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0) 컬링

김광석 승인 2022.02.10 10:51 | 최종 수정 2022.03.04 14:31 의견 0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동안 대한민국은 컬링(Curling)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맷돌처럼 손잡이가 달린 돌덩이를 얼음판에 냅다 던지고 열심히 빗자루질까지 해대는 낯선 경기 장면은 규칙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간 ‘Team Kim’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TV 앞에서 함께 ‘영미’를 목청껏 외쳤다. 덕분에 수업 시간에 컬(Curl)이라는 수학 연산을 가르치기도 수월해졌다. 영어 단어 Curl은 곱슬머리나 소용돌이 모양 혹은 상태를 지칭한다.

수학 연산의 Curl은 흐름의 화살표 크기와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소용돌이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가령, 변기 물이 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쳐 내려가고 있다면,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소용돌이치는 물살 방향으로 감싸 쥐어 보자. 엄지가 향하는 방향이 소용돌이의 방향이다. 단,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오른손(right hand)이 옳다(right).
수학 연산의 Curl은 흐름의 화살표 크기와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소용돌이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가령, 변기 물이 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쳐 내려가고 있다면,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소용돌이치는 물살 방향으로 감싸 쥐어 보자. 엄지가 향하는 방향이 소용돌이의 방향이다. 단,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오른손(right hand)이 옳다(right).

미지근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하면 수도꼭지 근처부터 물이 데워진다. 뜨거운 물이 골고루 퍼지기 전의 수면을 바둑판처럼 2차원 좌표로 구분해 위치별 온도를 표시한 지도를 상상해 보자. 열을 대변하는 온도는 높고 낮음의 ‘크기’만 지니고 있지만, 주변과의 상대적 온도 차이는 흐름의 ‘크기’와 ‘방향’을 만들어낸다. 이제 공간의 모든 점은 ‘크기’와 ‘방향’을 대변하는 화살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출근길 마주치기 불편한 직장 상사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면 우회로를 택하게 된다. 필사적인 다이어트 기간 중 인내력이 고갈되고 있다면 퇴근길 발걸음은 맛집 골목을 피해 방향을 튼다. 자신도 모르게 흐름의 방향과 크기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면 어딘가 ‘태풍의 눈’ 같은 소용돌이가 있기 때문이다. 수학 연산의 Curl은 이렇게 흐름의 화살표 크기와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소용돌이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가령, 변기 물이 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쳐 내려가고 있다면,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소용돌이치는 물살 방향으로 감싸 쥐어 보자. 엄지가 향하는 방향이 소용돌이의 방향이다. 단,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오른손(right hand)이 옳다(right). 그런데 ‘시계 방향의 회전’이라는 익숙한 표현 대신 왜 굳이 손가락을 꼬아가며 회전축 방향을 찾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회전하는 테두리를 구성하는 점들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닥에 쏟아진 이쑤시개처럼 방황하던 지난 세월의 화살들을 대표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 삶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그것은 항상 지상을 관통해 천상을 향하거나 땅속을 파고들고 있다.

뒤집어 놓은 유리컵을 테이블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 궤적은 어느 방향으로 휠까? 컵의 시계방향 회전과 유사하게 오른쪽으로 휘어진 곡선을 만들어 낼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왼쪽으로 휜다.
뒤집어 놓은 유리컵을 테이블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 궤적은 어느 방향으로 휠까? 컵의 시계방향 회전과 유사하게 오른쪽으로 휘어진 곡선을 만들어 낼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왼쪽으로 휜다.

컬링은 소용돌이치며 앞으로 진행하지만 휘어진 곡선 경로를 따라간다. 컬링 돌의 바닥 중심부는 움푹하게 파여 있어 얼음과 접촉하는 부분은 링 모양을 지니고 있는데 이 링과 얼음 바닥과의 마찰이 컬링 궤적을 결정한다. 우선 컬링과 유사한 뒤집은 유리컵이 회전하며 전진하는 상황을 살펴보자. 뒤집어 놓은 유리컵을 테이블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 궤적은 어느 방향으로 휠까? 컵의 시계방향 회전과 유사하게 오른쪽으로 휘어진 곡선을 만들어 낼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왼쪽으로 휜다. 왜 그럴까?

뒤집어 놓은 유리컵의 무게중심은 바닥보다 높은 곳에 있다. 따라서 컵이 앞으로 진행하며 바닥에서 마찰력을 받기 시작하면 무게중심 아래에 있어 컵은 앞으로 살짝 기울어지고 뒤쪽이 들리는 것 같은 모양새로 앞부분에서 상대적으로 큰 마찰력을 받는다. 이 앞뒤의 마찰력 차이가 직진을 휘게 만든다.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유리컵의 입장에서, 컵의 앞부분 속도 방향은 오른쪽, 뒷부분은 왼쪽을 향하고 있다. 만약 앞뒤의 회전속력이 동일하다면 유리컵은 균형 잡힌 소용돌이 운동을 계속하며 직진할 수 있다. 하지만, 마찰에 의해 앞부분의 오른쪽으로 향하려는 속력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손실되면 컵은 왼쪽으로 휘는 궤적을 만든다.

