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4) 소용돌이 손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물리 동화', 『감성물리』 출간 이어 본지 연재
"물리를 동화나 감성 가득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다."
책에 담지 못한 자세한 해설 곁들여 인터넷 독자와 소통 의지

김광석 승인 2022.03.12 10:29 | 최종 수정 2022.03.13 11:13 의견 0

힌두교나 동남아 불상들은 여러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천수관음보살’도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보고 돕기 위해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힌두교나 불교 문화권 국가에는 이런 이미지를 춤으로 표현한 전통무용도 존재한다. 즉,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팔을 등에 부착하거나 한 사람 뒤에 여러 명이 줄을 지어 천 개의 손을 묘사한다. 이 동작은 K-POP 아이돌 가수들의 군무에도 활용된다. 아는 게 물리밖에 없어서 이런 춤 동작을 보다가 문득 전기장이 떠올랐다. 양(+)의 전하가 보이지 않는 전기의 화살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을 여러 방향으로 천 개의 팔을 뻗은 신의 이미지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천 개의 손과 눈을 지닌 신의 손길처럼 양의 전하는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기의 팔을 뻗는다.
천 개의 손과 눈을 지닌 신의 손길처럼 양의 전하는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기의 팔을 뻗는다.

신의 전기적 손길에 영향을 받으려면 질량(mass)이 아닌 전하(electric charge)가 필요하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전하’에 대응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믿음’, ‘선함’, ‘진리’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신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처럼 거대한 질량을 지니고도 전하를 지니지 못하면 전기의 힘을 느낄 수 없다. 1억5000만 km 떨어진 곳에 있는 태양이 지구를 놓아 주지 않는 중력도 놀랍기는 하지만, 전기력에 비하면 중력은 무시할 만큼 약하다. 가령, 전자 한 알이 만들어 내는 전기장은 중력장에 비해 무려 10⁴²배 강력하다. 내 몸이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질 수는 있지만, 중력이 내 몸을 찌그러지게 하지는 못하는 이유와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땅의 흔들림에도 내 몸을 구성하는 조직, 세포, 분자, 원자의 알갱이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는 이유가 모두 궁극적으로는 전기력에 있다.

사실 모든 물체에는 ‘전하’가 있다. 원자핵 속에는 양전하를 지닌 양성자가 있고, 전자는 음전하를 지니고 있다. 비록 전체적으로는 양과 음의 전하가 상쇄되어 전기적으로 중성일지라도 수많은 원자로 구성된 물질은 전기의 손길에 크고 작은 나름의 반응을 한다. 예를 들어 원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전자(free electron)’는 전기장의 손길에 온몸이 이끌려 ‘전류’라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반면 ‘구속전자(bound electron)’는 진동이나 회전의 형태로 꿈틀거린다. 비록 양이온에 붙들려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지만 ‘구속전자’도 방향을 끊임없이 바꾸며 용수철처럼 꿈틀거린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은 신의 존재를 느끼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천 개의 손 중의 하나가 머리가 아닌 가슴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그 순간처럼 전기장도 ‘전하’를 지닌 입자에 멀리서 힘을 가한다.

전하를 지닌 관측자가 속도를 지니면 전기장(E)뿐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자기장(B)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전하를 지닌 관측자가 속도를 지니면 전기장(E)뿐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자기장(B)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멈춰 선 채 신의 손길을 정적으로 느끼기다가 특정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이 상황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전기의 화살을 뿜어내고 있는 양(+)전하에 대해 ‘전하’를 지닌 관측자가 상대 속도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물론, 달리는 관찰자는 여전히 전기의 화살 혹은 전기장(E)의 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정지해 있었던 경우와 다른 새로운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즉, 전기장과 속성이 다른 자기장(magnetic field)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이 자기장(B)의 화살은 신의 주변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양(+)과 음(-)전하 사이의 공간에 형성된 전기장과 비슷한 모습처럼 자석도 N극과 S극에서 각각 뿜어내고 흡입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N극끼리는 밀고 N과 S극이 당기는 모습을 보면 전기력을 유발하는 양(+)과 음(-)전하가 별개로 존재하듯 자기력도 N과 S에 해당하는 자석 입자가 따로 존재할 것 같다. 그래서 나침반을 반으로 자르면 빨갛게 칠해진 N극 부분과 파란 S극 부분을 분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하나의 자석을 반으로 자르면 여전히 N극과 S극을 지닌 두 개의 자석이 될 뿐 N극과 S극을 분리할 수 없다.

