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5) 도메인과 화가 이 배

김광석 승인 2022.03.19 14:02 | 최종 수정 2022.03.28 12:06 의견 0

재불(在佛) 화가 ‘이 배’의 전시회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숯을 이용해 먹처럼 선과 점의 형상을 그리기도 하지만 숯의 조각들로 평면이나 입체 구조물을 만들기도 한다. 여러 작품 중 평면에 사각 조각들을 끼워 맞춘 작품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밀집도 높은 구도심 주거지역의 흑백사진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물리밖에 모르는 나는 강자성(ferromagnetism)과 강유전성(ferroelectricity) 물질의 ‘도메인(domain)’이 떠올랐다. 그림1과 그림2는 각각 강자성체와 강유전체의 도메인을 실험 장치로 찍은 사진이고, 그림3은 이 배 화백의 작품이다.

이 배 화백의 작품은 강력한 자기장과 전기장을 지니는 강자성체와 강유전체의 원인인 도메인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출처: 강자성체/강유전체 사진-위키피디아, 이 배 작품-조현 갤러리)
이 배 화백의 작품은 강력한 자기장과 전기장을 지니는 강자성체와 강유전체의 원인인 도메인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 강자성체/강유전체(위키피디아), 이 배 작품 - 조현 갤러리]

물질의 자기적 특성은 외부 자기장에 대한 응답의 측면에서, 크게 반자성(diamagnetism), 상자성(paramagnetism), 강자성(ferromagnetism)으로 나눌 수 있다. 반자성(diamagnetism)은 물질이 몸통으로 침투한 외부 자기장을 싫어해서 스스로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만들어 내서라도 침투한 외부 자기장을 상쇄시키려는 성향이다. 반면 상자성(paramagnetism)은 물질을 구성하는 작은 자석의 개체들이 외부 자기장 방향으로 정렬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런데 상자성의 중요한 특징은 ‘자기 쌍극자’라 불리는 구성 개체들 각자가 소신 있게 반응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를테면 작은 자기 쌍극자의 개체를 사회의 구성원이라 생각하고, 외부 자기장을 사회를 흔드는 정치적 이슈의 바람이라 생각하면, 각각의 개인들이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찬성, 반대, 중립의 의견을 표시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소신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만, 과연 그럴까? 사회적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고, SNS에서 매일 홍수처럼 쏟아내는 수많은 ‘카더라’ 괴담과 언론의 편향된 왜곡 보도에 맞서 충분한 전문지식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시민이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치인들은 바로 그 구조적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상자성(paramagnetism) 사회에서는 외부 자기장 같은 이슈의 바람에 대해 작은 자석 같은 구성원들이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의견을 드러낸다. 동조하는 ‘찬성’은 에너지가 작지만, 소신 있는 ‘반대’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상자성(paramagnetism) 사회에서는 외부 자기장 같은 이슈의 바람에 대해 작은 자석 같은 구성원들이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의견을 드러낸다. 동조하는 ‘찬성’은 에너지가 작지만, 소신 있는 ‘반대’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편, 상자성 사회 속에서 자기 쌍극자 구성원의 소신 있는 ‘반대’는 개별적 운동에너지에서 비롯된다.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는 주류적 의견에 대한 동조는 쉽다. 따라서 동조의 찬성은 에너지가 작다. 하지만 그에 반대하는 소신은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지닌 개별적 운동에너지의 총합이 결국 사회의 ‘열에너지’며 반대가 존재하는 사회는 뜨겁다. 그러나, 구성원이 소신의 에너지를 잃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차갑게 얼어붙을 수 있다. 개별적 견해가 사라지고 획일화된 복종만 존재하는 사회의 절대온도는 0이다.

강자성(Ferromagnetism)의 접두어 Ferro는 철의 라틴어 Ferrum에서 기원했다. 철의 원소 기호도 Fe를 사용한다. 철(Fe)도 대표적인 강자성 물질이다. 강자성은 자기 쌍극자 개체들이 외부 자기장 방향으로 정렬한다는 측면에서는 상자성과 비슷하지만 ‘도메인(domain)’이라 불리는 국소적 구역을 단위로 집단적 동조 반응을 보인 결과 강력한 자성(Magnetization)을 얻는다. 가령, 철(Fe) 가까이 외부 자석을 대면 철은 그 자석의 자기장에 동화되어 강력한 자성(M)을 얻는다. 철(Fe)은 그렇게 또 하나의 자석이 된다.

상자성과 반자성의 차이는 외부 자기장을 제거하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상자성 물질은 곧장 자성을 잃어버리지만 강자성 물질은 여전히 외부 자기장의 흔적을 내부에 유지한다. 이를테면 상자성의 사회는 정치적 자기장 이슈의 바람이 부는 동안에는 찬반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강자성 사회는 다르다. 강력한 자석을 철에 붙이고 있다 떼어 내더라도 강자성체는 여전히 자성을 지니게 된다. 바로 도메인(domain)이라는 국소적 집단이 여전히 편향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강자성 물질은 여론조사에서 편향된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지리, 계층, 연령의 집단이나 구역과 유사한 ‘도메인’을 지니고 있다. 강자성 물질은 외부 자기장에 대한 도메인의 집단적 동조를 통해 강력한 자성을 얻는다.
강자성 물질은 여론조사에서 편향된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지리, 계층, 연령의 집단이나 구역과 유사한 ‘도메인’을 지니고 있다. 강자성 물질은 외부 자기장에 대한 도메인의 집단적 동조를 통해 강력한 자성을 얻는다.

