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3) 이미징 Imaging

김광석 승인 2021.12.15 14:35 | 최종 수정 2021.12.18 18:30 의견 0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처럼 인간에게 시각은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려운 내용도 일단 그림이 있으면 이해하기 훨씬 편해지고 뉴스를 듣더라도 사진 정보가 있어야 더 실감이 난다.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은 엄마와 아빠를 눈에 익혀 부모와 다르게 생긴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고,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 언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지만 복잡한 몸동작을 요구하는 무용이나 무술을 배워 보면 언어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교한 춤사위와 재빠른 몸놀림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소위 말하는 ‘감’을 잡지 못하면 자신의 동작은 늘 어딘가 어설프다.

“감을 잡았다”는 표현 속 ‘감’은 대부분 언어적 정보에 대한 이해보다 시각 정보에 기반한 비언어적 판독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유아기 때처럼 ‘이미지’를 통해 사유할 수 있고 그 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지는 시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지금 눈앞에 놓인 사과가 보이는 상황을 광학적으로 해석해 보자. 분명 사과는 내 눈보다 커서 사과를 눈 속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사과는 여러개의 빛살들을 방사형으로 뿜어낸다. 눈은 그들 중에서 특별한 각 범위에 들어오는 빛살들만 포획한다. 눈 속에 들어온 그 빛살들은 다시 렌즈의 역할을 하는 수정체를 통해 방향을 틀고 눈 깊숙한 곳으로 비좁게 밀집한다. 돋보기로 태양 빛을 아주 작게 모아 검은 종이를 태우던 유년 시절의 추억처럼 사람의 눈도 사과에서 나오는 빛의 화살들을 종이가 아닌 시각세포가 밀집한 망막에 모은다. 하지만 두 상황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빛을 매개로 눈보다 커다란 사과를 눈 속의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나만의 사과 이미지를 얻거나, 현미경을 이용해 나노 스케일의 작은 세상 풍경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은 작업을 imaging이라 부른다.
빛을 매개로 눈보다 커다란 사과를 눈 속의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나만의 사과 이미지를 얻거나, 현미경을 이용해 나노 스케일의 작은 세상 풍경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은 작업을 imaging이라 부른다.

태양은 지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태양 빛이 손에 잡은 돋보기에 도달할 때는 모든 빛살들이 평행선처럼 나란하게 들어온다. 따라서 검은 종이를 태우던 눈부신 작은 점은 초점이면서 동시에 태양의 이미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투명한 돋보기는 지구 크기의 108배나 되는 태양을 작은 점으로 줄여 우리에게 가져온 셈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눈 가까이 위치한 사과가 뿜어내는 빛살들은 각자 조금씩 다른 각으로 날아가다 렌즈에 도달해 초점과 다른 위치에서 이미지를 만든다. 또한 그 이미지는 태양의 경우처럼 윤곽을 알 수 없는 점이 아니라 많은 빛살들의 점이 모여 사과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다. 빛살을 매개로, 내 눈보다 커다란 사과를 눈 속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나만의 사과 이미지를 얻는 일, 광학은 이 과정을 이미징(imaging)이라 부른다. 현미경이나 만원경 역시 너무 작고 멀리 있어서 볼 수 없는 대상을 하나의 풍경으로 이미징한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다시 잠들 때까지 우리는 하루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이미징을 한다. 머릿속에서는 핸드폰의 카메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많은 이미지의 더미 속에서 단 하나를 앨범에서 꺼내어 보듯 떠올리거나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편집하듯 겹치고 조합하는 조작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축적되는 ‘사과’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은 ‘사과’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만들고, 맨 처음 만들어진 사과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씩 훼손시키며 변형시킨다. 또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미지는 말의 소리와 글로 대체된다. 결국 ‘사과’라는 소리를 내뱉고 ‘사과’라는 글자를 쓰는 순간 처음 경험한 사과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소리와 글이 만드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타인이 말하는 ‘사과’라는 소리와 타인이 쓴 ‘사과’라는 글자를 통해 떠올리는 ‘사과’의 이미지는 자신의 것과 미묘하게 달라 보인다. 그렇게 언어에 익숙해져 갈수록 언어가 만들어내는 ‘사과’의 이미지는 원형의 이미지로부터 멀어져 간다. 또한 ‘사과’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사과’에 대해 지녔던 보편적인 감정과 다른 모습으로 다시 한번 변형되어 원형의 사과 이미지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어느새 마음속에 ‘간극’같은 갈증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사과’라는 말과 ‘사과’라는 글자를 버리고 생각조차 멈춘 침묵 속에서 오랫동안 사과를 마주하면 그 ‘간극’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불현듯 그 ‘간극’에 너무 목이 마르고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 지금까지의 감각 경험과 언어 경험으로 만들어졌던 ‘사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여정을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먼 곳에서부터 욕망처럼 다가오는 간절한 이미지가 생긴다. 그것은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원형의 이미지처럼 익숙한 듯 보이지만 이미지 이전의 이미지처럼 아득하고 모호하다. 그래도 어쩌면 언어와 이미지가 만들어 낸 이 ‘간극’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것’을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예술적 모티브와 과학적 영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을까?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 작품을 창작하거나 실험을 통해 확인하기 전, 갈증처럼 자신들을 간절하게 만드는 욕망 단계를 거쳐 이미지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을 경험한다.
예술적 모티브와 과학적 영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을까?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 작품을 창작하거나 실험을 통해 확인하기 전, 갈증처럼 자신들을 간절하게 만드는 욕망 단계를 거쳐 이미지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을 경험한다.

