의 꼬리를 달아 색칠을 하는 미술 시간 작품이었지만, 아이는 연을 만들 때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가슴이 설렜던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자신이 만든 연을 날려 보자고 했다. 어설픈 모양이지만 기본 뼈대는 다 있어서 주말에 학교 운동장에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람의 도움 없이 연을 날리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달리기로 연이 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딸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쉬지 않고 달렸지만, 연은 계속해서 아이의 머리 위만 맴돌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차를 몰고 곧장 송정 바다로 향했다.

연줄은 어떻게 이런 특이한 곡선을 유지할까? 연은 떠나보낼 수 없는 기억처럼 실을 통해 아이와 연결되어 있을까?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모래사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 힘들게 뛰었던 탓인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고마웠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부터 파란 허공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주말 아침 우리의 힘든 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듯 느껴졌다. 문득 딸아이의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이를 실컷 안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가신 두 분은 손녀가 연을 날리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다 강력한 입김을 불어 넣으신 것일까? 아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했다.

줄을 풀자 연은 그동안 본성을 숨겨왔던 한 마리 용처럼 꿈틀거리며 하늘 위로 날아 올라갔다. 파란 하늘 속으로 아득하게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다 하늘이 바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파도처럼 거친 바람의 물살 속에서 기운 센 참치 한 마리와 외줄낚시로 씨름하는 어부가 되었다. 연은 자꾸만 달아나려 했지만, 우리는 결코 움켜쥔 연줄을 놓지 않았다. 아이가 지닌 할아버지에 대한 흐릿한 기억도 그렇게 날아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과 실을 추락시키려는 중력에 맞서기 위해 연은 하늘 위로 솟구치는 상승력과 바람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평 방향의 당김력이 필요하다. 공기역학은 연의 몸통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화살을 상상하라 말한다.
연과 실을 추락시키려는 중력에 맞서기 위해 연은 하늘 위로 솟구치는 상승력과 바람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평 방향의 당김력이 필요하다. 공기역학은 연의 몸통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화살을 상상하라 말한다.

줄을 모두 풀어 아이에게 맡긴 후에야 나는 비로소 연줄의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연줄은 분명 연과 끊어질 듯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지만 휘어진 곡선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은 후 집에 돌아와 연줄의 곡선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봤다. 독특한 연줄의 모양은 여러 종류의 힘들이 서로 균형을 이뤄 만들어진다. 우선 실과 연을 땅으로 당기는 중력이 있다. 연과 실을 추락시키려는 중력에 맞서기 위해 연은 하늘 위로 솟구치는 상승력과 바람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평 방향의 힘이 필요하다. 공기역학은 연의 몸통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속의 무수히 많은 화살을 상상하라고 말한다. 바람이 지나온 공간의 모든 점은 빠름의 크기와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들로 채워져 있고, 각각의 화살들을 연결하면 곧거나 굽은 긴 면발의 유선이 된다.

연의 몸통이 바람의 화살을 막는 경우, 바람은 우회로를 찾는데 그 결과 연의 뒷부분에는 흐름의 유선이 상대적으로 성기게 된다. 따라서 연의 앞뒤 공간을 채운 유선의 차이가 힘을 만들어 낸다. 즉, 실은 연 몸통의 중심에서 약간 위쪽으로 묶기 때문에 연은 항상 바람에 대해 비스듬한 각도를 유지한다. 그 결과 비스듬하게 누운 연의 몸통 뒤편의 부족한 유선을 보충하기 위해 당기는 힘이 발생한다. 그 힘의 수직 방향은 연을 상승시키고, 수평 방향은 연을 바람이 향하는 방향으로 당긴다. 한 마디로 연과 연줄에는 바람과 중력이 만드는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의 다양한 힘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현수선은 포물선과 다른 모습의 곡선을 지니고 있다.
현수선은 포물선과 다른 모습의 곡선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계산을 해 보니 연줄의 모양은 현수교에 늘어진 실과 같은 종류의 현수선이었다. 하나로 연결된 실의 양 끝을 잡고 늘어뜨려 만들어지는 이 곡선은 경상도 사람들이 유독 발음을 잘하는 

합친 모습이고 상수 a를 조절해 곡선의 가파름을 조절할 수 있다. 2차 함수 근의 공식을 외우던 포물선과 비교해 봐도 확연히 다르다. 포물선은 중력에 맞선 점의 운동이 남긴 궤적이다. 처음 지녔던 수직 방향의 속력이 고갈되며 중력에 맞서 날아간 저항의 흔적이다. 반면, 현수선은 양 끝만을 고정한 채 허공 속에 몸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놓은 순종의 결과다. 즉, 연줄은 고정된 연의 몸통과 연을 날리는 아이의 손끝을 연결한 사이에서 가는 몸을 중력에 내맡겨 만들어진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딸아이가 그때 봤던 연줄의 모양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 그림을 그려줬다. 구름 속 할아버지의 입김 같은 바람, 비스듬한 연의 몸통, 날개짓하며 연을 당기는 천사, 연과 연줄에 매달려 지상으로 연을 떨어뜨리려는 작은 악마. 그런데 딸아이는 그림을 보고 알겠다고 했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일까? 과학의 언어와 대비되는 신화적 상상은 열등한 것일까? 반대로 아이는 신화 같은 그림에 공감한 뒤 합리적 질문을 멈춰 버렸다. 과학적 지식과 신화적 상상은 서로의 앎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일까? 과학의 언어와 대비되는 신화적 상상은 열등한 것일까? 반대로 아이는 신화 같은 그림에 공감한 뒤 합리적 질문을 멈춰 버렸다. 과학적 지식과 신화적 상상은 서로의 앎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정말 알겠니?”
“응.”

그 순간 나는 알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공감을 납득으로 취급하며 질문을 멈추는 것이 아는 것일까? 만약 수천 년 전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그려주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일상의 모든 자연현상 속에서 신을 만났던 그들처럼 나도 처음에는 바닷가에서 날아오르는 연줄과 바람을 느끼며 신을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현상을 분석하는 사이 어느덧 딸아이에게 그려준 그림 속 신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물리 지식으로 이 현상을 제대로 아는 걸까?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 가치 없는 것일까? 과학적 지식과 대비되는 신화적 상상은 열등한 것일까? 반대로 아이는 신화 같은 그림에 공감한 뒤 합리적 질문을 멈춰 버렸다. 과학적 지식과 신화적 상상은 서로의 앎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과학을 좋아했지만 편향된 합리주의 방식이 아니라 과학 지식을 감성적 시 속에 녹이려 했던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시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를 읽고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능하다면 동심으로 돌아가 하늘 바닷속으로 연도 날려 보자.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벅차요. 예나 지금이나
벌고 쓰는 일에 헛되게 힘을 탕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도 보지 못하고
심금마저 버린 이 남루한 혜택
바다는 달을 향해 젖가슴을 드러내고
온종일 울부짖을 바람도
잠든 꽃처럼 지금 함께 모였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과 어긋나 있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신이여! 차라리
낡아빠진 믿음의 젖을 먹고 자라는 이단이 되렵니다
그래서 드넓은 땅의 기꺼운 경치를 바라보며
아마도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바다에서 솟아나는 프로테우스를 보거나
트리톤의 조가비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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