반면, 컬링 돌은 뒤집은 유리컵과 비교해 정반대의 방향으로 휜다. 이건 또 왜 이럴까? 결정적인 차이는 바닥이 물을 발생시켜 마찰을 줄일 수 있고 돌이 움직일 때 홈이 파일 수도 있는 얼음판이라는 점 때문이다. 컬링 돌은 뒤집은 유리컵의 상황과 동일하게 앞부분이 바닥에 가하는 압력(=힘/면적)이 더 강하다. 그래서 앞부분의 마찰이 큰 뒤집은 유리컵과 동일한 상황이지만 컬링 돌은 오히려 앞부분에서 마찰이 줄어든다. 컬링 경기장의 얼음 바닥은 수 mm의 작은 요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무거운 컬링 돌의 압력을 받으면 얼음이 녹아 얇은 수막을 형성한다. 얼음도 온도를 높이지 않고 높은 압력을 가하면 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컬링 돌의 앞부분은 수막현상으로 상대적으로 마찰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는다.

컬링 돌은 뒤집은 유리컵과 비교해 정반대의 방향으로 휜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닥이 물을 발생시켜 마찰을 줄일 수 있고 돌이 움직일 때 홈이 파일 수도 있는 얼음판이라는 점이다.
컬링 돌은 뒤집은 유리컵과 비교해 정반대의 방향으로 휜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닥이 물을 발생시켜 마찰을 줄일 수 있고 돌이 움직일 때 홈이 파일 수도 있는 얼음판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측면의 상황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진행하는 컬링 돌 바닥 링의 왼쪽 부분은 회전속도와 컬링 돌 전체가 나아가는 수평속도가 같은 방향이다. 반면 링의 오른쪽 부분은 둘의 속도 방향이 반대라 서로의 속도를 상쇄시킨다. 일반적으로 운동마찰은 속력에 비례하므로 뒤집은 컵의 경우 왼쪽 부분의 속력 손실이 더 크다. 하지만 컬링 돌의 경우에는 얼음을 더 많이 녹여 마찰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유발한다. 결과적으로 시계방향 회전하는 컬링 돌은 앞과 좌측 부분의 속력이 상대적으로 덜 손실되어 시계방향 회전을 닮은 오른쪽으로 휘는 궤적을 만든다. 빗자루질은 수막 형성에 의해 마찰이 줄어드는 효과를 억제시킨다. 따라서, 빗자루질은 컬링 돌을 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이다.

한편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팀은 돌의 앞뒤 마찰 차이보다 컬링 돌 바닥의 링이 진행하면서 얼음판에 남긴 홈의 흔적이 주된 원인이라는 다른 모형을 제시했다. 앞부분이 회전하며 남긴 흔적의 결 방향에 뒷부분이 영향을 받아 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진행하는 돌의 왼쪽은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 방향과 회전 방향이 동일하므로 오른쪽 부분보다 속력이 빠르다. 따라서 왼쪽 링이 만들어 내는 홈의 간격은 오른쪽 링이 만들어 내는 간격보다 더 촘촘한 무늬를 만들어 내고 그 결과 돌은 오른쪽으로 휘게 된다는 주장이다.

미래에는 인간보다 컬링을 더 잘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컬링 로봇이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2018년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영미야!’라고 외치는 기능도 추가될 것 같다.
미래에는 인간보다 컬링을 더 잘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컬링 로봇이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2018년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영미야!’라고 외치는 기능도 추가될 것 같다.

좀 더 정교하게 따져보면, 얼음에 압력을 가해 수막이 형성되는 반응시간과 홈이 파이는 정도가 컬링 돌의 속력에 따라 변하므로 좀 더 복잡한 모형이 필요하다. 빗자루질에 의한 수막 형성 억제 효과 역시 컬링 돌의 속력에 따라 다르다. 컬링 돌의 운동은 고전 역학, 재료공학, 유체역학, 제어공학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인 셈이다. 하지만 Team Kim 선수들은 이 모든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고 있다. 과학자는 복잡한 이론적으로 길고 어렵게 설명하지만, 막상 얼음판에서 컬링을 하면 돌을 던지다 미끄러지기만 할 것 같다. 선영이와 영미는 얼음과 돌과 교감하는 체화된 지식을 통해 본능적으로 돌을 제어한다. 그렇다면 머리로 이해하는 과학과 몸의 감각으로 체화된 지식이 소통할 수 있으면 어떨까? 미래에는 인간보다 컬링을 더 잘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컬링 로봇이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2018년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영미야!’라고 외치는 기능도 추가될 것 같다.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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