도메인은 ‘자기 쌍극자’라 불리는 작은 자석의 개체들이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즉, 도메인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지역별 정치 성향과 유사하다. 정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지역이 있지만, 반대하는 지역도 있다. 또한 이도 저도 아닌 중도적 방향을 지닌 지역도 있다. 중도 이외에 중도 여당이나 중도 야당이 존재하듯 도메인의 성향을 정교하게 분류하면 다양한 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메인 내부의 구성원들은 강력한 유대감이 존재해서 획일화된 집단행동을 한다.

강자성 도메인 내부의 자기 쌍극자가 모두 특정 방향으로 정렬하는 미시적 원인은 특정 지역구나 연령층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거칠게 말해 개인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소신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같은 의견으로 뭉쳐진 집단행동을 하면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약육강식의 대자연 속의 동물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무리를 짓는다.

강자성 물질에 외부 자기장(H)을 증가 혹은 감소시키며 자성(M) 변화를 측정해 보면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라는 특이한 곡선의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외부 자기장 세기를 증가시키다 보면 점차 많은 도메인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다 결국 물질 전체의 자성(M)이 최대치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외부 자기장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 증가시켜도 집단 전체의 동조를 유도할 수 있다. 극우 혹은 극좌의 외부 자기장에 의해 물질 자성(M)이 최댓값에 도달한 상황은 사회의 다양한 도메인이 모두 한 방향으로 치우친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안타까운 점은 광기 가득했던 전체주의를 경험한 국가들처럼 강자성체도 최대 자성(M)에 도달한 후에는 외부 자기장을 완전히 제거해도(H=0) 자성이 없는(M=0) 중립적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이슈의 바람이 강해지듯 외부 자기장(H)의 세기가 증가하면 강자성 물질의 도메인은 같은 방향을 향하며 최대치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외부 자기장을 점차 줄여 완전히 제거하더라도(H=0) 강자성 사회의 자성(M)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정치적 이슈의 바람이 강해지듯 외부 자기장(H)의 세기가 증가하면 강자성 물질의 도메인은 같은 방향을 향하며 최대치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외부 자기장을 점차 줄여 완전히 제거하더라도(H=0) 강자성 사회의 자성(M)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자성 물질 속의 물리적 환경에 따라, 찬성 사이에서 소수의 반대가 드러내는 페리자성(ferrimagnetism)이나, 반대와 동조가 같은 강도로 번갈아 일어나 전체 자성을 상쇄시키는 반강자성(antiferromagnetism)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선거기간만 되면 특정 계층의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이슈를 들고나와 여론을 흔든다. 예전에는 안보, 이념, 부동산, 분배, 비리, 사생활 같은 것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형평성이라는 색다른 이슈의 자기장을 등장시켰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마친 대한민국은 어떤 자성체의 사회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 편향된 동조로 결속을 다진 다양한 도메인으로 분열되고 쪼개져 있다.

만약 자기 쌍극자 대신에 전기 쌍극자를 사용하고 외부 자기장을 외부 전기장으로 바꾸면 강유전성(ferroelectricity)이라는 전기적 현상이 일어난다. 강유전성도 방향성을 지닌 전기적 도메인을 지니고 있다. 화가 이 배의 작품(그림 3) 역시 숯의 도메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자성체나 강유전체의 도메인 속 자기 쌍극자와 전기 쌍극자들이 특별한 방향으로 정렬된 것처럼, 숯을 잘라 붙인 각각의 조각도 특별한 방향으로 정렬된 결을 지니고 있었다. 결의 방향이 달라 반사율이 편향성을 지니게 되어 작품 전시 당시 갤러리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거울처럼 반짝이는 조각의 모습이 달라졌다. 작가는 그런 빛의 편향 효과까지 고려해 조각들의 방향과 크기를 치밀하게 구성한 것 같았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 사이에 상호작용이 존재할 경우, 강자성, 반강자성, 페리자성이 나타난다. 반면 상자성에는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 사이에 상호작용이 존재할 경우, 강자성, 반강자성, 페리자성이 나타난다. 반면 상자성에는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다.

이 화백은 오랜 세월 숯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점, 선, 면 공간을 표현하며 그 재료의 고유한 질감에 익숙해지고 예민해졌을 것이다. 그러다 좀 더 좋은 질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숯을 만들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좋은 숯의 내부 구조와 결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접하거나 나름의 내부 모형도 상상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료와 오랜 시간 교감한 작가 고유의 경험이 만들어 낸 시각적 구성이 강자성이나 강유전성 물질의 내부 구조의 도메인을 닮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물질적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과 예술작품의 소재로서 물질을 다루던 화가의 여정이 도달한 이미지가 닮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원형적 상상 속에는 일종의 보편성이 내재하고 있지 않을까? 과학과 예술은 인간의 무의식 속의 그 보편적 사유가 다른 방식의 언어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김광석 교수 :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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