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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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14:17 | 최종 수정 2022.03.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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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동양 문화권의 신화는 창조와 파괴의 신, 빛과 어둠의 신, 양과 음처럼 대립적인 두 존재를 통해 우주 창조를 묘사한다. 대립된 두 존재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둘을 단지 속성이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물질적 대상을 다루는 물리학에서도 전기력의 양(+)과 음(-)의 전하, 자기력의 N극과 S극이라는 대립적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극성이 다른 두 개체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짝을 이루어 쌍극자(dipole)라 불리는 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막대자석 처럼 양끝에 N극과 S극이라는 두 개(di)의 극(pole)이 적당히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는 자기 쌍극자(magnetic dipole)라 하고, 양(+)과 음(- )의 전하 중심이 떨어져 있는 구조는 전기 쌍극자(electric dipole)라고 한다.
쌍극자는 미시세계의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형성된다. 양자역학적으로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핵 주변의 전자는 그 위치와 속력을 둘 다 파악하기 어려워 구름 같은 가능성의 확률밀도분포로 표시한다. 전자는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지만, 특정 범위의 확률밀도가 짙다면 그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좀 더 크다. 양(+)의 핵과 음(-) 전자의 확률 밀도분포의 전하 중심 위치가 동일한 경우에는 전기 쌍극자가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구름처럼 퍼져있는 음(-) 전하의 중심이 양(+) 전하를 띈 핵과 떨어진 위치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전기장이 가해지면 양(+)과 음(-)전하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지만 동시에 양과 음이 서로 인력에 의해 붙들리게 된다. 둘은 반대 방향으로 떨어뜨리려는 힘과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위치에서 안정을 찾는다. 결국, 이 두 힘이 평형을 유지한 결과로 두 전하 중심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전기 쌍극자가 유도될 수 있다.
혹은 물분자처럼 구조적으로 양(+) 전하와 음(-) 전하의 중심 위치가 다른 경우도 있다. 분자의 경우 두 원자들이 공유하는 구름 같은 전자의 확률밀도 비율이 다르면 두 원자들도 각각 양( +)과 음(-)의 극성을 지닌 이온이 된다. 만약 양(+) 전하를 띈 이온과 음(-) 전하를 띈 이온이 떨어진 채로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이들은 분자 단위의 전기 쌍극자가 된다. 양(+) 전하는 전기력선을 뿜어내는 반면 음(-) 전하는 그 주변으로 역선들을 수렴시킨다. 이렇게 속성이 다른 양(+)과 음(-) 전하들이 아주 조금 떨어진 채로 짝을 이루고 있으면 독특한 모양의 전기력선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자기 쌍극자는 조금 어렵다. 고전 전자기학 이론에서는 N극과 S극이 양(+)극과 음(-)극처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반면 자기장은 전하의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직선운동뿐만 아니라 회전운동도 자기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것처럼 전자가 양의 핵 주변을 돌아도 자기장이 생긴다. 또한 크기를 지닌 전하덩어리가 자전을 해도 자기장이 생긴다. 즉, 아주 작은 양이지만 유한한 전하량을 지닌 전자가 지구처럼 자신의 몸통을 회전시키는 자전을 할 경우 전자는 작은 막대자석 같은 자기 쌍극자가 된다. 대신 미시세계 속 전자가 운동하는 모습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 윤곽이 공, 타원 등의 다양한 형태를 지닐 수 있는데 자기 쌍극자의 세기는 구름 같은 전자의 확률적 윤곽에 의해 정해진다. 결국 전기 쌍극자와 자기 쌍극자 모두 확률적 전자구름의 모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쌍극자는 화살 기호로 단순화해서 표현할 수 있다. 전기 쌍극자는 화살의 꼬리가 음(-) 전하에서 양(+) 전하로 향한다. 양(+) 전하와 음(-)전하가 떨어진 거리가 멀거나 전하량의 절대치가 클수록 전기 쌍극자의 세기도 증가한다. 자기 쌍극자의 화살 기호는 막대자석처럼 화살 꼬리의 S극에서 화살 머리의 N극으로 향하고 있다. 자기 쌍극자를 유발하는 회전 전하량이 크거나 회전속력이 빠르거나 혹은 팔을 옆으로 뻗어 회전하는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회전 반경이 큰 부분이 많을수록 자기 쌍극자의 세기는 커진다. 비록 힘의 속성이 다르지만 전기 쌍극자와 자기 쌍극자는 화살이라는 단순화된 기호로 표기되고 그들이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역선 또한 닮아 있다.
물질 속에는 극성이 다른 두 개가 새로운 하나가 된 전기 쌍극자와 자기 쌍극자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물질 속 수많은 전기·자기 쌍극자들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눕고 일어서는 길가의 억새풀처럼 전기장과 자기장 바람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순응하듯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는 쌍극자들도 있지만 내적 자유로움이 남아 있는 쌍극자들은 바람의 방향과 어긋나는 곳을 향하기도 한다. 이렇게 외력과 개인의 자유가 차이를 가지는 것처럼 쌍극자들은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 주변을 회전하거나 요동치는 모습을 보인다. 불어오는 외부 전기장이나 자기장에 대한 다수의 전기 쌍극자와 자기 쌍극자의 이런 몸짓의 평균은 각각 상유전성(paraelectricity)과 상자성(paramagnetism)이라는 거시적 전기 특성과 자기특성을 만들어 낸다.
마음속 생각에도 종종 대립된 두 개의 극이 존재한다. 속에서 밖으로 뿜어내듯 세상을 향해 드러내려는 성향과 그와 반대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드는 성향이 공존한다. 만약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대립된 속성이 ‘쌍극자’라는 하나의 구조로 존재한다면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 마음속 쌍극자 화살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유행의 바람에 휘둘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정렬되기도 하고 때론 조금 어긋난 각도를 유지한 채 요동치기도 한다. 혹은 꼿꼿이 정반대의 방향을 유지하는 보수성을 보이기도 한다. 특정 방향으로 쏠리는 생각을 ‘편견’ 혹은 편향되었다(polarized)고 표현하듯 외부의 전기장에 대한 다양한 전기 쌍극자화살의 합을 분극(polarization)이라고 한다. 만약 모든 개인이 만장일치의 단합된 의견을 보인다면 분극(P)은 최대가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쌍극자의 합은 자성(magnetization)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분극(P)과 자성(M)을 정치와 문화에 대한 집단의 편향성 척도에 비유한다면 시대의 바람같은 외부 전기장은 세상이 지닌 ‘분극(P)’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실증적 물질만을 추구했던 문화의 자성(M)이 비물질적 가치라는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변화의 이면에는 외부 자기장 같은 새로운 흐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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