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2) - You complete me

김광석 승인 2021.12.01 16:56 | 최종 수정 2021.12.23 14:59 의견 0

좀 오래된 영화이지만 나는 영화 「Jerry McGuire」를 좋아한다. 스토리가 좀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프로스포츠 선수의 화려한 성공과 비싼 몸값 같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스포츠 에이전시 매니저 Jerry McGuire의 일상을 보여 준다. 대형 프로스포츠 에이전시 매니저로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점점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프로 스포츠계와 그에 일조하는 에이전시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쓴소리를 작정하고 전체 메일로 보낸다. 이후 그는 바로 해고 통지를 받는다. 그런데 소지품을 챙겨 사무실을 나설 때 그를 지지하며 함께 따라나선 여직원을 알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지만 그녀는 어린 아들까지 챙겨야 하는 미혼모, Jerry는 잘생긴 총각이었다. 이후 생계를 위해 가능성이 보이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 한 명을 힘들게 영입해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데, 이 과정에서 성공과 돈보다 더 중요한 신뢰와 사랑이라는 인간적 가치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영화 막바지에는 Jerry 역의 ‘톰 크루즈’가 갑자기 그녀를 찾아가 다짜고짜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마디로 지금까지 냉혹하고 속물적 세상에서 힘들게 경쟁만 하며 살아왔지만,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Jerry는 “I love you”라고 말한 후, “You complete me”라는 표현을 쓴다. 좀 생뚱맞은 것 같지만 나는 톰크루즈가 complete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양자역학 교과서에서 소개된 수학적 개념의 완전성(completeness)을 떠올렸다. 로맨틱 무드를 한 방에 날려버릴 이과생의 삭막한 발상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수학의 언어로 표현된 양자역학과 신학적 완전성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벡터는 직교좌표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방향에 대한 투사를 통해 해당성분을 얻어낸다.
'벡터 A'는 직교좌표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방향에 대한 투사를 통해 해당성분을 얻어낸다.

화살표 기호를 글자 위에 얹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벡터 A

벡터 A

는 크기와 방향에 대한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지만, 익숙한 3차원 직교좌표계로 구체화할 수도 있다. 즉, 화살표의 꼬리 위치를 원점에 고정한 후, 3차원의 세 방향을 대표하는 

 

의 화살표 방향으로 투사해서 각각의 성분

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간 성분의 표현 요소인 세 성분이 서로 직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적으로 직교한다는 것은 감성적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다양한 신념이나 가치관은 서로 유사할 수도 있지만 서로 대립할 수도 있다. 문학에서는 종종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의 이미지로 타협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관을 상징하지만, 수학에서 서로 나란한 두 개의 화살표 벡터는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즉, 꼬리와 머리의 위치가 아직 구체적 좌표로 표현되지 않은 경우, 방향이 같고 크기가 같다면 두 개 벡터는 평행선처럼 떨어져 있어도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대립의 이미지는 서로 향하는 바가 다른 두 화살표가 어긋난 상황이 좀 더 적절한 비유가 된다. 만약 어긋난 두 개의 화살표가 수직이 아닌 각으로 교차한다면 특정 방향으로 좀 더 기울어진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방향은 상이하지만 둘 다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다면 공통의 편향성을 지닌 셈이다. 그러므로 양보 없는 치열한 대립에 대한 비유는 직교가 더 적절하다.

평행선처럼 같은 방향을 향하며 화살표의 길이도 같다면 두 벡터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평행선처럼 같은 방향을 향하며 화살표의 길이도 같다면 두 벡터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직교한다는 것은 나름의 논리와 소신을 지닌 두 세계나 가치관의 대립을 의미한다. 즉, 유물론과 관념론이 직교하듯 x와 y는 직교하고 무신론, 일신론, 다신론은 x, y, z처럼 서로 직교한다. 세상은 동일한 대상(벡터 A )을 두고 서로 대립되는(직교하는) 가치관이나 신념들(x, y, z)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Ax라는 성분은 벡터 A라는 대상을 x 방향이라는 편향된 시선으로 투사한 값이다. 즉, 어떤 방향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대상(벡터 A )에 대한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x, y, z라는 각기 독립적이고 다른 신념은 직교의 형태로 대립하며 각자의 시선으로 벡터 A를 바라보며 Ax, Ay, Az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원론은 세상(벡터 A )을 물질(Ax)과 정신(Ay)이라는 2개의 성분으로 이해했고, 훈민정음은 모음의 세상( 벡터 )을 하늘(Ax), 땅(Ay), 사람(Az)이라는 3개의 성분으로 구성했다.