1번 그림은 쥐의 뇌혈관을 비선형 광학이라는 특별한 광학 기법을 통해 얻은 사진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미경 장치의 경우, 빛이 시료를 투과하고 렌즈에 의해 상이 맺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일반 현미경으로 뇌의 이미지를 얻고 싶을 경우는 뇌를 얇은 조각으로 잘라내야 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뇌의 이미지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레이저가 집광된 지점 중 가장 세기가 강한 지점에서만 일어나는 비선형 광학 기법을 이용하면 뇌를 조각내지 않고 적외선 레이저 빔의 초점 거리를 이동시키는 것으로 뇌혈관에서 피가 이동하는 실시간 이미지를 좋은 공간분해능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1조 분의 1초 동안만 반짝하는 펄스 레이저, 정밀 이동 장치, 복잡한 광학 장치를 모두 조합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복잡한 장치를 통해 처음으로 뇌혈관 이미지를 얻기 전 과학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만의 이미지인 ‘그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아직 ‘그것’을 본 적 없지만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처럼 절박한 여정을 지속한다.

2번 그림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의 그림 중 일부를 잘라낸 것이다. 선들이 뒤엉켜 격정과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을 만들기 전, 화가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었을까? 단순히 물감을 뿌리고 던지고 그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 속에는 분명 그만의 규칙과 의도가 있다. 사실 설계 도면을 떠올리게 하는 몬드리안의 그림보다 잭슨 폴록의 그림 속에 더 치밀한 계획과 규칙이 내재해 있다. 그는 자신만의 규칙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그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로 구체화했을 것이다.

3번 그림은 나노 입자들이 뿌려진 모습을 광학적 방법으로 이미징한 것이다. 특별한 렌즈를 깎아 끼우고 나사를 조이고 정교하게 다듬어 빛의 경로를 모아야 비로소 하나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수십억 분의 1m밖에 되지 않는 나노 덩어리를 처음 합성한 과학자의 머릿속에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것’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가 어릴 적 바라보던 밤하늘 별빛의 이미지(4번 그림)와 닮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관점에 차이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듯, 광기술은 빛과 물질의 상호방식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원리를 이용한다. 사진은 동일한 뼈 조직에 대한 다양한 기법의 광영상.
관점에 차이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듯, 광기술은 빛과 물질의 상호방식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원리를 이용한다. 사진은 동일한 뼈 조직에 대한 다양한 기법의 광영상.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최고로 칭송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남긴 말이다. 6개의 사진은 각기 달라 보이지만 똑같은 뼈 조직을 다른 광학적 방법을 사용해 이미징한 것이다. 똑같은 뼈 조직도 사용하는 빛의 파장(적외선, 가시광, 자외선, X선)과 빛에 대한 물질의 응답 방식에 따라 다른 모습과 색으로 보인다. 쪼여주는 빛의 세기가 약한 경우 흔히 볼 수 있는 ‘투과’형 영상이나 빛을 흡수해 다시 방출하는 ‘형광’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만, 강한 세기의 레이저를 이용하면 염색을 하지 않고도 쪼여준 빛과 전혀 다른 색의 빛을 뼈에서 얻을 수 있다. 가령, ‘2차/3차 조화파 영상’은 붉은색 레이저에 대응되는 주파수의 2배(초록)/3배(파랑)에 해당하는 새로운 빛을 이용한다. 한 알의 광자로는 흡수가 일어나지 않지만 세 알이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흡수와 형광을 유발하는 ‘3광자 여기 형광’도 있다. 동일한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관점과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소설가 프루스트의 통찰처럼 첨단 광기술에서도 빛과 물질의 응답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인간도 세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대신 인간과 세상의 상호작용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이고 관념적 상호작용을 모두 포함한다. 흔히들 관념적 대상이 아닌 물질 대상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과학 지식은 예술과 속성이 다른 것으로 간주하지만, 과학자의 연구 과정에도 예술가의 창작 과정과 유사한 순간이 많이 존재한다. 물론, 과학 지식은 관련 연구자 집단의 검증이라는 사회적 공인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자 개인의 일상은 어딘가 예술가와 닮은 부분이 많다. 수많은 수정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예술가처럼 과학자도 실패를 통해 이론모형과 실험 장치의 수정과 반복을 통해 점차 진리로 다가간다. 씨앗이 되는 영감과 처음 만나는 순간은 더욱 그렇다. 미완의 ‘앎’에서 비롯된 결핍, 호기심, 갈증을 동력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어 간다. 그러다 우연히 떠오르는 ‘그것’을 만난다. 어쩌면 ‘그것’은 ‘사과’라는 언어로 대체되었던 원형의 이미지를 찾아낸 시인과 화가의 영감과도 닮아있다.

볼 수 없는 세상
가려진 세상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작은 세상
한 번도 보지 못한
‘그것’이 있는 ‘그곳’
‘그곳’에 대한 상상과 믿음

간절한 목마름으로
어떤 이는 수식 가득한 종이나 컴퓨터 앞에서
또 다른 이는 렌즈를 깎고 나사를 조여
볼 수 없던 ‘그것’을 비로소 보게 만들었다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어느새 자리 잡은 마음속 우물
깊고 깊은 ‘그곳’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으로
매일 그리고 색칠하며 캔버스를 채웠다

입술이 그리움을 말하기 전에
손끝이 그리움을 그려 내기 전에
눈 속의 그리움이 이미지가 되기 전에
‘그것’이 이미지를 만들기 전에
좀 더 깊은 ‘그곳’에는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부름
붉은 피에 각인된 수만 년의 해묵은 그리움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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