자기쌍극자인 자석은 전기쌍극자를 닮은 역선을 만들어 내지만 N과 S극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자기쌍극자인 자석은 전기쌍극자를 닮은 역선을 만들어 내지만 N과 S극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자석이 없더라도 전류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서도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나침반을 이용해보면 전선을 중심으로 자기장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오른손 엄지를 전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두면 나머지 네 손가락을 감싸는 방향이 자기장 소용돌이의 방향이다. 전선에는 아주 많은 수의 전자가 이동하고 있지만 단 한 알의 전자가 이동해도 ‘전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장은 전하를 지닌 입자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를테면 멈춰 선 신은 천 개의 전기장 손만을 뻗어 내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진행 방향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의 손을 추가로 만든다. 만약 정지한 관측자의 머리와 발끝이 N극과 S극의 자석이라면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의 방향으로 몸이 이끌릴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만약 직선 방향으로 달려가는 신과 동일한 속도로 달린다면 나에게 신은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의 손은 사라진다. 즉, 신은 나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나에게 자기장의 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자기장의 손길은 신과 나 둘 중 하나가 움직일 때 생기는 셈이다. 종교인들도 정지한 상태보다 신에게 다가서거나 멀어지는 과정에서 낯선 힘을 느꼈다고 말한다. 어쩌면 신도 전기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기력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위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일까?

(위) 한 알의 양(+)전하가 움직이는 경우, 정지한 관측자는 전기장(E)과 자기장(B)의 소용돌이 손을 경험하게 된다. (아래) 움직이는 전하와 똑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은 사라지고 전기장만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제3의 정지한 관측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을 경험하게 된다.
(위) 한 알의 양(+)전하가 움직이는 경우, 정지한 관측자는 전기장(E)과 자기장(B)의 소용돌이 손을 경험하게 된다. (아래) 움직이는 전하와 똑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은 사라지고 전기장만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제3의 정지한 관측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자기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장이 전하의 상대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전자기학을 운동 역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움직이는 좌표계의 공간과 시간이 정지한 것에 비해 달라진다는 상대성이론의 핵심적인 모티브는 힘과 운동을 다루는 고전역학과 전기와 자기 현상을 기술하는 전자기학과의 결합에 있었다. 대부분 분야가 그렇듯 진정한 융합은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창조다. 실제, 특수상대성이론을 사용하면 움직이는 전하가 만드는 전기장 화살들의 모습과 소용돌이치는 자기장 화살의 풍경을 계산해 낼 수 있다.

결국 자기장의 소용돌이는 상대운동으로 찌그러진 시공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자기장의 소용돌이 모습은 물살의 소용돌이를 떠올리게 한다. 유체역학의 소용돌이(vortex)는 물리적으로 혼돈(chaos) 현상과 관련이 있는데 어려운 수학 개념으로는 위상적 속박(topological constraint)이나 대칭성 깨짐(symmetry break)과 관련이 있다. 아주 최근에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모습을 유체역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다. 몇 년 전 미국-일본 공동연구로 진행된 이론 물리 연구팀은 이상적 유체(Ideal fluid) 모형과 특수상대론적 시공간 효과를 접목해 소용돌이 자기장의 발생 원인을 일반화할 수 있는 색다른 모형을 제시했다. 그들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공간에 대한 특수상대론적 효과가 수학적 위상 구속을 깨트리고, 그 결과가 씨앗이 되어 점차 자기장 소용돌이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조금 비슷한 것 같다. 그 존재가 신이 아니더라도 진리, 영감, 행복, 사랑, 보람, 삶의 가치 같은 것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덤덤하게 바라보는 정적인 방식보다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순간, 마치 자기장의 소용돌이 손처럼 예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낯선 모습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삶이 공허하게 느껴져 홀로 집을 떠난 여행에서도 소용돌이 손과 같은 낯선 존재를 경험할 수 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국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을 흔드는 공간과 시간은 오직 나만을 위해 변형된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들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음의 세상도 어딘가 상대론적 전자기현상을 닮았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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