삶과 진리는 과학, 종교, 예술이라는 세 개의 직교하는 성분으로 온전히 표현될 수 있을까?

벡터 A가 변화무쌍하게 방향과 크기를 바꿔도 3가지 성분 Ax, Ay, Az만으로 벡터 A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거친 비유로 설명하자면, 만약 우리가 z방향의 시선을 모르는 개미라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벡터 A의 변화를 온전하게 구별해 낼 수 없다. 개미는 종종 자신이 지닌 두 개의 대립된 가치관 x와 y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미가 세상을 투사하는 x, y는 완전하지 않다(incomplete). 결국 개미는 z축을 포함시켜야 벡터 A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고 x, y, z로 구성된 그 공간은 완전(complete)해진다.

그런데 요소의 개수가 꼭 x, y, z처럼 3개여야 완전할까? 이를테면 진리라는 하나의 대상을 과학, 종교, 예술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까? 바꿔 말해, 과학, 종교, 예술은 진리에 대한 완전성을 이룰 수 있을까? 철학, 역사, 사회, 정치, 경제, 문학 같은 또 다른 축을 추가하면 진리에 대한 불완전성은 완전성으로 바뀔 수 있을까? 수학적으로도 직교하는 또 다른 축을 추가해 3차원 이상의 추상적 차원을 만들면 어떨까? 벡터 A와 유사하게 임의의 함수를 여러 개의 다른 함수들을 합쳐서 표현한다면 합쳐지는 각 요소의 함수들도 직교성을 보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수학자들은 일상의 3차원 공간의 사례를 좀 더 일반화시킨 추상적 수학 공간에 대한 완전성 조건을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성분이 되는 요소는 유한해도 되고 무수히 많아도 된다. 또한, x, y, z같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함수나 행렬들이라도 상관없다. 대신 완전성을 위한 일반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대상을 두고 그것을 표현하는 가치관의 축은 아주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x, y, z라는 3가지 시선으로 봐도 좋고 d, e, f, g라는 시선을 추가해도 좋고, 심지어는 무진장 많은 1, 2, 3… 무한대의 요소들에 투사해도 좋다. 대신 그것은 완전성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상태를 표시하는 ‘삶’과 ‘죽음’의 요소는 서로 직교한다.

양자물리에서도 일반화된 직교와 완전성의 수학적 개념을 활용해서 양자 상태를 표현한다. 이를테면 잘 알려진 상자 속의 고양이는 ‘삶’이라는 상태와 ‘죽음’이라는 두 개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지만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요소는 x와 y처럼 직교해야 한다. 직교의 의미가 추상화되어 시각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이 서로 직교한다”는 표현은 흥미로운 문학적 이미지를 준다. 상자 속 고양이의 경우 관심사가 오로지 삶과 죽음에 국한되다 보니 고양이의 양자 상태는 그 두 개의 요소들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고 나름의 ‘완전성’을 이룬다. 원자 속에서 핵의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 역시 특정한 양자 상태에 머문다. 호텔 객실의 방 번호처럼 매겨진 전자의 특별한 상태는 여러 가지 양자수(n, l, m, s)들로 구분되며 방의 수는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무한히 많은 이 각각의 방들은 서로 직교하며 단 한 개의 전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할 상태를 표현할 완전성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수학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표현에도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신의 완전성이란 구별되는 다양한 측면들이 모순 없이 자신의 체계 안에서 논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거칠게 보면 앞서 언급한 수학과 양자물리의 사례와 어딘가 닮은 부분이 많아 보인다.

가장 소중한 이에게 말해보자 “You complete me”
가장 소중한 이에게 말해보자 “You complete me.”

나는 영화를 보며 Jerry에게 ‘삶’은 벡터 A나 ‘신’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경쟁력, 성공률, 몸값 따위의 축으로 투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모순은 아마도 3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미의 한계 같은 것이며, 그런 제한된 가치관들이 만들어 내는 감정은 수학적 불완전성을 닮아있다. 하지만 Jerry는 그녀를 통해 비로소 삶에 또 다른 인간적 가치와 신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Jerry가 말하는 “You complete me.”는 참으로 심오하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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